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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마노 Oct 08. 2023

사랑을 사람으로 잊는다는 것이

 사랑을 사람으로 잊는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흔히들 사랑은 시간이 해결해 준다거나, 사람은 사람으로 잊어야 한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이러한 관점이 전혀 틀렸다고 보는 입장은 아니다. 일상을 보내며 자연스럽게 생기는 바쁨은 잡생각이 나지 않는 것에 도움이 된다. 힘들었던 기억, 보고 싶은 얼굴, 그리운 추억들은 정말 소름 끼치게도 시간이 지남에 따라 떠올리려 해도 그럴 수 없다. 그러나, 내가 사랑했던 사람이 아닌 내가 주었던 사랑 그 자체는 과연 다른 무엇으로 지워지거나 잊어질 수 있을까. 현시점이 지난 후에도 내가 그 시절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것은 변함이 없다. 즉, 다른 어떤 것으로 이를 지우거나 가릴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었다는 사실을 부정하려 한다. 없었던 일로 치부하고자 하고, 내가 잠시나마 사랑했던 그 대상을 모욕한다. 참으로 부끄러운 이 행동들은 많은 사람이 반복하고, 행하고 있다는 것은 진실이다. 콩깍지가 씌었다거나, 외로워서 그랬다거나 정말 말도 안 되는 이유들로 내가 가장 진심이었던, 누군가를 사랑한 그 순간을 나쁘게 해석하고 만다. 대게 사람은 그러한 존재이다.
 그렇기에 필자는 사람을 사람으로 잊거나, 사람을 시간이 해결해 준다는 부분에 대해서는 동의한다. 사람이란 쉽게 변하지 않는다. 우리는 때때로 즐거웠던 일을 기억하지 못하고, 힘들었던 시간을 확대해서 해석하곤 한다. 또한, 반대로 힘들었던 순간이 많았음에도 시간이 지난 후에 과거를 회상한다면, 힘들었던 일들보다는 즐거웠던 일 위주로 해석한다. 언뜻 보기에 인간은 참으로 단순한 생물이다. 상처를 자주 입은 사람은 약한 상처에 무뎌지기 마련이고, 자신을 깎아내리는 사람은 밑바닥까지 곤두박질 친다. 반대로 누군가는 쉽게 남을 상처 입히며, 타인을 깎아내리기를 즐겨한다. 다양한 부류의 사람이 있기에 사람에 대한 상처 혹은 긍정적 기억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무뎌진다. 우리가 사랑했던 사람을 부정하고, 미워하며 험담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우리는 그 장면, 그 대상과 자신 사이의 관계를 볼 때 내가 했던 사랑, 누군가가 주었던 사랑으로 보지 않는다. 그저 한 순간의 내 곁에 있던 누군가 혹은 잠시나마 즐겁거나 아쉬웠던 지난 일로 치부한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내가 사랑했던 누군가로 인해 상처받지 않고자 확실했던 사실을 부정하고, 내가 사랑했던 이를 미워한다. 즐거웠던 기억을 한 순간에 악몽으로 여기고 치부하는 것. 인간이 참으로 단순하다는 것을 입증해 주는 것은 아닐까.
 첫사랑에 대한 사람들의 관점은 매우 다양하다. 처음으로 좋아했던 사람, 잊지 못할 사람, 절대 이루어질 수 없을 것 같은 사람 등등 여러 해석이 존재한다. 그렇지만 공통적인 것은 가장 기억에 남는, 쉽게 잊혀지거나 지워지지 않는 것이다. 첫사랑에 대한 아픔을 지닌 사람 역시 마찬가지이다. 그때 그 사실을 부정하거나 나쁘게 취급하기보다는 있었던 사실로 인정한다. '첫사랑'에 대하여 우리가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진짜 '사랑'에 대한 감정이 아닐까. 좋았을지라도 혹은 좋지 않았을지라도 그 시절 사랑했던 나를 아껴주는 것. 그 일을 먼저 이야기할 수 있는 것. 그리고 잊혀지지 않는 것. 진심을 담은 사랑은 결코 시간이 해결해주지 않는다. 즉, 지워지지 않는다.
