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이 되지 못한 마음들을 따라, 나도 써 내려간다
서랍을 정리하다가,
너무 얇고 조용해서, 그동안 눈에 잘 띄지 않던 노트를 하나 발견했다.
회색 표지에 아무것도 쓰여 있지 않은,
형의 손이 닿았던 흔적이 남아 있는 노트.
무심코 펼쳤다.
형의 글씨였다.
다정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글씨.
조금은 기울고, 조금은 삐뚤빼뚤한 그 글자들이
아무도 모르게 써 내려간 형의 마음처럼 느껴졌다.
처음엔 아무 생각 없이 읽었다.
근데 어느 순간, 글씨 사이사이로 형의 말투가 들려왔다.
형은 그 노트에 무언가를 고백하고 있었던 것 같았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것들.
불안과 두려움, 괜찮다는 말의 뒤에 있던 진심.
그리고 때로는,
살아 있다는 감각을 기록하려는 듯한 짧은 문장들.
그 노트를 다 읽고 난 뒤, 나는 멍하니 앉아 있었다.
그리고 갑자기,
나도 뭔가 써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형이 하지 못한 말을
대신 말해줘야 할 것 같았다.
아니, 형이 살아 있던 그 시간을
그냥 흘려보낼 수 없었다.
나는 천천히 공책을 펴고,
아주 오랜만에 펜을 들었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지만
일단 쓰기 시작했다.
형에게 말을 걸듯이.
형의 노트에 대답하듯이.
아마 이 글도
그때의 첫 문장에서 시작되었을 것이다.
형이 남긴 얇은 노트.
그 한 권이,
지금 내가 계속 글을 쓰게 만드는 가장 조용한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