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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글샘 Jul 27. 2023

데미안

나를 찾아 가는 길<헤르만 헤세 저>

수많은 청소년 권장도서들이 있지만, 읽어보고 확인하는 편이다. 다소 관념적 어휘들이 많이 나오고 그리 쉽게 읽히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책을 읽고 자아에 대해 많은 생각을 일으키기에 청소년들에게 적극 권장하는 도서이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은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길이다.


헤르만 헤세는 1877년 선교사의 아들로 태어났으며, 열다섯 살에 자살을 기도해 정신병원에 입원하는 등 질풍노도의 청소년기를 보냈다. 1919년을 전후로 헤세는 개인적인 삶에서 커다란 위기를 겪고, 이로 인해 그의 작품 세계로 전환점을 맞이하는데, ‘데미안’이 바로 이 시기를 대표하는 작품들이다. 헤세는  이 작품들과 더불어 ‘내면으로 가는 길’을 추구하기 시작했고, 이후 그림과 음악은 헤세의 평생지기가 되었다. 그후 여러 유명한 작품을 발표해고, 노벨 문학상을 수상했다. 작품 속에는 헤세의 고민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아버지의 신성함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내 유년 생활을 떠받치고 있는,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되기 전에 깨뜨려야  하는 큰 기둥에 그어진 첫 칼자국이었다. 그런 칼자국과 균열은 다시 늘어난다. 그것들은 치료되고 잊혀지지만 가장 비밀스러운 방 안에서 살아 있으며 계속 피흘린다. 그 새로운 느낌에 곧 나 자신이 무서워졌다.


늘 밝고 말 잘듣고 예쁜 아이였던 아이들이  어느 순간 언제 그랬냐싶게 돌변한다. 까닭 없이 눈물을 흘리고, 화가 나서 주체를 못한다. 이러한 사춘기를 보내는 동안에 당사자도 가족들도 얼마나 힘들어 하는가? 하지만, 반드시 지나가야 하는 것이니! 헤세는 그것을 두 세계라고 한다. 밝고 올바른 세계와 그렇지 않은 세계!

읽는 동안에 헤세의 고민들이 지금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사춘기에 고군분투하는 청소년들의 삶과 다르지 않음을 느끼고, 어느 순간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아마 우리 아이들이 겉으로 보이는 행동들 이면에는 이런 고민들이 깔려 있었으리라!라는 생각이 스며들었다.


낯선 귀신이 들려 내가 그토록 친밀했던 우리들의 공동체와 더 이상 어울리지 않았던 것이다. 그 공동체를 향하여 마치 잃어버린 낙원을 향한 것 같은 격렬한 향수가 자주 엄습했다. 특히 어머니는 나를 악동이라기보다는 환자 취급을 하셨다.그 모든 것이 운명이었는데, 사람들은 일종의 궤도 이탈로나 보리라는 것을. 자신의 감정들의 한 부분을 생각 속에서 수정하기를 익힌 어른들은, 어린 아이에게서 나타나는 이런 생각을 잘못 측정하고, 이런 체험들도 없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내 인생에서 그 당시처럼 깊게 체험했으며 괴로워했던 때도 드물다.


부모의 입장에서 읽다보니 괴로워하는 주인공 에밀 싱클레어가 가족들관계에서 느끼고 고민하는 부분에 더욱 주목하게 되었다. 기존의 가족과 더 이상 어울리지 않는다는 생각, 그리고 그 공동체에 끼고 싶다는 향수라는 부분은 집 안에서 사춘기 자녀를 키우고 있는 부모라면 격공감 할 것이다. ‘환자 취급’ 또는 곧 돌아올 것이라도 믿는 ’궤도 이탈‘ 정도로 생각하는 것도 역시 부모라면 다 가지고 있는 생각 아닐까? 헤세가 말한 ‘자신의 감정들의 한 부분을 생각 속에서 수정하기를 익힌 어른들’이라는 대목에서, 자기 자신에게로 이르는 성숙된 어른의 자질 중의 하나가 감정에 휘둘리지 않고 합리적인 사고와 판단으로 생각하는 능력을 꼽은 건 아닌가? 란 생각이 들었다. 부모는 자신의 생각을 잘 못 측정하고, 이런 괴로운 체험들도 없었다고 느끼는 아이의 입장을 다시금 느껴보게 되었다.


천천히 눈뜨는 성에 대한 감정이 나에게도 하나의 적이자 파괴자로, 금기로, 유혹과 죄악으로 들이닥쳤다. 나의 호기심이 찾은 것, 꿈과 기쁨과 두려움이 내게 가져다준 것, 사춘기의 큰 비밀, 그것은 내 유년의 평화에 감싸인 행복감에는 맞지 않았다. 이제 더는 어린아이가 아닌 아이의 이중 생활을 영위했다. 내 속에서 유년의 세계가 붕괴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부모라는 존재가 이 점에서 얼마나 도움이 될 수 있는지는 내 부모님을 비난하지는 않겠다. 자신을 다스리고, 나의 길을 찾아내는 것은 내 자신의 일이었던 것이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생의 분기점이다.삶에서 오로지 한 번, 유년이 삭아가며 서서히 와해될 때, 우리의 사랑을 얻었던 모든 것이 우리를 떠나가려고 하고 우리가 갑자기 고독과 우주의 치명적인 추위에 에워싸여 있음을 느낄 때 경험하는 것이다.


유년기의 끝! 사춘기에 접어들면서 혼란과 고독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어른이 된 지금은 잊어버린 고뇌의 감정을 다소 관념적인 표현들이 많아 모호한 부분들도 있지만, 표현하기 어려운 영역의 감정의 부분을 묘사한 부분에서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시대가 흐르고 세월이 변해도 가치를 인정받는 고전에는 다 이유가 있음을 다시 한 번 느낄 수가 있었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투쟁한다. 알은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깨뜨려야 한다.


방황과 정학의 위기를 거치며 힘들고 힘든 시기를 지나오며 소설의 마지막에 이르서 주인공 싱클레어는 말한다. ‘


완전히 내 자신 속으로 내려가면 거기서 나는 검은 거울 위로 몸을 숙이기만 하면 되었다. 그러면 나 자신의 모습이 보였다. 이제 그(데미안)과 완전히 닮아 있었다. 그와, 내 친구이자 나의 인도자인 그와’


데미안은 떠날 것이라고 말하며 이제는 부르더라도 달려오지 못하니 ‘네 자신 안으로 귀기울여야 해’라고 말한다. 소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유년기의 시절부터 힘든 시기 마다 함께 한 ‘데미안’과 주인공 ‘싱클레어’가 거의 하나로 합치된 것을 알 수 있다. 마지막에 이르러서야 유년기의 붕괴로부터 사춘기를 통해 고통스럽게 찾아낸 자아의 소중함이 표현되어 있다. 싱클레어가 유년으로부터 자아에 이르는 과정을 통해 읽는 이로 하여금 각자의 겪어온 성장의 경험들을 떠올리게 된다.


부모가 되어서 읽는 데미안은 ‘자아를 찾는 과정’ 속에서 방황하는 청소년들을 마음으로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부모 뿐만 아니라, 지금 사춘기를 격렬하게 지나고 있는 청소년들이 읽는다면, 나 혼자 지나가야 하는 고독의 길이라고 느껴지는 이 과정을 함께 해줄 동반자 역할을 이 소설이 톡톡히 해준다고 본다. ‘싱클레어’에게는 ‘데미안’이 있었듯이 방황하는 청소년에게는 ‘헤르만 헤세의 소설’이 함께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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