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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May 21. 2021

너를 사랑하지 않는 너에게

마음에 구조대 보내기

난 사실, 꿈도 없었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는 부유하는 먼지 같은 사람이었다. 학창 시절에 그토록 선생님들이 꿈을 가지라고 할 때도 꿈이 없었고, 결혼 전에도 당연히 집안의 가지각색 풍파 속에서 그저 나 하나의 생존 하나만으로도 벅찼으니, 당연히 꿈은 없었다. 하루가 너무 길다고 느꼈는데, 인생은 또 이보다 더 길다고 한탄하였다. 술을 배워보니, 속은 아팠지만, 시간이 너무 잘 간다며, 이대로 더 시간이 빠르게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마침 한참 술고래가 되어서 이대로 곧장 바다로 가야 할까 싶을 때였다. 생경한 환경에서 자란 왕자님이 홀연히 나타났다. 왕자님은 나보다 여덟 살이나 많았는데, 그 당시 내 나이는 서른, 왕자님은 서른여덟이었다. 예비 시부모님께 인사를 가고 그 다다음에, 시부모님께 전화가 왔다. 왕자님을 만난 지 4주쯤 되던 무렵이었다.     

“얘 아가 여기 결혼식장 좋은 데 있는데, 구경이나 한번 가보게 와 봐라.”


나는 식장이 얼마나 좋길래 구경까지 오라나 싶어서, 아무 생각 없이 갔다가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였다. 바로, 팔순이 넘은 예비 시아버님께서 결혼 당사자인 우리에게는 묻지도 않으시고, 예식장 사무실 한쪽에서 홀로 예식 계약을 하고 계셨다. 심지어 우리 엄마는 딸 결혼 날을 그날 전화로 알게 된다. 그리하여, 별 의욕도 꿈도 없었던 나는 그냥 그 날짜에 맞춰 결혼이란 것을 하고 살림이란 걸 시작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아버님 당신이 보기에 아들이 사귀기에는 외관도 살아온 환경도 무척 고급스러운 아가씨가 당신 아들에게 상처나 주고 도망이라도 갈까 봐 무척 서둘렀다고 한다. 이 얘기를 듣고 나중에 든 생각은 내가 고급이 아닌 것에 대한 죄책감이었다.


‘아이고, 아버님도 포장지에 속으셨어요. 저는 고급이 아니라 생산하신 분들도 매우 후회하던 불량품입니다.’


그 당시의 아버님이 보셨던 나의 외관처럼 내면도 정말 고급이었더라면, 제대로 된 대학도 나오고 그랬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고 생각했다. 처음으로 나도 내가 어디 한 군데쯤이라도 고급이었으면, 좀 더 배우고 유식한 아내이자 며느리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면 이때 시 부모님의 그러한 말씀이나 생각들이 내가 나에게 처음으로 어떤 ‘기대’를 하게 하는 시초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때의 나는 삶의 의욕도, 목표도 없었다. 사실,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도, 뭘 원하는지도 모르던 나에겐 그런 상태가 당연한 내 모습이었다.


상처 가득한 유년기를 가진 난, 그나마, 결혼을 통해 평생 결핍되어 있던 ‘사랑’과 ‘행복감’을 느꼈고 그제야 조금 숨을 좀 쉬게 되었다. 늘 숨 막혀 죽을 것 같던 나는 정말 살기 위해 결혼을 했다. 그러나, 막상 결혼 해보니 나 자신이 아닌, 타인이나 환경에 의해 주어지는 ‘행복감’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다. 결국, 내가 가진 문제는 늘 언제나 내면에 있었으며, 비난의 음향장치도 변함없이 작동하는 것을 알게 되었다.


‘예전이나 지금이나 네 꼴을 좀 봐, 남들 다하는 살림도 잘 못 하는 게, 대체 넌 왜 태어났니, 꼴에 또 시집까지 와서 참 여러 사람 괴롭히네.’


사실, 누구에게나, 유년기가 행복했던, 불행했던지를 막론하고, 결혼 후에는 늘 크고 작은 위기나 문제가 생기기 마련이다. 본래 그런 것이 삶이며, 인생일 뿐이다. 그런데, 왜 나는 아무 관련 없는 내 과거의 잘못을 머릿속에서 들추며, 큰소리로 스스로 비난하는 것일까?


