욜링암(Yolyn Am)

셋째 날, 3월 25일(화)

by 김연화






김연화, ‘날씨요정’


뒤엉켜 말똥 같아 보이지만

언 마음 녹여

봄님께 피워 보내는 향초




☑ 욜링암(Yolyn Am)

남부 고비사막의 고르반사이한 산맥에 위치한 협곡으로 독수리 계곡‘이라 불린다. 국립공원(Gurvan Saikhan National Park) 내에 위치하였으며, 여름에도 얼음이 녹지 않는 독특한 지형으로 유명하다. 트래킹이나 승마 체험을 통해 이곳의 장관을 감상할 수 있다.



욜링암 입구
오겡끼데스까?


얼음 계곡의 숨결, 욜링암에서


고비의 시작점에서, 눈이 안개처럼 흐르는 길을 달려 마침내 욜링암의 문턱에 다다랐다. 사막 한복판에 얼음 계곡이라니, 이질적인 땅의 조합은 낯설면서도 매혹적이다. 바람이 먼저 발을 들이고, 그 뒤를 따랐다.


안내 표지판이 나지막이 앉아있는 초입에서부터 조심스레 얼음을 밟았다. 여름조차도 자리를 잡지 못하는 이 계곡에서 한기는 숨죽인 얼음의 형태로 남아 있다. 양쪽의 절벽은 오래된 성서처럼 검고 주름져 그 사이로 찬 공기가 흘렀다. 바위들 위로 하늘이 좁아지며 드리운 빛줄기! 세상의 시계가 멈추었다. 아무 말도 없고 아무런 움직임도 없는데, 거대한 생명이 천천히 숨 쉬고 있다는 느낌, 이곳이 바로 욜링암이구나. 이 성스러운 장소는 숨결로, 기운으로 존재하는 곳이었다.


깎아지른 바위 위에 동물의 사체를 먹고, 골수를 파먹고 사는 독수리가 산다 했다. 그랜드캐니언을 유유히 나는 콘도르처럼, 수염수리(몽골어로 ‘욜’)가 두어 마리 머리 위에서 날아주길 바랐지만, 오늘은 하늘이 텅 비었다. 계곡 위를 맴도는 독수리가 없음에도 그들의 날개짓이 낳은 리듬이 내 어깨를 가늘게 타고 내린다. 여름이면 이 계곡을 말 타고 지나간다 했다. 언니들은 ‘말 타고 달려보았으면 소원이 없겠다.’라고 하지만, 나는 말발굽 소리 없는 이 깊은 고요가 너무 좋다. 설산에서 눈이 녹아내려 얼음이 되고, 또 그 얼음이 녹아 들려주는 맑은 노래를 들으며 계곡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바위틈으로 관목형 몽골 향나무 자생지가 보인다. 몽골에서는 스님들의 종교의식에 쓰이는 성스러운 나무로 여겨지기에 일반인들이 함부로 나무를 꺾어서는 안 된다고 한다. 불에 태우면 상쾌하면서도 약간 매캐한 송진 향이 나는 전통 향을 돌아오는 길에 나란톨 시장에서 구입하였다. 이 추운 땅에서 저렇게 개체를 불려나가며 생존하는 모습만으로도, 참으로 경외롭지 않은가!


“어머니, 그곳에서 잘 계시나요?”

“오겡끼데스까?”

언니들의 목소리가 바람 소리에 섞여 흘러 다닌다. 너무 아름다워서, 이 아름다운 땅에 어머니와 함께 오지 못해서, 본인들도 이 땅에 다시 오지 못할 나이라서... 절절한 마음들이 눈물과 함께 솟는 것이리라.

사막과 얼음이 만나는 모순의 장소, 생명과 죽음이 동시에 잠든 골짜기, 침묵과 울음이 서로를 품은 풍경 속에 서서 물 한 모금을 마시고, 바위에 등을 기대 한참을 앉아있었다. 침묵이 말보다 더 정확한 언어가 될 때가 있다.


10시. 돌아서는 길, 몇 번이고 뒤를 돌아보았다. 내가 무언가를 놓고 오는 건 아닌가 싶었지만, 욜링암은 손에 쥐고 나올 수 있는 풍경이 아니었다. 그저 그 땅에 발을 디딘 사람의 눈동자에, 가슴에, 아주 천천히 스며들어 기억이라는 또 다른 얼음이 되는 것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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