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 서기'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사람이 많다. 사람은 사회 속에서 관계를 형성해 나가고, 그 안에서 삶의 형태를 배워가는 존재이자 동물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홀로 선다는 것에 두려움을 느끼고 외로움의 감정을 배운다. 타인에게 기대고 싶다는 생각은 누군가에게 사랑을 받고 싶다는 생각과 공존하기 마련이다. 그렇다면, '홀로 서기', 즉 누군가에게 애정을 받지 못하고 혼자서 살아간다는 것은 가능한 일일까? 과거의 몇몇 글에서 필자는 이성으로부터 얻게 되는 사랑과 친구 및 가족들에게 얻는 사랑은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정의한 적이 있다. 그렇다면 진정으로 홀로 선다는 것은 이성은 물론이고 가족과 친구들로부터 받는 모든 사랑이 결여된 인물인 것일까? 아마 대부분 본인이 홀로 선다고 느끼는 이들은 충분히 사랑받고 있을 것임이 틀림없다. 그럼에도 그들은 이성으로부터 받는 사랑이 결여되었거나, 가족 혹은 친구에게 받는 사랑에 너무나도 익숙해진 나머지 스스로 홀로 서고 있다고 가정하고, 합리화한다. 이 글은 그들을 동조하는 글도 아니고, 꾸짖는 글도 아니다. 그저 자신이 홀로 서고 있다고, 사랑받고 있지 못하며, 고독하고 외롭다고 느끼는 이들을 깨우치고 바로잡기 위함이다.
물론, 필자도 종종 홀로 서있다고 느낀 경험이 있다. 그렇기에 이 글은 어찌 보면 누군가를 겨냥하여 쓰는, 피력하는 글이 아닌 과거의 나에게 전하는 아쉬운 인사말일지도 모른다. 과거에 내가 그랬던 것처럼, 현재 혹은 미래의 그 누군가는 나와 같이 애정에 목말라하고 있을 수도 있다. 자신이 사회와 단절되어 있으며, 자신에게 들어오는 애정을 인지 또는 인정하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을 수도 있다. 이는 스스로를 '격리'시키는 행위이다. 사실을 명확히 인지하지 못한 채 스스로를 고독의 방으로 가두는 것은 사람에게 있어 굉장히 해롭다. 나의 존재와 가치, 그리고 사랑의 상호작용을 완벽히 부정하고 깨트리는 행위를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일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때때로 홀로 살아간다는 것이 필요할 때도 있다. 모든 애정을 거부하라는 말이 아니다. 그저 타인에게 받는 애정의 집착에서 벗어나 오로지 자신에게 모든 시야를 집중시키는 행위. 즉, 진정으로 나라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은 필자가 주장하는 진정으로 고독한 홀로 서기에 가깝다.
사람은 인정의 욕구를 굉장히 중요시한다. 열심히 사는 것, 무언가를 잘하고 싶은 일은 이 인정의 욕구에서 비롯된 감정의 촉발이다. 그렇다면, 우리 인간은 왜 인정을 받고 싶어 하는가? 인정을 받는다는 행위는 누군가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인받는 것과 더불어 사람 사이의 감정적인 교류를 뜻한다. 이를 폭넓게 해석하자면 '사랑받는 것'에 가깝다. 인정을 받는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호의를 사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렇기에 자신의 장점이자 긍정적인 개성을 타인에게 내비치고 존재를 확인받고 싶어 하는 것은 인간의 당연한 욕구이다. 그러나, 이에 너무나도 깊게 매몰되어 버리거나, 타인에게 받는 사랑을 극도로 갈구하게 된다면, 오히려 배척을 받게 된다. 과도한 무언가가 정해진다면 사람은 부담을 느끼고 자신이 긍정적으로 보았던 모습에 회의감을 느끼게 된다. 그러한 감정이 축척되면, 그 어떤 이들도 등을 돌리기 마련이다. 집착은 결핍을 낳고, 결핍은 진정한 고독을 불러온다. 자신의 행동이 불러온 고독과 진정으로 마주하게 된다면, 대부분의 사람은 자신에게 부정적인 영향이 있다고 생각하기 마련이다. 스스로를 좀 먹는 이 행위는 반복될 시 자신은 더 이상 인정받을 수 없다고 스스로를 정의한다. 이후에는 어떻게 되겠는가? '사랑'이라는 감정을 보여주는 모든 형태의 것들을 거부하고 부정한다. 나아가, 자발적으로 고독과 공허에 사로 잡혀 그 안에서 나오려 하지 않는다.
