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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sorrow and pleasure Jun 18. 2021

엄마가 너무 밉다는 너에게

그만 내려놓기



어릴 적엔 엄마랑 꼬마였던 동생이랑 논두렁길을 가로질러 목욕탕에 가곤 했다. 일단, 목욕탕엘 가면 엄마가 때를 밀 때까지 나와 동생은 따뜻한 탕에서 물장난하며 마음껏 놀 수 있었다. 비록 엄마가 여러 사람 들어갔다 나갔다 한 큰 탕은 ‘더럽다’라며 작은 세숫대야에서 놀라고 했지만, 그래도 너무 재밌었다. 엄마는 매우 빠른 손길로 내 피부를 박박 문지르고, 몸이 불긋불긋해질 때쯤, 다시 내 몸에 비누칠하고 물을 시원하게 끼얹었다. 그리고 나면, 나는 깔깔하고 기분 좋은 상태로, 미리 탈의실에 나와 옷을 입고, 시원한 요구르트를 먼저 먹으면서 엄마를 기다렸다. 목욕 후에 먹는 초록 은박 뚜껑의 그 조그맣고 시원한 요구르트 맛이란! 지금도 눈을 감고 그때를 그려보면, 행복한 기분이 느껴진다.     


늘, 복기해 보는 ‘그날’도, 여느 때처럼 엄마가 꼬마 동생을 씻기는 동안 나는 미리 나와 옷을 입고 있었는데, 입다가 무언가를 찾을 수가 없었다. 당황한 나는 당장에 욕탕 안의 엄마에게 도움을 청하러 갔다. 그리고 다시 나와 옷을 입고 다른 날처럼 나무로 된 탈의실 마루에 앉아 양다리를 앞뒤로 흔들면서 요구르트를 먹고 엄마를 기다리고 있었다. 곧, 엄마가 나와 옷을 입다가 엄청 크고 빠른 말소리를 내며 내게 화를 내고 쏘아보았다. 당시 여덟 살이었던 나는 도대체 엄마가 왜 그렇게 화가 났는지 알지 못했다. 그렇게 무서운 엄마를, 내 기억으로는 그때 처음 보았던 것 같다. 그 후, 나는 뭐가 그렇게 바쁜지, 집으로 가는 논두렁 길을 뒤도 돌아보지 않고 빠르게 걷는 엄마 뒤를 놓칠세라, 열심히 따라잡으며 집에 도착했다.      


도착하자마자 난 엄마가 그렇게 바쁘게 간 일이 무언지를 금방 알게 되었다. 그날, 집에 도착하자마자, 난 내가 왜 맞는지도 모른 채, 방 빗자루로 난생처음으로 엄마에게 맞고 또 맞았다. ‘엄마 잘못했어요. 엄마 다신 안 그럴게요. 엄마 잘못했어요…. 뭘 잘못했는지 모르면서도 나는 빌고 또 빌었다.      


‘그날’은 나의 실수로 엄마의 현금이 가득 들은 지갑도 도둑맞았고, 나의 이후의 행복한 시절도 함께 도둑맞은 날이었다. 그날, 잘못한 사람은 탈의실 옷장을 열어두고 엄마에게 간 어린 날의 ‘나’였을까? 아니면, 그때 도둑질을 한 도둑이었을까? 아니면, 어른임에도 자신의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고 어린 딸을 인정사정없이 마구 때렸던 미숙한 엄마였을까?


어찌 되었건 간에 그때 이후로는 이제 엄마와 함께하는 목욕은 기쁨이 아닌, 공포 그 자체였다. ‘그날’이 촉발점으로 작용했는지, 엄마가 원래 그런 사람이었는지 그 당시에는 알 길이 없었지만, 그 이후부터 당신이 화가 나거나 속상한 일이 생기면 내가 맞을 수밖에 없는 여러 이유를 제시하며, 당신 분이 다 풀릴 때까지 나를 때리고 또 때렸다.      


