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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n Mon Nov 14. 2021

Heels to Die for

12 Women. 12 Pairs of shoes. 12 Stories.

슈 프로젝트 첫 번째 이야기.  

Heels to Die for

어릴 적 모든 소녀들의 선망의 대상은 아마도 대부분이 태어나고 처음 접한 여성— 자신들의 어머니일 것이다. 특히, 나의 엄마는 무척이나 아름답고 스타일리시했으며, 더욱이 그럴 것이 20대의 우리 엄마는 신인 탤런트였다. 나의 아버지는 꽤 알려진 방송국의 TV 드라마 연출가였고 두 분은 KBS 신인 배우 오리엔테이션에서 처음 만나서 사랑에 빠졌으며, 엄마는 촉망받는 배우의 길대신 아버지와의 결혼을 결심했다. 엄마는 한 번도 그 결정을 후회하진 않았지만, 가끔은 젊은 그 시절을 그리워하곤 했다.


내 어릴 적, 엄마의 신발장은 우아하고 멋진 하이힐이 가득했으며, 한 번도 엄마가 다른 신발을 신고 외출한 것을 본 적이 없을 정도로 나의 엄마는 가족들과의 외식에, 친구들과의 모임 약속, 심지어 시장에 갈 적에도 언제나 하이힐은 엄마와 함께 했다. 나는 어릴 때부터 엄마의 하이힐에 아주 관심이 많아 걸음마를 막 시작하면서부터 엄마의 구두들을 탐냈고 틈만 나면 엄마의 신발장을 기웃거렸다. 그럴 적마다 엄마는 그녀의 보물들을 신발장 가장 깊숙이 그리고 나의 손이 닿지 않는 높은 선반 위에 숨겨두곤 했고 그럴수록 나의 엄마의 하이힐에 대한 집착은 더 커져 갔다.

내가 5,6살 정도 된 어느 여름날, 드디어 기회가 찾아왔다. 엄마가 외출하시고 외할머니께서 나와 2살 어린 여동생을 봐주러 오신 날, 난 할머니가 부엌에서 바쁘게 저녁을 준비하시는 틈을 타서 몰래 식탁의자를 신발장 앞에 끌고 와서 가장 신고 싶었던 엄마의 새 금색 하이힐을 골라 조용히 안방으로 살금살금 들어와 몰래 신어보았다. "와우, 정말 멋져, 난 절대로 죽을 때까지 이 구두를 벗지 않을 거야!!”


혼자 거울 앞에서 도취하고 있는데, 할머니가 저녁이 다됐다고 나와 여동생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난 몰래 집 밖으로 빠져나가 정원을 통해 옥상으로 올라가는 작은 계단으로 향했다. 그곳은 나와 내 여동생의 보물 창고이며 우리의 피난처였다. 불쌍한 나의 할머니는 나를 여기저기 찾았고 결국 할머니가 옥상의 장독대 사이에 숨어있는 나를 발견하고 소리쳤다. “여기서 뭐 하고 있는 거냐? 당장 그 구두 벗지 못해?” 난 너무 놀라서 내가 엄마의 하이힐을 신고 있는 사실도 잊은 채 할머니에게서 벗어나려 가파른 철제 계단으로 도망쳤다. 그 순간 나의 발은 계단에 걸려 헛디디였고 내 몸은 바닥에 내동댕이쳐졌다. 물론 엄마의 하이힐과 함께…

그다음은 짐작하실 수 있을 것이다. 병원 응급실 침대 위에서 정신 차린 나는 할머니에게 내내 잔소리하는 엄마를 보았으며 내 옆에서 눈이 퉁퉁 부어서 울고 있는 내 어린 여동생을 보았다. 불쌍한 내 동생은 내가 죽은 줄 알고 계속 울고 있었고 다행히 내 머리는 아무 이상도 없어 곧바로 퇴원할 수 있었지만, 그날 이후 엄마의 골든 하이힐은 더 이상 신발장에서 볼 수 없게 되었다.

세월이 한참 흘러 난 대학생이 되었고 졸업 후 직장에 들어갔으며 하이힐에 대한 사랑도 점점 깊어갔다. 매년 백화점 세일 시즌엔 난 구두 코너로 먼저 달려가서 더 많은 하이힐을 샀다. 내 월급의 절반이 구두 쇼핑에 들어가자 엄마는 내가 마치 이멜다 (전 필리핀 마르코스 대통령 부인으로 사치가 심해 그녀의 구두가 3,000 켤레에 이르렀다 한다.) 같다며 돈을 아끼라고 항상 잔소리하셨다. 하지만, 디자인 회사에 다니면서 나의 하이힐에 대한 사랑은 더 커졌고 매일 지하철을 타고 일하러 가면서 꼭 하이힐만을 고집했고 퇴근 후 발뒤꿈치 물집에 반창고를 붙이면서 다시 안 신어야지, 다짐하고도 그다음 날 꼭 다시 하이힐을 신고 출근했다.