 ‘그때 왜 그랬을까, 그래서 지금 이런 거잖아.’ 매일 수도 없이 반복되는 정신 속 시간여행은 끔찍했다. 어릴 적 엄마가 하던 채찍질도 모자라서 이제는 나 스스로가 내게 더 끔찍한 짓을 했다. 결혼 후 스스로 가하던 자기 비난과 후회의 채찍질은 어릴 적 작고 여린 내게 엄마가 휘두르던 갈색 납작 빗자루보다 백만 배는 더 아프고 아팠다. 유년기의 아픔을 해결하지 못하고 결혼 후에도 내내 내면적으로 아팠던 나는, 과거를 끝없이 후회하느라 미래를 바꿀 수 있는 현재의 삶을 기어코 망쳐가고 있었다.


그런데도 나는 서른이 다 될 때까지 내가 이렇게 아픈 줄도 몰랐다. 그러다, 정말 어느 날부터인가는 이유 없이 몸과 마음이 죄다 아프기 시작했다. 나는 너무 아파서 나도 모르게 살길을 찾고자 했다. 뭐에 홀린 듯이 어리바리하게 당시 유행하던 블로그란 것을 개설해 보았다. 그때가 무려 십몇 년 전이었다. 그 당시에는 30대 초반에 개설한 블로그를 이렇게 다 늙어가도록 운영하게 될 줄 정말 몰랐다. 그땐 나도 참 풋풋했는데, 마음이 너무 아파서 풋풋한 줄도 몰랐다. 사실 그때 왜 그 블로그를 개설했는지 잘 기억도 나지 않는다. 하지만 확실한 건, 십몇 년 전 난데없이 시작한 인터넷 블로그가 쓰레기통보다 더 더럽고 끔찍하던 내 마음을 정화하는 도구가 되었다는 거였다.          



그때 나는 마침 산후 다이어트 중이었는데 주로 식단일기나 운동일기 같은 소소한 것들을 올리다가, 어느 날부터는 그동안 누구에게도 말할 수도 없어서 가슴이 터질 것만 같던 평생 쌓인 신세 한탄을 한 바탕씩 몇 년이나 쓰기 시작했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를 외치던 이발사의 대숲 같은 곳이 내게는 바로 ‘블로그’였다. 블로그 일기장에 한 바탕씩 이런저런 억울함을 쓰고 나면, 마음이 조금씩 개운해졌다. 때론, 이 블로그의 내 사연을 보고 블로그에서 ‘공감’을 눌러주는 이웃들이 늘어났고 그들도 나의 글에 자신의 이야기를 한 바닥씩 달아놓고 갔다. 거기에는 나의 이야기보다, 더 억울한 이야기, 더 끔찍한 부모-자녀 관계 이야기가 소설처럼 주렁주렁 엮어지고 있었다. 그 글들을 보며, 나만 그동안 억울한 게 아니었구나, 그런 생각을 하였다. 그리고 그들과 소통하며 서로의 아픔을 보듬었다. 한 번도 만난 적 없는 그들과 동지애를 느낄 수 있었다.


 가상의 인터넷 공간, 블로그에서 일기를 쓰기 시작하면서, 나는 서서히 나의 과거사를 더 자세히 바라볼 수 있게 되었다. 그렇게 한 몇 년을 쓰고 나니, 왠지 내 마음이 이전처럼 더럽게 느껴지지 않았다. 그 당시에는 몰랐지만, 나는 블로그라는 통로를 통해 나 스스로 내담자이자 상담자로 1인 2역을 하고 있었다. 블로그에 혼자 쓰고, 읽고, 스스로 도닥이며 나와 내가 처했던 과거의 상황들을 재구성해보며 여러 각도에서 생각해 나갔다. 물론 그 당시에는 그런 과정이 한심한 넋두리라고 생각했지만, 서서히 나 홀로, 자가 치유의 과정을 거치고 있었던 거였다. 그 후 점차 블로그 사용범위를 넓혀나갔다. 나는 책을 읽으며, 책 귀퉁이나 노트에 적던 내 마음들을 그 블로그에다가 빼곡하게 옮기기 시작했다. 노트나 책 귀퉁이에 마음을 쓸 때보다, 좋은 점은 스마트폰만 있으면 언제 어디서나 내가 쓴 글들을 다시 볼 수 있었다는 점이었다. 이 인터넷 공간을 통해 내가 너무 미울 때마다, 내가 쓴 내 마음을 읽고 또 읽었다.   

