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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은 그런 것을 '거래'라 한단다.

by 뇌전증과삶

첫 번째 파혼 후 나는 한동안 마음을 정리했고 또 다른 사람을 만났다. 이 사람 또한 내게 진심이었고 나도 결혼할 나이가 되었기에 결혼까지 약속하게 되었다. 나 또한 그가 너무 좋았기에 모든걸 다 해주고 싶었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결혼에 가까워져 갔다.


나는 첫 번째 파혼 후 두 번째는 반드시 결혼을 하려고 노력했다. 파혼이라는 게 말은 쉽지만 막상 겪어보면 마음에 상처가 엄청나게 쌓이기 때문에 나는 파혼은 무조건 피하고 싶었다.


남자친구의 어머니를 처음 만났을 때 어머님은 내게 딱 잘라서 얘기를 하셨다. 6년전임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그 단어가 생생하게 기억나는 것을 보면 정말 충격적이었던 것 같다.


'의사선생님한테 가서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을 확률이 어느정도인지 자필로 써달라고 해라 그거 보고 결혼 승낙해주겠다'


나는 그 얘기를 듣고 너무 당황했다. 정말 궁금하면 같이 가면 되는 것이고 왜이렇게까지 내가 해야하지?난 애 낳는 기계가 아닌데??


그 자리에서는 당황해서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러고는 결혼을 허락하는 쪽으로 분위기가 흘러갔고 남자친구는 잘됐다며 식사를 마저했다.


남자친구의 부모님과 헤어진 후 나는 남자친구에게 이 얘기를 꺼냈다. 내가 애 낳는 기계가 아닌데 벌써 애 얘기부터 시작해서 무조건 내가 장애를 가진 아이를 낳을것처럼 말하는 게 너무 속상하다 이런식의 대화였다.

남자친구는 부모님이랑 잘 얘기가 끝났는데 왜 그러냐며 결혼하고 싶으면 이정도는 너가 양보해야하지 않냐고 오히려 나를 다그쳤다. 그러며 그거 이기적인 것이라고 했다. 우리 어머니가 양보를 했으니 너도 양보를 해야한다는 식으로 말했다.


나는 너무 속상해서 눈물을 흘리며 알겠다고 하고 집으로 왔다. 이렇게까지 해야할까?애를 낳지 못한다고 혹은 장애아를 낳을 확률이 높다면 결혼은 허락 못해준다는 게 맞는걸까? 온갖 생각이 머리를 어지럽게 만들었고 나는 부모님께 이 얘기를 하게 되었다.


부모님은 당연히 엄청 화를 내며 당장 만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나는 어떻게해서든 두 번째 파혼은 미루고 싶었다. 그래서 남자친구에게 조심스럽게 얘기를 꺼냈다.


'자필로 받는 건 너무한 거 같고 네가 같이 동행하면 안될까?' 내가 이 얘기를 했을 때 남자친구는 어머니가 겨우 허락해주셨는데 그게 어렵냐며 나한테 오히려 화를 냈다. 나도 노력했으니까 너도 노력을 하라는 식으로 얘기를 했는데 너무 화가나서 전화를 끊어버렸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긴 연애 끝에는 또 파혼이였다. 두 번의 파혼을 겪고 난 후에 나는 내가 이기적인가?진지하게 고민했다. 내가 이기적일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자필로 글좀 써달라고 의사선생님께 부탁했으면 결혼할 수 있었을텐데 결국 내 행동으로 파혼한 건 아닐까? 나쁜 생각은 나를 더욱 땅 밑으로 끌어내렸다.


나는 고민을 하다가 답이 안 나와서 이 문제에 대해서 명쾌하게 답을 내려줄 수 있는 사람에게 갔다. 초등학교 옆 작은 병원은 여전히 옛 느낌이 가득했고 간호사 선생님도 여전히 의사선생님과 함께 나이들어가며 같이 일하고 계셨다.


간호사 선생님은 다 큰 나를 보고는 이제 시집가도 되겠다며 놀렸다. 나 또한 이제 곧 갈거라며 웃으며 대답했다.


의사선생님은 점심시간에 만날 수 있었다. 의사선생님은 내가 니 심리상담 해주는 사람이냐? 라고 대답하면서 같이 중국집으로 가자고 했다.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먹으며 나는 내가 이기적인 게 아닐까 내가 잘못해서 파혼한거 같다는 얘기를 했다. 신기하게도 부모님 앞에서는 조심스러운 얘기를 의사선생님 앞에서는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었다.


'이기적인 게 잘못된거냐?'


의사선생님은 내게 물었다. 나는 내 이기심 때문에 파혼했으니 잘못된 거 같다고 얘기했다.


'그럼 니 남자친구가 너한테 당연히 자필로 받아오라고 하는건 이기적인 게 아니냐?'


내가 아무말도 하지 않고 있자 의사선생님은 말을 이어갔다.


'사람은 누구나 이기적이야 나보다 더 나은 상대를 만나고 싶어하고 나보다 더 좋은 조건의 사람을 만나고 싶어하지 그리고 절대 손해보려고 하지 않아 가령 결혼 허락해줄테니까 넌 의사선생님 자필서명이랑 아이 낳아 이렇게 이런걸 뭐라고 하는 지 아니?'


내가 고개를 좌우로 돌리자 의사선생님은 얘기했다.


'어른들은 이런걸 거래라고 한단다. 결혼은 거래가 아니야 거래처럼 서로 재는 순간 그건 결혼이 아니라 거래가 되는거지'


'내가 전에 말했지 너 대신 목숨까지 내줄 수 있는 사람을 만나라고 잘 생각해봐라 그 사람이 그정도인지'


의사선생님의 말을 듣고 생각이 정리가 됐다. 의사선생님은 항상 내게 인생에 대해서 방향을 제시해주셨다. 내가 길을 잃을 때마다 나를 잡아주셨던 것 같다.


의사선생님 말대로 나는 두 번의 파혼 이후 나 대신 목숨까지 내줄 수 있는 남자를 만났다. 부모님이 뭐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는 그런 곧은 나무같은 남자 그 남자와 결혼해서 행복한 가정을 꾸리고 있다.

나는 결혼에 대해서 고민하는 사람이 상담좀 해달라고 하면 이 얘기를 꼭 해준다. 요즘에는 세상이 달라져서인지 다들 서로의 조건을 보고 맞추려고 한다. 그러나 나는 그런 조건을 보고 결혼하는 것을 '거래'라고 생각한다.


결혼은 사랑하는 사람 아프더라도 나를 이해해줄 수 있는 지금은 돈이 있지만 나중에 없을 수 있으니 돈이 없을때도 온전히 나를 챙겨줄 수 있는 사람이랑 결혼을 하라고 얘기해준다.


이 글을 읽고있는 분들 중 결혼을 앞둔 분이라면 꼭 거래가 아닌 진정한 사랑으로 결혼을 할 수 있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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