어느 날 아침, 클라이언트와 중요한 미팅이 있는 날 지하철에서 내려 서둘러 회사로 달려가던 나는 갑자기 맨홀 뚜껑 구멍에 왼쪽 구두 굽이 끼면서 앞으로 넘어졌다. 내 프라다 핸드백과 소지품은 여기저기 날아갔으며, 내 두 번밖에 신지 않은 새 마놀로 블라닉의 굽이 부러져 꼴이 처참했다. 더 큰 문제는  내 발목에 이상이 있다는 걸 발목이 퉁퉁 부어오르는 걸 보면서 알게 됐는데 응급실에 도착하면서 첫 번째 나의 질문은 언제 다시 힐을 신을 수 있는지였다. 의사는 날 한심하게 쳐다보며 내 왼쪽 발목 뒤꿈치 뼈에 금이 갔고 앞으로 6주는 오로지 기브스와 목발을 하고 적어도 3달 동안 절대 운동화만 신어야 한다고 경고했다. 오 마이 갓, 운동화라니… 운동화는 오직 초등학교 때 달리기 할 때 신고 트레이드 밀 위에서만 신어야 한다 생각했는데… 나는 깊은 실망에 빠졌다.

그 이후, 한동안 난 하이힐을 쳐다보지도 못했다. 대신 굽이 높은 웨지힐 운동화에 관심을 가져서 하이힐을 못 신는 서러움을 운동화 쇼핑으로 대신했다. 지금 생각하면 참 우스운 이야기지만, 그 당시 나에겐 하이힐을 포기하는 것은 나의 자존감을 포기하는 것이라 무척 심각했다. 멋진 하이힐은 나 자신을 미성숙한 소녀가 아닌 섹시한 커리어 우먼으로 보일 수 있게 한다고 믿었다. 그 후 나이가 먹을수록 점점 하이힐에서 미들굽으로 그리고 플랫 슈즈로 그리고 보다 편한 부츠로 자연스레 옮겨졌고 이젠 아예 하이힐은 신을 엄두조차 가질 수 없게 되었다.

캐나다에서의 일 년, 지금 이 순간 나는 하이힐 대신 러닝화를 신고 땀 흘리며, 하이킹 부츠를 신고 아름다운 록키 산을 즐기며, 투박하지만 멋진 스키부츠를 신고 설원을 가로지르고, 클라이밍 슈즈는 나에게 정상을 정복하는 성취감을 가져다주며, 비가 오면 레인부츠를 신고 낭만을 즐긴다. 단지 하이힐만을 포기했을 뿐인데, 더 값진 시간들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나의 철없던 어린 자존감과 남이 나를 어떻게 보는지와 같은 강박관념 대신 진짜 내 인생을 즐길 준비가 돼있으며 이미 난 이 보우 밸리 (Bow Valley)의 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난 것과 다름없다.

나의 금색 하이힐은 이제 신발장이 아닌 깊숙한 내 옷장 한 구석에서 나의 유치한 어린 시절의 추억과 아름다웠던 젊은 내 엄마 모습과 함께 영원히 간직될 것이다.




작가 소개 Mon Mon


나는 지금 남편을 25년 전에 처음 만났고, 20년 떨어진 후에 다시 만나 사랑에 빠졌다. 다년간의 그래픽 디자이너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커뮤니티에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첫 봉사활동으로 Bow Valley Literacy Program의 학습자 출판물 "Meet the Locals"를 디자인했으며 현재도 5년 동안 디자인을 맡고 있다.  2016년 캐나다로 이주하기 전에 미국, 스웨덴, 중국에서 살았다.


"내가 어렸을 때 나의 매력적인 엄마의 하이힐을 사랑했다. 어느 날 엄마의 황금 하이힐을 몰래 신고 밖으로 나간 후 계단으로 떨어졌고 결국 병원에 입원했다. 어른이 되자 대학에 가서도 직장에 다닐 때도, 나는 하이힐에 여전히 미쳐있었고, 출근길에 넘어져 발목이 골절되어 병원에 다시 입원했다.  두 번째 사고 이후 무엇이 가장 중요한지 깨달았고, 이제 진짜 인생을 즐기며 어린 시절의 추억이 담긴 황금 구두를 마음에만 간직할 준비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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