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르

셋째 날, 3월 25일(화)

by 김연화
여기저기서 읽고, 듣고, 본 게르에 관한 상식


게르는 원처럼 생겼다. 하늘처럼 끝이 없고, 엄마 품처럼 따뜻하다. 바람이 와서 머물고, 해가 들고 나가며, 별이 천장에 와서 눈을 맞춘다. 한겨울의 생명은 그 작은 원 안에서 피어나며, 이곳은 몽골인에게 있어 단순한 집이 아닌 세계관이자 정체성이며 공동체의 상징이다.
게르(몽골어: гэр)는 몽골 유목민들의 전통 이동식 주거 형태로, 단순한 집이 아닌 생활의 중심이며 문화와 철학이 담긴 공간이다. 가족이 먹고 자고 생활하는 주거 공간으로서 부엌과 거실, 저장 공간이 있으며, 분해와 조립이 쉬워 계절 따라 유목지를 옮길 수 있다. 왕은 5개의 게르를 이어 사용하며, 소나 말 20마리 정도가 이를 끌고 이동한다.
게르 내부는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엄격한 질서와 상징성을 지닌다. 동쪽(오른쪽)은 손님과 남성의 자리, 서쪽(왼쪽)은 가족침대와 부부침대, 여성의 자리이며, 가정용품‧식기‧음식을 보관하는 공간이다. 출입구는 햇빛을 고려하여 항상 남쪽에 두며, 북쪽은 가장 신성한 자리로 가보, 불상, 가족사진 등을 놓는다. 중앙에는 난로가 있으며 생명의 중심이자 따뜻함과 연결된다. 손님이 부부 자리에 들어가지 않는 것은 예의다. 중앙 기둥은 하늘과 인간을 잇는 축이며, 동심원 형태의 천장은 하늘(텡게르)을 상징한다.
울란바토르 외곽의 게르 지역이나 관광용 게르 캠프에서는 침대 배치가 자유로워진 경우도 많지만, 전통을 따르는 유목민의 게르에서는 여전히 이 공간 질서를 지키는 경우가 많다. 요즘은 게르 안에 냉장고, 세탁기, 대형 TV, 인덕션까지 갖추고 있는 경우도 있다.





10시 50분, 바람이 너무 불고 눈까지 내려 오늘 고비사막에 접근하지 못한다는 비보가 날아든다. 주 언니는 또 눈물이 난다. 고비가 보고 싶어 어려운 여행을 선택했고, 이제 다시 고비사막을 보러 오기는 어렵다며 눈물 바람이다.


나 역시 고비를 영접하러 다시 몽골에 왔지만, 걱정은 않는다. 몽골이 그렇지 않은가, 가다 보면 없던 길도 생기고, 또 가다 보면 있던 길도 없어지지 않던가, 참으로 자유로운 나라이다. 더기 씨는 어떻게든 일정을 소화해 보려고 고비사막 입구의 가이드에게 계속 전화를 한다. 판단이 어렵지만 일단 고비사막 30km 앞까지는 가 보기로 한다. 더기 씨의 운전 실력은 경지에 이르러, 스노우체인 없이도 얼은 눈길을 잘도 간다.


하늘은 무슨 비밀이 많아, 저렇게 바람과 눈으로 푸르공의 앞을 가리는가. 사막으로 가는 길은 눈 속에 묻혀 있고, 눈들은 내려앉는 것이 아니라 아지랑이같이 흘러 다니고 있다. 갑자기 이층버스로 겨울의 안데스 산맥을 넘던 기억이 툭 튀어나와 이야기를 시작한다.


안데스산맥을 넘고 있었어요. 눈 덮힌 높은 산 사이로 좁은 길만 열려 있었고, 이층버스는 바퀴 아래 얼음을 조심스레 누르며 시속 10km로 기듯이 가고 있었죠. 모두 숨죽이며 가파른 언덕을 넘어갔던 순간, 그때였어요. 오른쪽 눈밭에 누군가의 기도처럼 조용히 서 있는, 1m 가량 되는 조그만 하얀 성모상이 나타났어요. 차가운 바람 속에서 두 손을 모아 기도하고 있었죠. 순간 차 안의 승객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두 손을 모으며 감사의 기도를 시작했고, 누군가의 선창에 따라 조용히 찬송가를 부르기 시작했어요. 낯선 나라, 낯선 길에서 나의 손을 잡으며 안도의 눈을 맞추어 주던, 낯선 이의 따뜻함에 나의 눈가에도 감사의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죠.”


차 안의 사람들도 조용히 감사의 기도를 올리고, 큰언니는 소리 없이 금강경을 읽기 시작했다. 남이가 준비해 온 한국 노래를 들으며 잠시 까무룩 깊은 잠으로 빠져든다. 푸르공은 눈길을 시속 80km로 계속 달리고 있다.

남이는 푸르공의 무궁무진한 매력에 빠져 허우적대고 있다. 요즘 가격이 많이 올라 새것은 6천만 원, 중고는 3천만 원 정도 한다는 말에 곧 내일이라도 계약을 할 것 같이 말이 뜨겁다.

고장나면?

그러니까 수리 기술도 배워야죠.

푸르공을 사서 뭐 할 건데?

세계여행을 떠나야죠.

그래, 남이 너답다.


낯을 감추고 있던 풍경이 조금씩 얼굴을 내민다. 길에는 블랙아이스가 보이고, 눈 속에 조용히 서 있는 말도 한 마리 본 것 같다. 이 눈보라가 다 걷히면, 모래알 하나하나가 햇살을 쪼개며 다시 나타날 것이라는 희망을 품어 본다. 아, 무릎 꿇고 기도하는 낙타가 스쳐 지나간다. 어기 씨의 말로는 길 잃은 새끼 낙타가 추위에 얼어 죽은 것 같단다. 가도 가도 눈밭, 안개등을 켜고 잽싸게 달려드는 반대쪽 차량조차도 반갑다.



13시, 게르에 도착했다. 몽골 사람들은 보통 집이 두 채다. 겨울에는 바람이 덜 불고 지형적으로 보호받는 계곡이나 산자락 아래의 겨울집에 와서 살고, 여름에는 고도가 조금 높거나 바람이 잘 통하며 물과 풀이 풍부한 초원의 여름집에 산다.


여긴 주인장의 겨울집이다. 가세가 넉넉한지, 58세의 주인장은 값비싼 금색 시계와 은팔찌, 은가락지를 착용하고, 은으로 만든 식기를 쓴다. 낙타 60여 마리, 소 10마리, 양 200마리, 말 100마리 정도를 소유하고 있으며, 이는 큰아들이 관리 중이라네. 전통 복장을 입는 법도 시연해 주었다.


우리는 수태차를 대접받으며, 낙타‧소‧말‧양젖으로 만든 다양한 유제품을 마음껏 맛보았다. 무엇보다 옥외 화장실이 정갈하게 관리되고 있어 놀랐다. 바닥에는 노란 장판이 깔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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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기 씨가 만들어준 김칫국, 볶음밥, 소고기국밥으로 추위를 날려 보내고 든든히 속을 달랬다. 15시, 일단 고비사막으로 출발! 석탄을 실은 일꾼의 오토바이가 먼저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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