그 후로 내내, 나는 내가 맞을 짓을 하면 당연히 맞아야 하는 줄 알았다. 이후로도, 학교 다니는 내내 남자애들이 괴롭히고 때려도 엄마에게 말하지 않았다. 엄마가 늘 가르쳐 줬듯이 난 늘 맞을 짓을 하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엄마는 늘 화가 나면, 때리는 것도 부족한지, 때리면서도 연신 내게      


“너 같은 걸 낳아서 이 고생을 해, 너만 없었더라면……. 너도 너 같은 걸 낳아서 똑같이 고생해봐라.’      


라고 했기에 나는 이 세상에 있다는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무척 엄마를 화나게 하는 나쁜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자랐다.           


체벌과 악담을 퍼붓는 엄마 밑에서 자라난 다섯 살 차이 나는 동생은, 엄마가 ‘인간쓰레기’라는 새로운 이름도 지어주었다. 그리고 그에게도 평생토록,      


“저런 게 나한테 태어나서 내 인생을 망쳤다.”라고 했다.     


엄마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날 때부터 엄마의 원수였다. 그런데 이를 어쩌나, 나는 기억한다. 엄마가 우리를 망치던 그 순간들을 말이다. 어릴 적, 동생이 남의 집 자전거를 훔쳐 타고 다니며, 엄마에게 주웠다는 뻔한 거짓말을 할 때도 눈감아 주는 것을 다 봤다. 이후에 자전거 주인이 와서 애를 그렇게 가르치면 되겠냐는 항변에, 되려 소리소리 지르며 내쫓아버리던 엄마 모습을 나는 또렷이 기억한다.


그리고, 아주 오래전, 아직 김영란 법이란 것을 상상도 못 할, 1990년대 언저리쯤, 동생이 초등학교에 다닐 때였는데, 아이가 너무 산만하고 공부도 너무 부족하니 가정에서 어머니가 조금 더 신경 써 주십사 하던 담임선생님에게 엄마는 돈 봉투를 찔러주었다고 했다. 그리곤, 대번에 선생님의 태도가 확 달라졌다면서 정말 세상 기뻐하던 엄마의 모습이 생생히 기억난다. 너무 부끄러워서, 난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나는 선생님께서 정말 그 때문에 아이에게 살갑게 하셨다고 생각지 않는다. 선생님으로서는, 되려 그런 부모 밑에 태어나 마땅히 받아야 할 배려도 못 받고 겉도는 동생이 안쓰러웠을 것이다.   

        

어릴 적부터 들었던 저주의 말은, 우리를 참 무섭게 세뇌했다. ‘네가 없었더라면, 엄마는 분명 더 좋은 새 삶을 살았다’라며, 엄마는 자신이 낳은 자식의 존재를 부정하고 늘 저주했으며, 우리 때문에 망가진 자신의 인생만 안타까워하고 가여워했다. 어미의 저주를 받고 자란 우리는 그녀의 저주대로 인생을 차근히 망쳐나갔다. 동생은 중학교도 제대로 마치지 못하고, 자기 밥벌이도 못 하는, 애정이 결핍된 인간쓰레기로 성장해나갔다. 나 또한, 이 세상에 존재하면 안 되는 사람이기에 사람과 관계를 맺지 못하고 홀로 외로이, 고아라 생각하면서, 세상에서 유령처럼 살았다. 그래놓고도, 엄마는 우리에게 당신이 우리를 버리고 떠나지 않아 새엄마 밑에 자라지 않고 잘 자란 것에 대해 감사를 하라고 늘 강요한다.  

      

 ‘이럴 거면, 그냥 어릴 때 내 버리고 가지 그랬어요.’  

        

칠순이 낼모레인 엄마는 지금도, 화가 나거나 당신의 요구가 무시되면, 사위가 있든 말든, 울고 뛰며, “지금까지 먹이고 입히고 키운 것 다 내놔라, 이년아.” 하고 마흔이 넘어 오십을 바라보는 딸에게 욕도 서슴지 않는다. 앞으로도 언제든지 그럴 수 있다는 사실이 더욱 참담하다. 그러고도 딸에게는 당연히 그래도 되며, 자신이 사위 앞에서 망신을 당한 것만을 분해하며 자신의 그러한 행동 또한 나 때문이라고 한다. 평생 모은 돈을 결국엔, 제대로 가르치지 못한 아들한테 모두 속아 통째 털리고 나서도, 아들에게 돈을 주겠다며, 우리 집에 쳐들어 왔던 엄마가 했던 말도 기가 막힌다. 그때 당신이 내놓으라는 돈, 그 몇 푼 안 되는 돈을 안 줘서 자신이 사위 앞에서 개망신을 당했다고 한다. 그때 나는 내가 돈을 주면, 결국 엄마가 망친 아들 술 먹고 타락하는 데 쓰라고 줄 게 뻔한데, 내가 왜 대야 하냐고, 왜 사위가 대야 하냐고도 해봤다. 또, 나는 시집도 혼자 알아서 왔고, 공부도 혼자 알아서 했고, 박사도 마치 고아가 공부하듯 해서 박사가 되었는데, 왜 내가 그걸 내야 하냐고 했고, 엄마는,      


