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 Women. 12 Pairs of shoes. 12 Stories.
내가 태어나고 자란 일본의 나라현에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사원이 완벽하게 보존되어 있다. 우리 어머니는 어릴 적 나에게 풍부한 일본 역사의 일부인 이 문화재를 감상하는 법을 가르쳐 주셨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나는 전통 기모노를 좋아했다. 기모노는 긴소매와 장식용 띠가 달린 긴 길이의 일본 예복으로 격식을 차릴 때 입는다. 그것을 입기에 가장 적합한 시기는 일본에서 20살이 된 어른이 된 것을 기념하기 위한 국경일인 세이진노히이다.
나는 어른이 된 후 첫 기모노로 반짝이는 하늘색 실크를 선택했다. 전형적인 행운의 빨간색이나 너무 걸리쉬한 연분홍색이 아닌 (나에겐 어울리지도 않지만), 왜냐하면 나는 평균보다 큰 키로 또래보다 키가 한 뼘 이상 커서 성숙해 보였고 어머니는 내 이런 선택에 만족하신 듯이 보였지만 어쩌면 나는 그냥 그렇게 믿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한 가지 문제가 있었다. 내 기모노와 어울리는 아름다운 실크 슬리퍼는 내 큰 발에 비해 너무 작았다. 그 슬리퍼는 플리플랍 (flip-flops)처럼 만들어져 있어서, 발뒤꿈치와 발가락이 걸려도 상관하지 않는다면, 나는 여전히 그것을 신을 수 있었다. 어쩌면 나는 그냥 기모노 스커트 밑에 내 큰 발을 숨기고 싶었던지도 모른다. 작고 귀여운 발이 전통 기모노와 잘 어울리는 것처럼 나의 덩그러니 큰 발은 전통사회의 한 부분이 되고 싶을 때 숨겨야 할 불편한 비밀과도 같았다.
나의 어머니는 1934년에 태어나셔서, 그녀는 어린 시절을 2차 세계대전 전쟁의 공포 속에서 자랐다. 그녀는 기관총으로 어린 자신을 겨냥했던 미국인 B29 조종사의 잔인하게 웃는 얼굴을 아직도 기억했다. 엄마는 논도랑에 숨어서 간신히 총알을 피했고처음 내게 그 이야기를 고백한 날밤, 나는 지옥과도 같았던 생생한 그 장면들로 밤새 악몽에 시달렸다.
어렸을 때 어머니는 결핵을 앓으셔서 여러 해 동안 집에 틀어박혀 있었고, 중학교도 졸업하지 못했다. 어머니의 가족은 매우 가난했지만, 미국에서 수입된 항생제인 스트렙토마이신을 사기 위해 작은 가구들를 만들어서 이웃에 팔았다. 미국은 어린 그녀를 한번 죽이려 했었지만, 어머니의 믿음과 삶에 대한 애착은 그녀가 끔찍한 고통 속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게 만들었다.
1991년, 나는 일본을 떠나 캐나다에서의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 그리고 24년 후, 5년 만에 엄마를 방문하기 불과 3주 전에, 일본의 가족으로부터 어머니가 갑자기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었다. 나는 9,000km 나 떨어져 있었고, 24시간 만에 겨우 그녀의 장례식에 도착할 수 있었다. 장례식 다음날 밤, 여동생이 전해준 하얀 비단으로 싸인 작은 나무상자 앞에서, 그동안 그녀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말할 수 없었던 것들을 고백했다.
"죄송해요, 엄마, 제시간에 못 왔어요. 혹시 제가 엄마를 외롭게 했고 슬프게 했나요? 어머니, 왜 저를 기다리지 않으셨어요? 엄마가 3주만 더 살아있었더라면, 내가 엄마 곁에 있었을 텐데. 당신의 삶에 대해 좀 더 알고 싶었지만, 지금은 너무 멀리 떠나버렸네요. 듣고 계세요?"
캐나다로 다시 돌아온 나는 엄마가 남긴 작은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 안에는 엄마가 생전에 아끼시느라 몇 번 안 신었던 엄마의 작은 슬리퍼가 들어있었다. 그것들은 전통적인 벚꽃과 완벽한 대칭을 가진 국화 문양의 축제용 황금 비단으로 만들어졌다. 슬리퍼 앞은 기묘할 정도로 좁고 우아하며 슬리퍼의 양 끈은 금색으로 그에 어울리는 실크 파이핑으로 장식되어 있다. 엄마는 나에게 이 슬리퍼가 너무 작다는 것을 알고 계셨을까? 가끔 나는 그것들을 내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나의 어머니의 숨겨진 이야기들에 대해 궁금해하곤 한다.
이 스토리는 워크숍에 참가했던 친구들의 이야기를 허락을 받고 번역해서 올리는 글입니다.
간단한 글쓴이의 소개를 남깁니다.
작가 소개 Osada Noriko
노리코는 1991년 일본에서 캐나다로 이민을 와서 남편 카오루와 세 딸과 함께 살고있다. 그녀는 파트타임 회계사로 일하고 있으며 글쓰기에 대한 자신의 사랑을 탐구하고 있다.
"나는 일본과 일본의 오랜 역사와 문화를 사랑했지 내가 그곳에 잘 어울리지 않는다고 느꼈다. 내 특별한 첫 기모노를 위해 전형적인 색을 입고 싶지 않았고 거기에 어울리는 슬리퍼는 너무 작았다. 나의 어머니는 2차 세계대전과 결핵으로 어려서부터 힘든 시기를 겪었지만 내가 이민 사회에 적응할 수 있는 정신적 지주가 되어 주셨다. 어머니와 더 많은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았겠지만, 어머니가 돌아가신 후 엄마의 실크 슬리퍼 한 켤레가 나에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