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보고 돌아가는 길에
헌혈 후 다음 헌혈 가능일자가 궁금해 유입된 독자가 많은 듯하여 관련 내용을 먼저 적는다.
성분 헌혈은 상기한 외에 주의할 내용이 있으니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기 바란다.
어려서 헌혈을 열 번 조금 넘게 했다. 별달리 뜻이 있던 건 아니었는데 '헌혈이 건강에 좋다' 하는 기사를 보고 홀린 듯 주기적으로 헌혈의 집을 찾았다. 그러다 또 신문에서 '헌혈은 건강에 나쁘다' 하는 기사를 읽고 발길을 끊었다.
오늘은 장을 보고 돌아가는 길에 헌혈을 하러 갔다. 즉흥적인 결정은 아니었고 몇 달 전부터 생각은 했으나 발이 게을렀다.
헌혈을 30번 이상 하면 유공장을 받을 수 있다. 그야말로 숭고한 마음이라고는 숭어 지느러미만큼도 없는 동기로 헌혈을 했다. 늘 전혈을 했는데, 작년에 파주를 다녀온 경험이 있어 혈장 헌혈을 했다.
(작성 이후 확인하니 헌혈 유공장은 2022년부터 헌혈 유공패로 변경되었다.)
전혈 헌혈과 달리 혈장 헌혈은 혈액을 다시 주입하는 과정을 거친다. 그렇기에 모든 자리에서 가능하지는 않고 별도의 헌혈석이 마련되어 있다. 소요되는 시간이 비교적 길어 그 자리가 비기까지 기다려야 했다.
시간을 보낼 참으로 기증되어 비치된 책을 한 권 보았다.
별생각 없이 몇 단락을 읽었는데 기억에 남는 구석이 많다.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따로 도서관에서 빌리거나 구매해서 읽어도 좋을 것이라 생각했다. 일전에 요로 다케시의 『해부학 교실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를 굉장히 인상 깊게 읽었는데, 전해지는 느낌이 그와 닮았다.
15분 정도를 기다린 끝에 헌혈에 들었다. 평소 전혈 헌혈만 할 때에는 몰랐는데 혈장 헌혈은 멍하니만 있을 수 없었다. 기본적으로 혈액이 여과기처럼 보이는 기기를 거친다. 혈액으로부터 필요한 성분만 추출하고 그 외의 혈액을 헌혈자에게 돌려보내는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헌혈자 → 기기'의 방향으로 혈액이 이동할 때가 있고 '기기 → 헌혈자'의 방향으로 이동하는 때가 있다. 팔에 압박붕대처럼 묶은 띠가 수축하여 압력을 가하면 혈액이 기기로 가는 것이고, 이완하며 풀어지면 혈액이 몸으로 돌아온다는 신호가 된다.
혈액이 기기 방향으로 갈 때에는 가볍게 주먹을 쥐었다 피길 반복하고 반대의 경우에는 가만히 있는다. 방향에 따라 압력을 가하거나 줄이기 위함이라 한다. 그런데 이 과정이 몇 번씩 반복되니 멍하니 있다 가끔 아 맞다 하고 주먹을 쥐게 된다.
헌혈을 마치면 15분 정도 휴식한다. 헌혈자를 위해 음료수가 비치되어 있기도 한데 왜인지 물을 마셔야 한다는 생각만 들었다.
뒤늦게 생각하니 혈액의 농도가 낮아진 셈이니 그냥 물을 먹기보다는 음료를 먹는 게 좋지 않았을까.
이번 기회에 주기적인 헌혈을 해 볼까 싶다. 유공장을 받는다면 성취감이 또 스멀스멀 생길지도.
(다시 한번 얘기하지만, 유공장은 유공패로 변경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