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Women. 12 Pairs of shoes. 12 Stories.
우리는 아무 직업 없이 일 년을 버틸 수 있을 만큼 넉넉한 여행 자금을 모았다. 7년 전 지금의 남자 친구를 스페인에서 처음 만나고 우리가 캐나다 캘거리 (Calgary)에서 한 시간 반 거리의 캔모어 (Canmore)로 이사했을 때, 그와의 미래에 대한 계획은 더욱 진지해졌다. 우리의 계획은 이사 후, 첫 반년은 캐네디언 록키와 브리티시 콜롬비아 주 (BC)의 산과 절벽들을 등반하고 나머지 반년은 유럽으로 이주하여 내가 꿈꾸던 직업인 TV 리포터로 일 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또한 딸 출산 이후, 지루해진 남자 친구와의 관계를 리프레시하고 로맨스를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는 완벽한 기회이기도 했고 작년 말, 갑자기 사랑하는 부모님 두 분을 떠나보낸 내가 슬픔에서 벗어날 수 있는 계기로 삼기로 했다.
하지만 우리가 막 새 모험을 떠나려고 했을 때, 남자 친구는 평생 원했던 직장을 구했고 여행을 잠시 미루기로 하고 대신, 나는 그를 지원하고 나의 어린 딸을 돌보기로 결심했다.
그리고 1년 후, 우리는 마침내 여행을 시작했지만, 한 달 후 다시 캔모어로 돌아와야만 했다. 가파른 절벽을 클라이밍 하는 도중 나는 넘어져 내 왼쪽 발목이 부러졌고 당장 급한 수술과 몇 개월간의 집중적인 물리치료가 필요했다. 이 시기를 놓친다면 심각한 상태인 내 발이 완전히 정상 회복되지 못할 가능성이 있었다. 그리고 우리의 여행자금은 나의 치료에 쏟아부어 거의 바닥을 보이고 있었다.
나는 차디찬 첫 캐나다의 겨울을 나의 낡고 오래된 캠핑카에서 겨우 두 살이 막 지난 딸아이와, 너무 늙어빠져 대소변도 제대로 못 가리는 13살의 반려견 레니, 그리고 시큰둥해진 남자 친구와 함께 회복을 시작했다. 여름 동안에는 간단한 취사와 샤워도 밴에서 가능했지만, 겨울이 오면서 아는 지인의 집 근처에 주차하고 화장실과 부엌을 잠깐씩 빌리기도 했다. 영하 30도가 넘은 어느 겨울밤, 캠핑 밴의 수도 파이프가 얼어버렸고, 신고를 받고 나온 타운 공무원들이 친구 집 앞에 주차한 밴을 캠핑카 주차구역으로 이동시켜 버려 , 나는 높은 밴에서 땅으로 발을 디딜 때마다 미끄러운 얼음과 쌓인 눈 위에서 더 많은 뼈를 부러뜨릴 위험을 무릅썼다.
시간이 지나서 내가 목발 없이도 걸을 수 있었던 첫날, 딸아이의 새 양말을 사러 밴프의 메인 스트리트로 걸어갔을 때 비싸 보이는 신발 가게 앞으로 지나가면서 스웨이드로 싸여있고 투박하지만 부츠 안에 플리스가 들어있어 따뜻해 보이는 겨울 부츠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그 부츠는 너무 아름다웠고 거의 빈털터리가 된 나에겐 그림의 떡이었지만, 나도 모르게 내 주변의 선량한 사마리아인 같던 지인 중 누군가 몰래 사서 내 밴에 넣어 놓았다.
추운 겨울이 지나고 봄이 시작되면서 딸과 나는 작은 원룸으로 이사했고, 내 남자 친구는 계속 밴에 머물렀다. 미리 차디차게 식어버린 우리의 별거는 너무 끔찍했고 내 친구 중 한 명은 이런 상황을 전쟁 도중 참호에 숨어 사는 것과 비교했다. 하지만 나는 이제는 신뢰하기 힘든 남자 친구에게 계속 의지하고 있었고 끝내 그의 차디찬 시선을 더 이상은 견딜 수 없었다. 결국, 우리는 서로에게 시간을 주기로 하고 결별했다. 나는 나만의 돈과 어린 딸을 돌볼 수 있는 직업이 몹시 필요했다. 말 그대로 나는 다시 맨몸으로 자립해야 했다. 지난 몇 년 동안 내가 겪었던 모든 일들 — 캐나다로의 이민, 딸 출산과 싱글맘이 되는 것, 사랑하던 부모님을 잃은 것, 그리고 나의 심각한 발목 부상은 내가 옛사랑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의존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나를 내몰았다.
몇 주후, 다행히 나는 밴프 센터에서 무대 매니저 일자리를 구했다. 면접을 준비하면서 제일 먼저 절뚝거리지 않도록 척추 지압사 (chiropractor)를 찾아가서 뼈를 다시 맞춰야 했다. 그 끔찍한 고통을 견디고 나서 나는 처음으로 아름다운 새 부츠를 신었다. 싱글맘으로서 첫해를 보내는 동안 그 부츠는 나의 버팀목이었다.
만약 내가 돈이 더 있었다면, 그 부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드럼 키트를 들고, 피아노를 옮기고, 무대 위에서 쉴틈없이 움직일 동안 부츠는 내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게 해 주었다. 한걸음 한걸음 고통 속에서 걷는 법을 혼자 배우게 해 주었고 내가 다시 두 발로 걸을 수 있도록 도와주었다. 일 년 내내 매일 똑같은 부츠를 신고 다녔는데 물리치료사 말로는 그게 내가 빨리 낫게 도와줬다고 했다. 그 부츠는 다른 사람의 도움 없이도 혼자 자립할 수 있다는 것을 내게 확인시켜 주었고 나는 스스로가 자랑스러웠다.
언젠가는 너무 낡고 헤져서 다른 부츠가 필요하겠지만, 오늘도 출근길엔 어김없이 그 부츠를 신고 간다. 그리고 이제는 좀 더 자라서 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된 딸을 생각하면서 행복한 미소를 지어 보인다.
이 스토리는 워크숍에 참가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허락을 받고 번역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간단한 글쓴이의 소개를 남깁니다.
작가 소개 Nurdjana de Rijcke
누르드자나는 스페인 등반 여행에서 만난 캐네디언 남자친구와 함께 살기 위해 6년 전 캐나다로 이주했다. 네덜란드에서 저널리스트로서 성공적인 경력을 쌓았던 그녀는 캐나다 록키산맥에서 더 느린 속도로 생활하는데 익숙해 지고있다. 가족으로는 어린 딸이 있고 다시 재결합한 남자친구의 둘째 아기를 임신 중이다.
"인생의 파란만장한 시간이 지난 후, 남자친구와 나는 우리의 삶과 험난한 관계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여행을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 달 후 우리는 전보다 더 큰 곤경에 처했다. 발목을 심하게 다치고 나서 혼자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고, 비밀스러운 선한 사마리아인의 도움으로 다시 자립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