자수의 세계 개론
실과 바늘로 하는 일에 영 경험이 없다. 특출 나게 재주가 있는 건 분명 아니다. 학교를 다니며 실습으로 했던 바느질도 엉망이었고 옷에 이름표를 붙이기 위해 했던 몇 번의 바느질도 떨어지지 않는 게 고작이었다.
그런 내 눈길을 끄는 게 있었으니 아담하게 담긴 펭귄을 수놓을 수 있다는 물건이었다.
여러 도안이 있었는데 단연 펭귄의 귀여움이 출중했다. 처음에는 한 땀 한 땀 바느질을 거듭해 저 모양을 만들어내는 줄로 알았다. 그런데 구성품을 보니 그렇지가 않았다.
일단 바탕이 되는 천에 대강의 도안이 그려져 있고 거기 펠트 천을 박음질로 고정한다. 그 위로 또 눈이나 부리와 같은 부속을 고정하며 모양을 만들어내는 게 수순이다.
이거라면 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괜한 자신감과 함께 부속이 담긴 모양마저 귀엽다는 생각이 부풀었다.
원형 틀은 제각기 크기가 다른 것이 둘 있다. 넓은 원형 틀에 도안 천을 두고 뒤에서부터 작은 원형 틀을 밀어 넣어 고정시키는 구조다. 거기에 위쪽에 달린 나사를 조여 도안 천을 보다 팽팽하게 고정할 수 있다.
각종 그림이나 영화에서 자수를 놓는 사람들이 동그란 틀에 천을 끼워서 바느질을 하기에 도대체 앞뒤로 무슨 일이 있는 것인가? 했는데 이번에 그 과정을 대강이나마 이해하게 되었다.
그리고 바탕천이 팽팽할수록 바느질하기가 좋다고 하여 힘껏 나사를 조였다.
나사를 너무 조여서 틀이 부러지고 말았다. 당황해서 그냥 그만두는 것도 나름 의미가 있겠다 싶었지만, 일단 구매하는 데 들인 돈이 아까웠다. '틀이 너무 약한 건 아니었을까?' 하는 억울함과 '왜 예시만큼만 조이는 데 만족하지 않았을까' 하는 후회가 이리저리 돌아다녔다.
그러나 이대로 포기할 수는 없기에 생활감 넘치는 자수에 도전하기로 했다.
검은색 조각을 붙이니 즐거운 마음이 불쑥 올랐다. 겉으로 드러나는 바늘땀의 길이가 지나치게 길었다는 생각이 나중에 마음을 진정시켰지만.
몸통과 발, 부리에다 눈까지 달아 놓으니 제법 펭귄의 모습이다. 그런데 눈알이 구슬인 줄은 몰랐다. 게다가 구슬을 천에 고정하는 방법을 알지 못해 데굴데굴 바닥을 구르는 구슬을 몇 번이나 쫓아다녔다.
반짝반짝하는 이미지를 바늘땀 두 번으로 표현하는 일은 꽤 즐거웠다. 어쩌면 정말 자수를 하고 있는 줄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어서일까.
잎은 하나하나 바느질을 하는 건 아니었다. 예를 들어 검은 몸통은 검은 실로 테두리를 꿰매고, 그다음 하얀 몸통을 붙일 때에는 새로이 바늘에 하얀 실을 꿰어 테두리 작업을 했다.
그런데 잎은 갈색 실로 가지를 표현하는 길에 들렀다 가듯 박음질로 잎맥을 표현하여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그게 정석인지, 아니면 내가 귀찮음에 그렇게 한 것인지는 모르겠다.
여하간 양쪽으로 잎을 완성하니 완성이 눈에 보여 마음이 들떴다. 심지어 삐뚤삐뚤한 잎맥마저 개성으로 보였다.
완성의 뿌듯함은 예상보다 컸다. 완성품의 수준이야 대단하지 않았으나 성취감의 매력은 객관적인 성과 수준과 어울리지 않는다는 데 있다. 조각 붙이기게 더욱 가깝다고는 하나, 내가 태어나 처음으로 자수에 성공했는데 수준이 무슨 상관이랴.
오늘의 성취는 이렇게 어설프게나마 자기만족과 함께 완성되었다. 이번 경험을 통해 왜 바느질을 할 때에 골무가 중요한지 알게 되었다. 비슷한 도전을 생각하고 계시다면 골무도 함께 찾아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