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몸살
봄 날씨가 고르지 않다. 꽃샘추위라고 한다. 나는 이곳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여 몸살감기에 시달리는데, '꽃샘추위'라니…. 어쨌건 예쁜 말이다.
나는 집을 떠나 산 경험이 없다. 대학까지 내 집에서 다녔고, 첫 직장도 모교였다. 결혼하면서 집이 바뀌었으나 엄밀히 말하면 호적이 바뀌었으니 집이 바뀐 것은 아니다. 그때도 바로 집 옆의 직장으로 옮겨갔으므로 집을 떠나 살 기회가 없었다. 그래서 그런지 집을 떠나 살고 싶다는 사춘기적 감정이 아직 남아 있었다.
마침 전남에서 교사 특별채용 공고가 있었다. 집을 떠나 살아보기를 오래 희망하던 나는 흥미를 느꼈다. 환갑 너머까지 일 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도 구미에 당겼다. 오랫동안 미루어오던 글쓰기 공부를 할 수 있도록 하늘이 준 기회라고 받아들였다. 나이가 더 들면 불가능한 일이라고 여겨 결단을 내려 이곳에 왔다. 대단한 결심이라고 부러워하는 이도 있고, 우려하는 이도 있다.
이곳은 고흥 반도. 꽃게의 발가락처럼 기다란 반도의 끝부분이다. 순천까지 열차를 타고 와서 직행버스와 시내버스를 바꿔 타고 한없이 남쪽으로 가야만 하는 곳이다. 날씨는 내가 살던 충남 서해안과 크게 다르지는 않지만, 평균 10여 일의 기온 차가 있다. 바람이 심하고 일기가 고르지 않다. 그러나 순천역에서 목련이 시들어 누런 잎을 떨구고 있는 모습을 봤는데, 몇 시간 뒤 서천에서 금방 터질듯한 목련 송이를 보는 것은 경이로웠다.
일주일에 두 차례씩 시간을 거슬러 오르내리며 여행하는 것이 몸에 무리가 되었는지 몸살을 앓게 되었다. 처음에는 날씨에 적응하지 못하여 걸린 유행성 독감이라고 여겼다. 허나 다른 사람들은 벌써 쾌차하여 평상적인 나날을 보내는데 나는 아직 기침, 콧물, 거기다 온몸의 근육통까지 곁들여 고생하고 있다. 한약에, 병원 약에, 약국에서 특별히 조제 해준 약까지. 이제는 내 위와 간장이 겪어낼지 모르겠다.
내가 이렇게 힘든 몸살을 겪고 있는 것은 기후 차이에서 오는 부적응만은 아닌 것 같다. 혼자 살고 싶다고 늘 생각해 왔으면서도 그 자유가 버겁고 집에서 힘들어할 남편에 대한 미안함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유에 대한 행복과 가정에 대한 책임 사이에서 갈등을 겪는 것이 몸살로 나타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아따!’ 하면서 격하게 말하는 남도 사람들의 과장된 표현이 어색하고, 간혹 알아들을 수 없는 사투리에 소통되지 않아 힘들었던 일도 나를 아프게 했다.
20년 만에 다시 발을 들여놓은 교육 현장이 크게 변하지 않은 것에 안도감이 들면서도 재미없어졌고, 학교장을 군주같이 대하는 젊은 동료들도 이상했다. 직원 상호 간에 ‘성님’, ‘동생’ 하고 부르며 가족 같은 생각으로 서로를 감싸고 이해는 모습도 낯설었다. 거기다 나에게까지 ‘뭘 그런 거 가지고.’하며 두리뭉실 이해하라는 모습은 화가 치밀었다.
나는 아직도 몸살을 오래 겪어야 할 모양이다. 충남과 전남은 그다지 멀지 않으며, 바닷가에 가까운 생활환경도 비슷하다고 여겼는데…. 아이들도 활달하고 짓궂은 모습이 같다고 여겼는데…. 내가 너무 멀리 온 모양이다.
누구나 일을 하고 산다. 끝도 없는 일이다. 그러면 몸이 먼저 알고 휴식을 요구하여 몸살이 나고, 앓게 된다. 휴직하고 쉬었던 20년 동안도 나는 쉬지 않고 일했다. 그래도 이렇게 몸이 아프지는 않았는데, 규칙적인 생활에 힘들었던가 보다. 직장생활에 적응하느라 몸살이란 놈이 감기 증세와 곁들여 찾아온 것이다.
몸살은 성장과 적응의 과정이기도 하다. 어린아이들은 앓고 나면 훨씬 의젓해지고 안 하던 예쁜 짓을 한다. 식물도 옮겨 심으면 몸살을 한다. 새 땅에 적응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기 때문일 것이다. 몸살로 나무가 죽는 경우는 드문 걸 보면 땅이 새 식구를 받아들이기 위해 나름의 시험을 치르게 하는 것인지 모른다.
나무가 몸살을 치른 뒤는 씩씩하게 자란다. 나도 이곳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이곳 토양과 사람들이 제시한 시험을 통과하는 일이 시급하다. 이곳 사람들은 선뜻 내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내가 이곳에 머물 시간이 길어야 1, 2년에 불과할 것이란 걸 그들도 안다. 충남으로 발령받으려면 5년은 기다려야 한다는데, 이곳은 너무 멀어 내년에는 구례나 영광으로 내신을 해야 한다. 그러니 동료와 이웃이 나를 보는 시선이 달갑지 않을 수 밖에.
이곳 토양에 맞는 나무로 자라기엔 1, 2년으론 어림없다. 짧은 기간이겠지만 몸살을 앓으면서 내가 여기에 심어진 까닭을 잊지 않은 나무가 되려 한다. 그래도 몸살을 너무 심하게 앓지 않았으면 좋으련만.
자유, 해방을 만끽하면서도 극심한 몸살로 고통받는 것은 두고 온 가족을 일깨워주고, 몸살은 앓고 난 뒤 나를 더 쓸모 있게 다듬으려는 신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2005. 서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