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은 유난히 짧게 느껴졌다. 벚꽃이 활짝 피기도 전에 비바람에 휩쓸리며 순식간에 지고 말았으니까. 그래서인지 벚꽃 시즌은 말 그대로 찰나처럼 스쳐 갔다. 평일이든 주말이든, 비가 와도 공원은 벚꽃을 즐기려는 사람들로 북적였다.
분홍빛 꽃잎 아래에서 셔터를 누르던 그 순간,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화려함은 항상 짧고, 그 순간이 지나면 무엇이 남을까?' 예전부터 나는 화려한 꽃들보다는 허브처럼 소박한 초록 식물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인지 벚꽃이 만개한 절정의 순간보다, 꽃이 지고 새순이 돋아나는 초록의 시기가 더 마음에 와닿았다. 많은 사람들이 벚꽃이 절정일 때를 기다리지만, 나는 오히려 그 뒤를 잇는 고요한 날들 속에서 더 깊은 위로를 느낀다.
마치 시끌벅적한 파티가 끝난 뒤, 혼자 남아 자신을 돌아보는 시간처럼. 꽃잎이 떨어지고 난 숲은 오히려 더 진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 같다.
오늘은 유난히 맑고 따뜻한 날이었다. 얼마 전만 해도 벚꽃이 흐드러졌던 그 길은, 어느새 초록빛 옷을 입고 있었다. 햇살은 나뭇잎 사이로 스며들며 땅 위에 그림자를 만들고, 그 풍경은 마치 숲 속에서만 펼쳐지는 빛의 축제 같았다.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어릴 적 할머니 댁 감나무 그늘 아래 누워 바라보던 하늘이 떠올랐다. 그땐 몰랐다. 이런 평범한 순간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비 오는 날이 아쉽지만, 자연은 언제나 순환한다. 긴 우울의 터널을 지날 때에도 배운 건 하나였다. 비가 그치고 나면 반드시 맑은 날이 온다는 사실을.
산책길 중간, 오래된 나무 벤치에 잠시 앉고, 깊게 들이마신 숲의 공기엔 설명하기 어려운 편안함이 배어 있었다.
밤새 육아에 지쳐 잠 못 들었던 기억, 가족과의 작은 다툼까지도... 잠시 멀어진 듯 느껴졌다. 그렇게 하나둘 복잡한 생각들이 가라앉고, 마음은 다시 조용해졌다.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 새들의 노랫소리, 코끝을 스치는 흙과 풀 내음은 사진에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그래서 더 소중하고, 기록할 수 없기에, 오히려 더 오래 마음속에 남는 순간들이 된다.
화려했던 벚꽃의 순간보다, 그 이후 찾아온 초록의 시간이 더 오래 머물며 우리에게 깊은 위안을 준다. 들숨과 날숨처럼 이어지는 계절의 흐름 속에서, 우리는 문득 지나쳐버리기 쉬운 평범한 날들의 특별함을 발견하곤 한다.
당신에게도 그런 날이 오기를. 초록빛 세상이 들려주는 조용한 이야기에 잠시 귀 기울여 보길. 그 안엔 우리가 미처 발견하지 못한 위안과 희망이 숨어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