이러한 이유에서 우리는 진정으로 나 자신을 관철하는, 진정으로 고독한 홀로 서기에 대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나'라는 사람은 어떤 사람인가? 내 주변에는 어떠한 감정적인 교류가 일어나고 있는가? 나는 이성을 더불어 가족과 친구들에게 소중한 사람인가? 인정받고 있는가? 즉, 사랑받고 있는가? 그 어떠한 누구도 인정받을 자격이 있기에 항상 사랑받고 있음이 분명하다. 가치가 없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는다. 즉, 사람은 존재하는 이래로 쭉 가치가 있다. 가치가 있다는 말은 인정받을 수 있다는 것과 유사하다. 그렇기에, 자신에게 직접 드러나지 않더라도, 확인할 수 없더라도 우리는 늘 어떠한 이들에게 사랑받고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고독하다고 느끼거나 외롭다고 느끼거나 홀로 서 있다고 느끼는 착각은 자신이 모르는 곳에서도 충분히 사랑받고 있다는 이 진리를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생각이 드는 것은 절대 나쁜 것이 아니다. 사람으로 태어나 애정을 받고 싶다는 욕구는 너무나도 당연한 것이다. 그러나, 이를 격하게 드러내며 과도한 애정과 사랑을 갈구하는 공격적인 행동은 오히려 스스로를 악으로 뒤덮을 수 있다는 것을 알아차릴 필요가 있다.
흔히들, '외롭다'라는 말을 하는 사람들을 관찰하면, 참 다양한 방면에서 사랑받고 있는 사람이다. 그러나, 그들이 자신이 외롭다고 표현하는 근본적인 이유는 가족애, 친구애 등의 사랑이 아닌, 이성에게 받는 진정한 愛(사랑)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물론, 가족과 친구로부터 받는 사랑이 진정한 사랑은 아니라고 하는 것은 아니다.) 남자 혹은 여자로서 이성에게 받는 사랑이 없다고 느끼기에 자신의 매력에 의구심이 드는 것이고 다른 사람과 자신을 비교하며 열등감에 빠지게 된다. 이때, 가장 중요한 것이 진정으로 고독한 홀로 서기의 과정이다. 홀로 서 있는 자신에게 모든 시야와 관심을 집중시킨다면, 얻게 될 진리와 명확한 사실은 단 하나밖에 없다. '난 사랑받아야 할 마땅한 사람이다'라는 것이다. 그렇기에 내가 지금 홀로 서있거나, 고독하다고 느끼거나, 외롭다고 혹은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은 나라는 사람을 진정으로 사랑해 줄 누군가가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의 진정한 모습을 바라볼만한 사람이 아직 나를 발견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거나 존재 자체에 가치가 없는 것이 아닌, 내 모습을 바라보기가 누군가에게는 굉장히 어려웠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고독한 홀로 서기 과정이 진행되지 않았다면, 스스로에 대한 진리와 가치를 발견하지 못했을 것이다. 자신도 모르는 것을 어떻게 타인이 알아차리고 먼저 다가와 주겠는가? 가장 중요한 것은 자신에 대한 명확한 이해, 즉 '자기애'이다.
과거의 나를 비롯하여 지금 홀로 서기를 준비하는 이들이나 이미 홀로 서있는 이들, 나아가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은 단 하나밖에 없다.
"지금 이 순간이 고독하고, 외롭다고, 공허하다고 느끼는 것은 지금까지 너무나도 큰 사랑을 받아왔기 때문이다. 알게 모르게 무수히 넘치는 사랑과 애정을 받아왔기에 앞으로도 충분히 많은 것들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이러한 사실이 명확히 분명하기 때문에 스스로를 감추려 하지 말아라. 당당하게 살아가라.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니 사랑을 받기를 원한다면 자신을 먼저 사랑해 보아라. 그리고, 이를 바탕으로 누군가를 먼저 사랑해 보아라. 내가 사랑받고 싶은 그 대상을 내가 먼저 후회 없이 사랑해 보아라. 그 과정이 도래한다면, 그때는 진정으로 홀로 서고 싶더라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을 많은 이가 당신을 홀로 서있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