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미주가 떠난 이후에는 미주와 함께하지 않았던 곳에 많이 갔다. 일부러 찾아나섰다. 그럴수록 깨달았다. 아, 나는 이제 온전히 혼자구나. 오로지 세 가지. 할 수 있는 것들과 힘을 보태고 싶은 것,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할 것. 그때부터 난 운동과 연구실 출근, 일기쓰기, 후원금액 늘리기, 사랑한다 고맙다 말을 나눌 수 있는 친구에게 전화하고 편지쓰기와 같은 것을 반복했다.
첫인상과 잠깐의 대화로 어떤 사람과 나 사이의 분위기를 인지하기 시작했을 무렵에 미주를 처음 만났다. 곧 유학을 가게 될 장학생들이 모여 저녁식사를 하는 자리였다. 미주와 내가 앉은 테이블에는 우리를 포함해 총 7명이 있었다. 서로 옆에 앉은 사람에서부터 이야기를 나누다가 점차 전체 자기소개를 해야하는 분위기가 되어갔다. 졸업한 학부, 때로는 고등학교, 사는 곳과 같은 것을 공유했다. 그들 중 일부는 같은 고등학교나 대학교 출신이었다. 그 공통점을 시작으로 같은 학번이었던 지인을, 그 지인의 대외활동을 통해 만난 또 다른 지인을, 그리고 그 지인의 지인의 아는 형에 대한 이야기가 번졌다. 나는 앞에 놓인 야채를 먹었다. 메인요리가 나오면 그릇을 가만히 쳐다보다가 그 요리를 꼭꼭 씹어 삼켰다. 그러다 자리에서 조금 멀리 있는 휴지를 집으려 손을 뻗었을 때 미주가 보였다. 그 휴지를 건네주고 있는 미주가. 미주의 그릇은 나의 그릇과 같은 속도로 비워졌다. 우리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 거의 같은 속도로 그릇을 비웠다. 이후로는 잘 기억도 나지 않는 저녁식사가 끝나고 밖을 나서는데 누군가 어깨를 톡톡 건드렸다. 돌아보지 않았는데 미주일 것 같았다.
- 혹시 우산 있으세요? 여기 지하철역 앞까지만 같이 써도 될까요?
대답 대신 우산을 펴고 옆 공간을 살짝 내어주었다. 그리고 저는 두 달 후에 영국으로 가요, 라고 묻지도 않은 질문에 대한 답을 했다. 미주가 영국으로 가는 유학생이기를, 우리가 우연히 런던에 있는 대학으로 같이 가는 학생이기를, 그 순간 얼마나 간절히 바랐는지 모른다. 평생 우연이라는 것에 기대를 걸지 않았던 내게 그 운이 찾아왔기 때문에 미주는 내게 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요즘에도 그렇다. 어떤 순간 우연히 찾아온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또 다시 기대를 걸게 되는 것은.
미주의 초대에는 거의 무조건 응했다. 그날은 미주의 박사논문 연구에 대한 발표가 있던 날이었다. 우리는 런던에 위치한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었으나 전공이 유사해서 컨퍼런스 정보를 공유하거나 관련 논문들을 이메일로 주고받는 사이였다. 발표는 15분 정도로 아주 짧았는데 그 짧은 순간 얼마나 오랜 시간동안 미주가 폭력에 대해 고민해왔는지 느낄 수 있었다. 미주가 꾹꾹 눌러담아 차곡차곡 펼쳐내는 발표는 내게 적지 않은 자극이 되었다. 그때는 딱 그 정도였다. 신선하고 날카로운 자극, 그래서 곁에 계속 있고 싶은 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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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혹시 다음에 오실 일 있으시면 2주 내로 오셔야 돼요. 그 뒤에는 그라스랑 니스에 잠시 다녀와요. 한 길 건너 하나 정도 작은 향수가게들이 있다는데 이번에 가보려고요. 여름이면 더 좋았겠지만.
그녀는 취미로 향수를 만들었다. 공방이 멀어 자주 가지는 못하지만 화학 전공을 살릴 수 있는 길을 고민하다가 향과 가까워졌다고 말했다.
- 어떤 날은 아침에 뿌린 향수의 향으로 하루를 견디곤 했어요. 의지할 것이 내 몸과 머리카락, 옷 끝에서 나는 향 밖에 없었다고 해야 하나. 나 하나 살아보려고 시작한 취미죠. 그거 말고는... 저녁에 꼭 영화 하나를 보고 자는 일? 나는 그런 것들에 아주 많이 의지하면서 살았어요. 혼자 잘 산다는 말은 없는 것 같아요. 우리 중 누구도 혼자서 잘 살 수는 없어요.
그녀 역시 이미 완전한 것 같아 보였다. 나와 짧게 이야기를 나누고 자신이 가진 것 중 하나를 손쉽게 내어줄 수 있는 에너지와 여유, 적당히 새로운 것에 도전하는 마음가짐, 그 외에는 카메라를 배우고 다양하게 다뤄보는 일에 온전한 힘을 쏟는 태도. 나는 그런 푸르름에 저항할 수 없이 이끌리지만 뜨겁게 데이는 일이 더 많았다. 그들을 감싸고 도는 팽팽함에 다가가다가 튕겨져 나뒹구는. 그들이 가진 어떤 약점을 내보이거나 내 앞에서 엉엉 울어버리거나 화를 내는 순간에도 그들의 긴장감 있는 분위기는 사라지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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런던에는 홈리스가 많았다. 주말마다 시위가 있었고 미주는 그 곁에 오래도록 서있는 한국인이었다. 그날은 이틀 뒤 같이 근처에서 선데이 로스트를 먹자는 약속을 잡았다. 미주는 약간 덜 익은 감자와 토마토파스타를 가장 좋아했다. 퍼석거리는 감자를 칼로 자르며 미주는 런던에서의 삶이 살만한지 물었다. 조용히 고개를 저었다. 태어나서 처음 타지에서 살아보던 나는 공부도, 삶도, 관계도, 생각도, 이곳에서 모두 힘들었다. 며칠을 물을 주지 않아서 과자처럼 바삭해져버린 마른 나뭇잎같다고 답했다.
- 한국에서는 달랐어?
영국이라서 힘든 것일까, 아니면 이곳에서 그럴싸한 핑계를 찾은 것일까. 미주의 질문에 한국에서의 삶이 떠올랐다. 나는 폭력을 피해 이곳으로 왔구나.
- 나는 한국에서도 이곳에서도 계속 윈터링(wintering) 중인 것 같아. 그냥 계속 겨울을 나고 있는 것처럼. 이전엔 봄이 오겠지, 그 다음엔 여름도 오겠지, 생각했는데 지금은 이게 내 현재인 것 같아. 나의 지금. 하루의 많은 시간을 폭력을 보고 읽고 그러다 화내고 울고 다시 마음 다잡고 그렇게 겨울을 나는 일.
자리에서 일어나기 전에 미주는 같이 살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혼자 나는 겨울보다 같이 나는 겨울이 아주 조금 더 나은 일일 것 같은데, 그렇다면 제안하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아 묻는다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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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그녀에게 물었다. 혹시 동행해도 될까요? 런던은 겨울에 너무 추워서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