“그렇게 속썩이던 네 아빠를 내가 버리고 떠나지 않아 네가 새엄마 밑에 자라지 않은 덕에 이렇게 잘 커서 박사가 된 거야! ”라고 했다.     

          

'이런 논리라면, 세상의 거의 모든 사람, 대부분이 다 박사겠군요.'

    

그리고, 자신이 이렇게 딸을 잘 길러내었으니, 사위가 그깟 돈 좀 내면 어떠냐고 한다. 이런 말을 마치 도돌이표처럼 듣고 또 듣고 있다 보면, 모든 것을 다 이해하고 있는 지금도 문득문득,     

 ‘차라리 내가 이 세상에 없었더라면, 태어나지 않았더라면, 엄마가 정말 굉장히 행복했을지도 몰라. 또, 이런 거지 같은 이유로 감사하라고 강요받지도 않았을 텐데, 나를 만나 결혼한 저 사람은 무슨 봉변일까, 저 사람의 인생도 나를 만나 이렇게 망가지는지도 몰라, 아, 나는 왜 이 세상에 태어났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마음이 힘들 때마다, 나는 살기 위해서, 마음이 다스려질 때까지 치열하게 닥치는 대로 책을 읽고, 또 읽었다. 내게는 책을 읽는 자체가 마음을 수양하는 길이었다. 그때 당시에 책을 읽지 않았더라면, 지금, 오늘의 나는 여기에 없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힘들 때마다 책에서 주는 긍정적인 글을 적고 내게 스스로 일러줬다, ‘그렇지 않아, 네 잘못이 아니야.’ 하고 말이다. 그렇게 많은 공부를 했는데도, 그렇게 나이를 많이 먹었는데도, 부모로부터 받은 상처를 치유하는 데는, 아직도 정말 많은 책과 시간이 필요하다. 늘 나는 이렇게 엄마의 말 한마디, 표정 하나하나에 온갖 상처를 받으면서도, 다른 한쪽으로는 언제나 엄마가 언젠가는 달라지리라는 헛된 희망을 품곤 했다. 이쯤 되면 병이다. 정말 병이라고 할 수밖에. 도대체 나는 언제까지 이 짓을 반복해야 하느냐며, 또 한 번 자리에 앓아누웠을 때, 나를 구조할 의미 있는 한 권의 책을 만났다.   


바로, 손정연 선생님이 쓰신 심리 에세이 <나는 엄마와 거리를 두는 중입니다>(팜파스, 2017)였다. 이 책에서는 엄마와 딸의 관계, 그 관계가 너무 깊어 결혼을 하고, 성인이 된 딸과 두 몸, 한 영혼처럼 사는 엄마나 딸의 이야기 등 여러 모녀간의 실사례를 다루고 있었다. 그리고 이 책에서는 늘 딸의 희생만 강요하는 엄마와 거리를 두라고 조언한다. 또한, 엄마와 딸이 얼마나, 언제, 어떻게 거리를 두어 각각의 개인으로 성숙해가야 하는지를 이야기한다. 이 책을 통해서, 정말, 내게 필요한 것이 바로, 엄마와 거리를 두는 거였다는 것을, 그리고 그게 죄가 아니라는 사실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이 책의 어느 페이지에선가, 한쪽 끈을 혼자 잡은 한 딸이 바닥에 늘어져 쳐진 줄을 슬프게 바라보며, 등 돌린 엄마가 한 번만 잡아주길, 제발 자기를 한 번만이라도 바라봐 주길 하염없이 기다리는 가여운 상황이 그림으로 나왔는데, 그게 마치 예전의 나와 엄마의 관계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결혼하고서도, 나는 미련하게, 그 끈을 살짝 몰래 잡고 있었다. 어느 날은 엄마가 조금은 자애로워졌다고 생각했다. 결혼하고 만삭이 된 내게 엄마가 전화했다.     



