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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권조 Jan 23. 2022

오늘의 성취 : 호떡 굽기

어쩌면 홈 베이킹

호떡은 맛있다. 안타까운 점이라면 호떡을 먹고 싶어지는 시간대에는 팔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리고 며칠 전에 사서 그저 두기만 했던 호떡 믹스를 드디어 열 기회가 생겼다. 11시가 넘었는데 배가 고프다.

오늘의 재료. 광고 아니다. 차라리 광고였으면

그냥 호떡 믹스는 예전에 시도했으니 이번에는 녹차맛에 도전하기로 했다. 

뒷면에 이스트(4g)가 있다. 찍을 땐 왜 몰랐지

재료를 살포시 올려놓고 마음의 준비를 한다. 호떡 구울 땐 마음의 준비가 중요하다. 참고로 잼믹스는 보기에는 그냥 설탕이다. 믹스니까 뭔가 더 들어있지 않을까 기대는 된다.

레시피가 까다로운 요구를 할 때마다 즐거움이 되는 계량컵

우선 물 180ml를 준비한다. 뒷면 레시피에서는 종이컵을 예시로 들지만, 걱정할 것 없다. 내게는 150ml까지 담을 수 있는 계량컵이 있다. 살면서 저지른 소비 가운데 마음에 드는 하나.


그런데 용량만이 문제가 아니다. 물 온도를 40도에서 45도 사이로 맞춰야 한다. 게다가 굉장히 중요한 것으로 적어 두었다. 이스트 때문일까? 이마 이스트 때문일 거야 생각하면서 커피포트에 물을 채운다. 물론, 내 커피포트에 온도를 체크하는 기능은 없다.


가정집에서 40~45도로 물 온도를 맞추기 위해서는 3가지가 필요하다. 우선 커피포트, 대야(볼보다 대야가 친근하다), 체온계다.


물을 펄펄 끓여 대야에 붓는다. 그런 다음 소파에 앉아 방송을 보며 깔깔 호호. 그러다 가끔 아, 맞다. 호떡 구우려고 했지? 할 때마다 체온계를 꽂는다. 보통 Hi 가 뜬다. 인사는 아닐 테고 아마 체온으로 볼 수 없는 수준으로 뜨거운 모양이다.

47도를 초과하면 hi 메시지가 출력된다

41.1도에서 멈췄다. 이 정도면 훌륭하다. 이렇게까지 레시피를 충실하게 수행할 것이라 과연 누가 생각했을까? 백설 아카데미 호떡과에 입학했다면 아마 수석 졸업생이 됐을지도 모른다.

왜 역동적이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다

이스트를 넣고 반죽 가루를 넣는다. 포장지에는 프리믹스라고 되어 있는데 왜 프리믹스인지는 잘 모르겠다. 여하튼 처음 붓고 저으면서는 어라, 왜 물이 너무 부족한 것 같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의심을 잠시 내리고 굳은 믿음으로 계속 저어주자.

아닌가. 물을 조금 더 넣을까

레시피는 5분에서 10분을 반죽하라고 말한다. 그러니 10분을 들이기로 했다. 그러면 더 포실포실한 반죽을 얻을 수 있으리라 기대한다.

두근두근한 심장 모양 완성.

7분 정도 저으니 팔이 아프다. 주걱이 너무 잘 휘어서 그런가 싶어 바꿔준다. 11시 넘어 호떡 먹고 싶다는 생각에 죄책감이 컸는데 육체적 피로 앞에 무릎을 꿇었다. 안녕, 죄책감.


그리고 10분을 채워 조물조물하니 정말 반죽이 되었다. 믿음이 승리했다.

작업 준비 끝

이제 반죽을 동글동글 펼쳐서 속을 채울 준비를 한다. 쟁반에는 미리 식용유를 미리 뿌린다. 지난번에 레시피를 따라 호떡을 8개 만들었더니, 설탕이 너무 많이 남았다. 설탕을 나눠 담는 능력이 부족한 만큼 이번에는 조금 더 작게 반죽을 떼어 많이 만들기로 했다.

사진 잘못 올린 거 아닙니다

호떡은 역시 비닐장갑을 껴야 제맛이다.

11개. 빼빼로처럼 달콤한 호떡을 상징

만들어 놓으니 11개가 나왔다. 조금씩 떼고 더해서 10개를 만들거나 12개를 만들 수도 있지만, 내게 그런 여유는 없다. 어느새 자정이 지났다. 참고로 위 사진에는 속을 채우지 않은 반죽만 있다.

속을 넣고 오므리니 소롱포처럼 보인다. 소롱포도 맛있겠는데

이번에 깨달은 게 하나 있다. 지난번에는 설탕을 많이 채우려 해도 넘치고 흘러 잘 되지가 않았다. 이번에는 설탕을 넣을 때마다 숟가락으로 꾹꾹 누르니 더 많이 들어간다!


어이가 없을 수 있겠으나 원래 알고 배운 사람에게는 알고 있는 사실이 대단하지 않게 보이는 법이다. 몰랐으니 내게는 대단했을 뿐.


여하간 설탕을 꾹꾹 눌러 설탕을 남기지 않고 모두 썼다. 지난번에는 구운 호떡 위에 장식처럼 솔솔 뿌렸는데 이번에는 그럴 일이 없다.

가장 큰 팬인데 4개가 최대

둥근 모양을 내려면 무언가로 눌러야 한다. 12시 넘어서 야식을 만드는데 설거지를 더 늘릴 수는 없다. 반죽할 때 썼던 주걱으로 꾹꾹 눌러 동그랗게 만든다.


뭔가 감으로 익히기엔 자신이 없어서 2분씩 타이머를 맞추어 뒤집어준다.

노릇노릇

뒤집으니 약간 의심이 든다. 녹차라 그런가? 덜 익은 건가? 덜 익었다기엔 뭔가 갈색이 많은데. 내적 갈등을 겪으며 계속 굽는다. 중간에 하나 시식하니 맛있다. 반죽이 익고 설탕이 녹은 것으로 충분할지도.

별 의미 없는 사진. 마지막 3개는 동그랗게 잘 폈다

문제라면 앞뒤로 4분씩 걸리니 모두 완성한 때에는 이미 8분 동안 차갑게 식은 호떡도 있다는 점이다. 전자레인지에 데우거나 에어 프라이기에 넣을까 생각했으나 그러지 않았다.


직접 구웠는데 입 델 걱정이 없는 호떡이라니.

호떡산

겨우겨우 완성. 먹으려니 지쳐서 입맛이 돌지 않는다. 어쨌든 과정이 즐거웠고 맛도 좋았다. 호떡 기술이 조금 성장했을지도 모른다.


아무리 생각해도 호떡 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체온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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