 그렇다면 사람을 사랑으로 잊는다는 것은 가능할까? 이는 명확하게 불가능하다. '사랑으로 잊는다'는 표현 자체의 오류이다. 사랑한다면 잊을 수 없다. 사랑 또한 잊혀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이 두 조합은 굉장히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나의 애정을 더 이상 받아주지 않는 누군가(사람)를 잊기 위하여 애정(사랑)을 갈구한다. 사람은 사람으로 잊으라는 말을 사랑으로 사람을 잊으라는 말과 동일하다. 위에서 이러한 관점이 틀렸다고 보지 않는다고 했던 이유는 우리는 수단이 되는 사람을 사랑으로 여기지 않기 때문이다. 만약, 그 대상을 정말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우리는 사랑으로 사람을 잊을 수 없을 것이다. 더 깊게 기억날 것이며 더욱 괴로워할 것이다. 자신이 진정으로 사랑했던 사람과 진정으로 사랑하고 있는 사람. 자신의 마음과 행동은 정당하지 못하다며 스스로에게 비난의 목소리를 내비칠지도 모른다. 사람이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도덕적 관념에서 사랑을 바라보는 이들이 많기에 이 과정에서 스스로를 아프게 하는 것이다. 이다음은 어떻게 되겠는가? '시간이 해결해 주겠지, 다른 사람을 만나보는 건 어떨까?' 사람들이 흔히 내뱉는 이야기나 생각들이 이어진다. 그렇기에 이는 어찌 보면 악순환에 가깝다. 애정을 잃고 고독해지고 공허해졌기에 시간과 타인(수단으로써의 사람)에게 의지한다. 사랑 없이 의지하고자 하고, 사랑 없이 시간을 보내려고 하기에 이 기간은 굉장히 길고 갑갑하게 느껴진다. 벗어날 수 없는 굴레로 여겨지며 사람을 더욱 고독하고 외롭게 만들며 공허에 빠지게 한다. 사랑을 잃어버린다는 것은 이렇게 무서운 일이다.
 사랑을 사람으로 잊는다는 것은 사실 매우 어려운 과제일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원하고 행하고자 한다. 더 이상 고독해지고 싶지 않기에, 외로움에 물들고 싶지 않기에, 홀로 남은 공허에 빠지고 싶지 않기에 다른 이의 사랑을 갈구한다. 진심으로 누군가를 염원하는 진짜 사랑이 아닌 목적으로써의 사랑은 쉽게 꺼지기 마련이며, 또 다른 아픔을 낳는다. 자신이 아프고 싶지 않아 타인에게 아픔을 떠넘기는 행위를 하는 것이다. 그렇기에 외롭기에 사랑하고 싶다는 생각은 매우 아픈 결말을 야기한다. 지금 이 글을 읽고 있을 누군가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져보려 한다. 지금 잊고 싶은 대상이 있는지, 시간이 지나도 잊혀지지 않는 사랑을 해본 경험이 있는지, 과거에 사랑했던 나 자신 혹은 사랑을 주었던 누군가를 비참하게 만든 적이 있는지.
 나는 사랑했던 혹은 사랑을 주었던 모든 이들을 아주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다. 이는 자부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것이다. 좋았었던 경험과 쓰라기에 아팠던 경험 모두를 확실하게 기억하고 있는 이유는 그 시절의 나와 너는 돌아오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지금 다시 사랑했던 혹은 사랑을 주었던 누군가와 사랑을 시작한다고 하면 우리는 쉽게 사랑을 시작할 수 있을까? 많이 어려울 것이다. 불가능에 가까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과거와 똑같은 일상을 보내고, 똑같은 인사를 하며, 똑같은 방식으로 사랑한다고 할지라도 분명 다를 것이다. 이유는 그때의 감정을 완벽하게 복원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의도해서 인위적으로 꾸며낸 애정이 아닌 진심에서 우러나온 애정. 이는 매우 무거운 것이며 대체할 수 없는 것이다. 그렇기에 사랑했던 누군가와의 결말이자 종착지는 이별인 것이며, 이별이 종점이자 결말인 이유는 더 이상 다시 사랑할 수 없기 때문이다. 서로 등을 돌렸을 때, 비로소 사랑은 절대 시작될 수 없는 것도 이러한 이유이다. 진심으로 뿜어져 나오는 애정은 사람이나 시간 따위로 해소할 수 없는 값진 무언가이다. 같은 사랑 혹은 그 이상의 사랑을 투자하여도 덮어지거나 지워지지 않는 '충만', 즉 공허와는 정반대 되는 것이다. 진심 어린 애정과 사랑을 잃었다는 것은 공허와 고독이 찾아오는 것이다. 사랑을 사람으로 잊는다는 것이 가능하다고 생각하는가? 나의 생각은 다음과 같다.
 "사랑을 꼭 잊어야 하는가? 내가 했던 사랑, 내가 받았던 사랑을 굳이 다른 누군가로 덮고, 지우며 없었던 일로 만드는 일을 꼭 해야 하는가? 왜 스스로가 했던 사랑을 부끄러워하는가? 힘들어서 지우고 싶다는 것은 그만큼 진심으로 사랑했다는 증거 아닌가? 우리는 지나간 사랑에 떳떳할 필요가 있다. 사람은 사랑할 때 진심이 된다. 진심일 때의 사람은 그 누구보다, 그 어떤 것보다 아름답다. 우린 누군가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을 본 너무나도 행복한 사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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