“엄마가 부모 복이 없어서 몸조리도 혼자 했어. 그때 너무 힘들었다, 그런데 다른 사람들 보니, 친정엄마가 몸조리 한 달씩 해주고 가는 게 무척 부럽더라, 너는 걱정하지 마라, 엄마가 몸조리 다 해 주께.”       

   

나는, 말만 들어도 너무 행복하고 고마웠다. 그런데, 역시나 엄마는 엄마였다. 병원에서 퇴원한 지, 일주일도 안 돼서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당신 집으로 가셨다. 심지어 그 일주일은 아가가 황달로 병원에 입원해 있을 때고, 아이가 퇴원해서 밤낮없이 울자, 바로 가셨다. 엄마만 믿고, 산후 조리원도, 도와줄 사람도 아무도 구하지 않아서, 나는 아이를 낳고 제왕절개의 상처가 아물지도 않은 상태에서 울면서, 아이를 씻기고 먹였다. 그때의 그 고통을 생각하면, 지금도 몸과 마음이 아픈 거 같다. 그런데도, 또 나는, 그저 엄마를 어떻게든 이해하고 싶었다. 엄마를, 내 엄마를 미워하는 엄마가 되고 싶지 않았다. 나도 이제 엄마니까.   

   

몇 년 후 엄마는 내 곁으로 급작스럽게 이사를 왔다. 그때도 속도 없이 그저 엄마가 내 곁으로 이사를 온다니 또 너무 행복했다. 그런데 역시 우리 엄마는 우리 엄마였다. 절대 변하지 않았다. 이사 온 엄마는 딸에게 해서는 안 될 부탁을 해서 줄곧 나를 남편 앞에 면목이 없도록 만들었다. 인간쓰레기라 불리던 동생은 숨어버린 부모님 댁 대신 우리 집에 와서 밤이고 낮이고 행패를 부렸다. 경찰이 출동할 때까지 말이다. 새댁이었던 나는 엄마가 부모로서 겪어야 할 고통까지 내가 다 대신 겪으며 너무 괴로워서, 엄마에게 말해보았지만, 별 반응 없이 그러냐 했다. 당신 대신 딸이 그토록 고통받아도 그러냐 했다. 그때도 나는, 미련해서 깨닫지 못했다.     

그땐, 내가 엄마를 사랑해서 엄마를 지켜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15년 정도 지난 지금 와 생각해 보니, 평생 단 한 번도 받아보지 못했던 엄마라는 사람의 사랑을 받기 위해, 엄마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딸이 되고 싶어서, 알아주지도 않는 방패막이가 되어 애정을 구걸하는 어린 ‘나’가 그때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 후유증으로 우울증이라는 병까지 얻어 수년간 고생을 했다. 결국, 나의 삶과 내 가정의 행복까지 위태로운 지경에서도 엄마를 내가 지켜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난 참 바보였다. 그저 우리 엄마에게 딸이란 존재는, 아무것도 아닌, 그저 아주 통제하기 쉬운 방패막이, 허수아비였을 뿐이었는데 말이다.      


이후로도 엄마는 한결같았다. 심지어 딸이 수술해도 모진 말로 전화를 끝내던 울 엄마. 딸이 수술해서 병원에 누워있어도 아들네와 피서가던 울 엄마. 사실 우리 엄마는 지금도 그렇다. 사람은 타고난 성향을 쉽게 바꿀 수 없다는 것을 이제는 알 것도 같다. 엄마의 웃는 모습 뒤에 숨은 그 차가운 사람이 수틀리면, 언제든, 어디서든 다시 나올 수 있다는 것도 이제는 너무도 잘 안다. 나의 엄마는 21세기 지킬박사와 하이드 형 엄마였다. 딸에게 원하는 게 있으면, 한없이 다정하고, 수틀리면 무섭게 돌변한다. 역시 사람은 고쳐 쓰는 게 아니라는 말을 떠올리며 엄마를 처음으로 포기했다. 내가 내 부모에게 이런 말을 쓰게 될 줄이야. 참 비통한 일이었다. 그러고도 바보같이 또 엄마의 다정한 미끼 말 한마디에 또, 기대하고, 속고, 기대하고 그랬다.     


