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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유권조 Jan 31. 2022

오늘의 성취 : 1포기 김장

포기는 배추 셀 때나 쓰는 말이다

본문에 앞서, 1포기 김장을 하고 싶은 생각이 있으시다면 이 아래 글을 읽는 건 굉장한 시간 낭비다. 그러니 정말 도움이 되는 정보가 필요하다면 맨 마지막 문장만 읽으시길.


김장을 담가 보고 싶었다. 처음으로 계란 프라이에 성공한 후로 다룰 줄 아는 요리가 하나씩 늘어나는 재미가 있었다. 최근에는 스테이크가 그러했는데 그 후로 새로운 메뉴가 추가되지 않았다.


그래서 김장에 도전하기로 했다. 본격적으로 하기엔 무서워서 귀엽게 1포기를 목표로 삼았다.

오늘의 재료 선발대. 없는 건 마트에 가서 데려와야 한다

알배추를 샀다. 실상은 이 알배추가 아이디어가 되었다. 작은 배추 1개면 나도 할 수 있지 않나? 하는 빈약하고도 건방진 생각이 나를 이끌었다.


참고한 다른 사람들의 경험과 지식이 많다. '만개의 레시피'에 기재된 내용이 대부분이었다. 그런데 하도 이것저것 옮겨가며 보았더니 도대체 무얼 따라한 것인지도 기억이 분명치 않다.


심지어 대다수 레시피는 10포기 기준, 25포기 기준으로 쓰여 나중에는 액젓을 2/15컵 준비하는 해프닝도 발생했다.

내 마음의 1컵은 150ml

1컵이란 단어는 볼 때마다 마음이 어렵다. 특히나 계량컵을 산 이후로는 더더욱. 이 1컵이 과연 그 1컵일까 의문이 든다. 여하간 첫 단계는 배추 절이기다. 물 2L와 소금 2컵으로 소금물을 만들고 거기 배추를 담근다. 잎 사이사이에는 소금 2컵을 나누어 뿌린다.


사전 작업으로 배추를 쪼갠다.

배추는 칼로 끝까지 자르지 않고 틈만 낸 다음에 뜯는다

대다수 레시피에서 배추를 4등분했지만 그러기에는 크기가 작아서 겸손하게 2등분했다.

예쁘고 싱싱

김장은 알배추를 사고도 1주일 정도가 지나서야 시도했는데 그사이 미루었던 마음이 아까울 정도로 배추가 예쁘게 쪼개졌다.

워터파크 개장

이제 배추를 참방참방 담그고 소금도 뿌린다. 그리고 배추가 훌륭한 절임배추로 성장하기를 기다린다. 4시간에 한 번씩 위아래를 뒤집어 모두 8시간을 절이기로 한다.


이제 부족한 재료를 사러 마트에 간다. 왜 재료를 다 준비한 다음 시작하지 않았을까.

가는 길에 찍었는데 마음에 들게 나옴

십장생을 하나씩 사진으로 찍을까 고민하던 중 해를 찍었다. 그런데 십장생에 불로초가 있단 걸 알고 나서 바로 포기. 집에 있는 1포기 김장에나 집중하기로 했다.

마트에서 사진 찍는 건 생각보다 부끄러웠다

다행히도 새우젓과 멸치액젓은 집에 있어서 사지 않았다. 사고 보니 배추와 무가 제일 저렴하다. 결국 중요한 건 속이었다. 겉보다 속이 귀하다니 옛말 틀린 거 별로 없구나.

예상보다 빠르게 풀이 되었다.

돌아와 가장 먼저 찹쌀풀을 쑤었다. 속을 만들 때에는 풀이 식은 상태여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대상이 1포기이다 보니 찹쌀풀도 양이 애매하게 적다. 그래도 양이 적은 덕분인지 시간이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다음으로는 속에 들어갈, 곧 풀에 넣고 섞을 재료를 손질한다. 마늘과 생강을 다지고, 무는 채를 썰었다.