  

그런 날이 어느 정도 지나고, 문득, 지금처럼 이렇게 불행하게 살다 죽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때부터는 삶이 달라졌다는 여러 사람의 자기 계발서와 위인들의 삶을 읽었다. 독서 후에는 블로그에 그 서평과 함께 매일 다짐 일기를 썼다. 또한, 그 책들을 통해 내게 평생의 아픔을 준 부모를 설명할 지식을 탐구했고, 그들과 다른 부모가 되기 위한 길을 분석했다. 그리고 블로그에 내용을 정리하며, 내 삶에 적용해 나갈 부분들을 찾아 계속 글로 적어나갔다. 특히, 글을 써둔 내 블로그를 마음이 약해질 때마다 보며, 그 내용을 다시금 곱씹었다. 시간이 날 때마다, 내 블로그를 통해 지난 나의 삶과 내 현재 삶을 다시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또 그 글을 보고 떠오르는 나의 마음을 또 블로그에 적고 자꾸 읽었다. 이러한 과정은 아픈 과거의 나를 내려놓기만 한다면, 현재, 지금 여기에서 내가 얼마나 많은 걸 할 수 있는 사람인지, 깨닫게 해주는 계기가 되었다.   

 

십여 년간 블로그에 쓴 일기를 훑어보면, 나 스스로 정한 목표를 이뤄나가며 내가 나를 응원했던 과정이 시간에 따라 보인다. 나를 증오하고 미워했던 나는 어느 날부턴가, “그런데도 이렇게 잘 자랐다니 정말 장하다.”라는 말을 쓰고 있었다. 사실 나는 내가 변한 줄 몰랐었다. 그런데, 이렇게 인터넷 공간에 내가 쓴 글 자국을 따라가다 보면, 분명히 내면의 ‘나’의 변화를 느낄 수 있었다. 내가 성장해 갔던 그 흔적이 글에 다 남아있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도 오늘의 나의 마음을 인터넷 공간에 글로 남긴다. 한 해 한해 마음이 성장해 가는 나를 보는 일은 무척 행복하고 기쁜 일이기 때문이다.     


스스로 사랑할 수 없을 만큼 깊은 상처가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단 한 줄이라도 매일매일 나를 스스로 응원해야 한다. 지인과의 소통을 위한 공간 외에 자신의 마음을 솔직히 적을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을 개설해 보자. 그리고 언제 어디서든 활용할 수 있는 인터넷 공간을 통해 오늘부터, 매일 내 마음속에 구조대를 보내고 매 순간 스스로 '나'를 응원해보는 거다.




조금만 기다려, 마음속 아픈 나야,

바로 내가 너에게 가고 있어.








                         

[추천 책  & 마음으로 쓴 서평]

   

<힘 빼고 행복>(고코로야 진노스케, 매경출판, 2016)

:저자는 우리가 무언가를 위해 노력하는 것은 현재 자신의 모습이 싫기 때문이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현재의 못난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않고서는 우리가 아무리 노력하고 노력해서 원하는 걸 이루어도 행복을 느낄 수 없다고 한다. 그래서 현재의 자신이 아무리 싫고 밉더라도 우선 이해하고 사랑해야 한다고 한다. 지금 나의 모습을 개선해 더 나은 미래로 가는 것도 분명 필요하지만, 그 과정이 현재의 나를 미워하는 과정이라면 그냥 한번 모든 걸 놓고 자신을 돌아보라고 한다. 우리가 지금 여기서 해야 할 건 바로 현재의 못난 자신을 보듬고 사랑하는 일뿐이라고 한다. 현재의 부족한 나를 사랑하는 일, 그건 아마 스스로 내 마음에 말을 걸고 응원을 하는 일로 가능할 것이다. 매일의 내가 싫다는 사람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인간으로 산다는, 그 어려운 일>(보디팍사, 나무의철학, 2020)     

:이 책의 저자는 사업가로 승승장구하던 와중에 사업도 망하고 이혼까지 겪으면서 우울증과 병증에 시달렸다고 한다. 그 후 저자는 우연히 명상을 배우고 인생을 변화시켰으며, 현재는 명상 전문가, 그리고 작가의 삶을 살고 있다고 한다. 저자는 자기 자신을 보듬는 기술, 명상에 기반을 둔 마음 챙김과 자기연민 기술을 우리에게 소개한다. 이 책에서는 타인만 배려하지 말고 나 자신을 배려하는 삶을 살라고 한다. 즉, 자신을 항상 정겨운 눈으로 봐주고, 화장실 거울에서 내가 보이면 방긋 웃어주라고 한다. 만일 내가 또 실수해도 그럴 수 있다고 우리 자신을 격려해 주라고도 한다. 지금이 어떤 고통의 순간이든 결국 다 지나가는 하나의 통로일 뿐이라고, 이 책은 다시 한번 힘을 내라고 독자에게 이야기한다. 이 책은 지금 현재 삶이 주는 고통을 딛고 일어서기가 너무나 버거운 사람들에게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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