사실, 예전에도 그랬지만, 지금도 엄마는 진심으로 내게 미안해하지도, 안쓰러워하지도 않는다. 필요한 것이 있을 때만 미안한 척한다. 귀찮아서 이제는 그냥 속고 말기도 한다. 딸의 마음 약함을 뼛속 깊이 알고 있는 엄마는 손바닥 들여다보듯 다 들여다보고 자신의 상황에 맞게 딸을 잘 활용하고 있었을 뿐이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렇지만, 이제는 나도 나이가 들어서인지, 아니면, 고통과 책을 통해서 나도 모르게 스스로 깨달음을 얻은 것인지, 그 원망스럽던 엄마도 나이가 들어 분노할 대상이라기보다 측은하다는 생각이 든다. 어느 날 난 슈퍼를 다녀오다 아파트 베란다에서 아래를 내려 보고 있는 엄마를 보았다. 그때 문득, 엄마는 저렇게 머리가 하얘지도록 나이가 드셨어도 여전히 딸이 내미는 애정의 끈만은 진심으로 잡는 법이 없으니 참 불쌍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그녀도 안쓰러운 사람이다. 한 번도 자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하지 않았으며, 늘, 자기 자신은 물론, 45년을 함께한 남편이나, 자기 속에서 나온 자식조차도 단 한 번도 진심으로 사랑할 수 없는 운명이라니. 저주라면 정말 지독한 저주일 것이다.

아무것도 바꿀 수 없다면, 인제 그만 단념해보자. 돌아오리라는 기대 없는 부모의 공감과 사랑을 말이다.





엄마가 너무 밉다는 너에게 말해줄게.


엄마가, 네가 내미는 손을 잡아줄 기미가 보이지 않으면,

하염없이 슬퍼하며 기다리며 네 마음을 알아주길 고대하지 말고

네가 먼저 그 줄을 확 놓아버리자.      


넌 지금까지 정말 애썼어, 그 정도면 됐어.

이제, 그만 부모를 내려놓자.     



그리고 오늘부터는, 

부모와 자녀 간의 관계를 다룬 책을 읽고 필사하자. 

또 그 글을 여러 번 읽으며 부모가 주지 못한 사랑과 공감을 

스스로 노트에 써넣고 읽어보자.



‘아가, 너 참 아주 외로웠겠다.

그래도 이만큼 훌륭한 어른,

자상한 엄마가 되었으니 정말 잘 자랐구나.’

이렇게 말이야.


그렇게 너 스스로

부모-자녀 간의 관계를 다룬 다양한 책과 함께 

마음 깊은 곳으로 내려가서 아픔을 치유하고 올라오자. 

       

네 안에 있는, 사랑받지 못한 어린 소녀를,

스스로 위로해 주고, 그만, 떠나보내자.

그리고, 너도 이제 진짜 엄마가 되는 거야.








[추천 책 & 마음으로 쓴 서평]


<나는 착한 딸을 그만두기로 했다>(아사쿠라 마유미, 노부타 사요코, 북라이프, 2017)