재료를 그릇마다 담는 요리 방송 스타일

문제는 양 조절이었다. 참고한 레시피가 전부 여러 포기, 그것도 알배추가 아닌 배추를 기준으로 하고 있어서 비율을 맞추는데 고생했다.


생강은 2/15 컵 정도를 넣었고 다진 마늘은 3/10 컵 정도를 넣었던 것도 같다. 사실 이 정도에 이르러서는 약간 피곤해져 세밀하게 양을 따지지 않았다. 그나마 저울과 계량컵이 있어 시늉은 낼 수 있었다.

생동감 있게 생강을 넣는 장면

재료를 차례차례 넣고 섞는다. 풀이 조금 더 묽어야 했나 싶게 질척질척하다.

마지막으로 꿀 1숟가락. 원래는 간 배를 넣는 모양이다.

8시간 절이기로 했던 배추를 6시간 정도에 꺼냈다. 이 정도면 배추도 눈치껏 절여졌겠지. 당장에는 너무 짜기만 할 배추를 물에 2~3번 씻어주고 버무린 속과 함께 준비한다.

왜인지 색이 예쁘게 나왔다

풀을 쑤었던 냄비에 그대로 속을 만들었다. 양이 적으니 가능했다. 이제 고무장갑을 끼고 속을 구석구석 바른다. 처음에는 방송에서 보던 걸 따라 하고 싶어 배춧잎을 한 장씩 들어 사이사이 속을 발랐는데, 나중에는 귀찮고 힘들어서 그냥 문질렀다.

사진 찍을 때는 격정적으로

무나 쪽파를 썰 때에는 너무 크게 자른 것이 아닌지 걱정되었는데 막상 속을 바를 때에는 거슬리지 않았다. 좀 더 잘게 썰었다면 분명 좋았겠으나 그러기엔 배가 너무 고프다.

다소곳.

주변에 자랑할 용도 1/2 포기를 담았다. 그리고 맛을 보는데 세상에나.


입안에서 사해가 넘실넘실. 믿을 수 없다. 이렇게 짠 음식은 몇 년간 먹어본 적이 없다. 그 전에 더 짠 게 있었다는 건 아니고 기억이 분명하지 않을 뿐이다. 짜다. 세상에나. 너무 짜다.


속만 따로 먹었을 때에는 간이 적당했다. 결국 배추를 제대로 씻어내지 못한 탓인가 싶다.

허망한 손

놀라 어쩌지, 어쩌지 하던 차에 찾아보니 생무를 사이사이 넣어주면 위대한 삼투압이 짠맛을 줄인다고 한다. 급하게 무를 썰고 속에 넣지 못하고 남은 것들을 또 넣는다.


자랑하려고 담았던 것도 다시 꺼내 사이사이 무를 찔러 넣는다.

오늘의 교훈. 김치는 쉽지 않다

이대로 2~3일 정도 지나면 짠맛이 줄고 좀 먹을 만... 하겠지. 어쨌든 김장을 했으니 돼지고기를 삶아 함께 먹었다. 그래도 고기와 함께 먹으니 간이 좀 괜찮은 것도 같다.


그리고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1포기 김장을 위한 레시피도 따로 있었다. 심지어 거기서는 배추를 1시간 안팎으로 절였다. 하긴, 조그마한 1포기를 8시간 절이는 건 좀 이상하지...


그리고 마트에서 장 볼 때 김장을 위한 양념을 따로 파는 걸 보았다. 당시에는 유혹을 이겨내고 직접 만드는 즐거움을 택했는데 다음에는 이미 만들어진 걸 사용하는 즐거움도 좋으리라 생각한다.


혹 1포기 김장에 도전하고 싶으시다면, 우선 1포기 김장 레시피를 따로 찾아보시라. 그리고 웬만하면 속 양념은... 만들어진 걸 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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