:저자는 "너도 엄마 돼봐라, 자식 낳아 봐야 엄마 맘을 알지"라고 하는 엄마들의 말에 대해 우리가 당연히 엄마가 아닐 때는 엄마 맘 모르는 게 당연하고, 그런 말을 하는 부모의 행동이 당연히 모두 옳았던 것도 아니라고 이야기한다. 그러니 그런 식으로 부모님이 하는 말에 신경 쓰고 상처받지 말라고 충고한다. 오히려 엄마 말대로 자식을 낳고 나서 엄마가 되고 보면, 엄마를 이해하기는커녕 되려 엄마가 어찌 나에게 그렇게 심하게 행동을 했을까, 이해할 수가 없다며 새삼 분노를 느끼는 사람이 더 많다는 것이다. 나조차도 그랬다. 사실, 내가 엄마가 되기 전에는 그냥 내가 못나서 나쁜 아이라서 어린 시절 엄마한테 사랑받지 못했나 보다 했다. 또 어른이 돼서는 엄마한테 부끄러운 자식이라서 엄마가 내게 했던 몹쓸 말과 행동들이 다 정당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사실은 엄마라는 존재는 절대 그래서는 안 되었다. 그것을 내 자식을 낳고 키우면서 깨달았다. 엄마는 늘 "너 같은 딸 낳아서 똑같이 고통받아봐라" 하셨는데, 정말 그런 말을 어떻게 딸한테 할 수 있었는지 수십 년이 지난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밖에 나가면, 다들 어찌 이리 성실하고 착하냐며 다들 나를 칭찬을 해주어도, 난 늘 엄마에게 저주의 말을 듣고 컸다. 지금 생각해보면 난 그냥 엄마의 화풀이 대상이었던 것 같기도 하다. 똑같은 행동을 해도 엄마가 기분 좋을 땐 아무렇지 않게 넘어가고 엄마가 기분 나쁠 땐 죽도록 맞는 것이다. 정말 혼란스러웠던 어린 시절이었다. 그나마 어느 정도 커서부터는 때리진 않았지만, 지금도 무서웠던 순간들이 생생하게 영화처럼 떠오른다. 절대 그러지 말았어야 할 일을 태연히 하고도 엄마는 아무 기억 안 난다고 한다. 늘 엄마는 잊고 싶은 것만 잊었다 한다. 그래서 나는 엄마 같지 않은 엄마가 되려고 자꾸 나를 돌아보고 어린 시절을 돌아보고 어린 시절의 엄마와 현재 엄마인 나를 돌아본다. 그러면 엄마의 흠이 보이고 울고 있는 어린 내가 보이고 그러면 퍽 슬퍼진다. 그래도 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자꾸만 지난날을 되새겨 보고 그런 잘못을 저지르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나도 어느새 엄마 같은 엄마가 될 피가 흐른다는 생각이 들고 너무나 무서운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엄마에 대해 생각해보고 적어보고 믿을 수 있는 지인 앞에서 서로 읽어보라고, 우리가, 우리 엄마들이 당연하게 우리에게 했고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엄마의 행동 중에는 정말 대단히 많은 잘못이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는 것이다. 아프지만, 그런 고찰의 과정을 겪어야만 내 자식에게 그런 나쁜 행동을 하지 않을 수 있게 되는 거라고 작가는 그리 말한다. 엄마와의 관계를 원망하면서도 이유 모를 죄책감에 시달리는 딸들에게 이 책을 추천한다.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마사 스타우트 지음, 이원천옮김, 사계절, 2020)      

:이 책의 저자는 앞서 하버드 의과대학 정신과 교수이면서 심리적 트라우마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로 고통받는 환자를 직접 치료하였다고 한다. 저자는 환자들이 겪는 심리적 내상인 외상 후 스트레스를 제공하는 원인 원에 대해 고심해왔다고 한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과연, 어떠한 종류의 사람들이 양심이 전혀 내장되지 않은 것처럼 같은 인간에게 전쟁의 후유증과도 같은 큰 내상을 남길 수 있는지를 탐색한다. 그럼 저자가 말하는 이토록 친밀한 배신자들이란 누구인가? 주로 친족 및 가족과 자녀 등을 포함해 모든 사람을 학대하는 행위에 가책이 없는 사람들이다. 저자는 이들을 '소시오패스'라 말하며, 소시오패스는 우리 곁에 형제, 자매, 부모, 자식, 친척, 친구, 직장상사 등의 다양한 모습 중 어떤 모습으로도 존재할 수 있다고 한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그리고 평생토록, 다른 사람들에게 공감, 사랑 등을 느끼지 못하는 결함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며, 외관상으로 구분이 불가하다고 한다. 저자는 이런 사람들이 주변에 있다면, 될 수 있도록 거리를 두거나 도망칠 수 있다면 도망치라고 이야기한다. 이 책은, 나의 부모를, 엄마를 전혀 다른 눈으로 해석해 볼 수 있게 한다. 우리들의 엄마가 우리의 사랑을 사랑으로 받았는지, 수단으로 이용했는지를 곰곰이 생각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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