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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지구 Dec 04. 2023

쾌활함을 재정의하기

#5.

그녀는 퐁당퐁당, 하루 건너 하루, 함께하고 멀어지기를 반복하자고 했다. 하루는 동행, 다른 하루는 각자 원하는 것을 하는 여행. 나쁠 것이 없는 제안이었다. 미주와 오래 살면서 살던 곳에서 조금 여유가 생기면 하던 것들을 여행에 가서도 그대로 하는 습관이 생겼다. 이것은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 내가 원하는 여행을 어디서든 할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높은 확률로 정갈한 음식이나 디저트가 나오는 조용한 식당이나 카페를 찾아갈 것이고, 지역의 미술관/박물관을 샅샅이 살펴보고, 이후에는 동네서점들을 구경할 것이다. 글을 읽고 생각을 기록하고 많이 걷고 다시 쉬고, 연구가 아닌 공부를 할 것이다. 그녀의 여행은 어떨까.


-


할 수 있는 것이 그저 더 많이 읽고 쓰고 보고 들으며 시간을 보내는 것뿐이라는 생각으로 지난 몇 년을 보냈다. 시간이 지나도 런던이라는 낯선 곳은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것은 서울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매일 똑같은 하루를 살아도 그 어떤 것도 친밀해지지 않았다. 낯설고 어색한 것들 사이에서 무언가를 읽을 때만 그나마 약간의 안정감을 찾았다.

처음부터 이랬던 것이 아니라 적응에 더 오랜 시간이 걸렸다. 친구가 없으면 학교에 가는 것이 신나지 않던 내가, 친구들과의 대화에서 불편한 지점들을 자주 마주하면서, 남자든 여자든 할 것 없이 원하는 화학작용이 일어나지 않는 사람들과의 관계에 힘겨워지면서, 모든 것이 낯설어지기 시작했다. 페미니즘에 대한 이야기뿐만이 아니었다. 내가 있는 곳에서는 개발, 혁신, 기술 등을 주제로 한 발전주의에 반대하기 어려웠다. 그런 이야기들은 쌓이고 범위를 확장하고 사람들을 계속해서 끌어모았으나 나는 끝내 익숙해지지 않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이 있는 곳을 찾아나선다 하여 내가 좋아하는 영화와 책의 내용을 늘 공유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다 아빠의 폭력이 더 심해졌고 1년 반 가량의 준비기간 끝에 런던으로 왔다. 런던은 천국이 아니었다. 도망쳤으나 그 어떤 것도 친밀하지 않기는 마찬가지였다. 런던도 결은 조금 다르나 유사한 형태의 권력이 편재한 곳이니까. 게다가 언어와 문화에도 적응하지 못했으니 정말이지 할 수 있는 것이 눈앞에 놓인 것을 많이 읽고 보고 듣고 이해한 것을 쓰는 것뿐이었다.

나는 죽고 싶지 않았으나 그다지 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러나 죽지 않을 것이면 죽음을 기다리며 무엇을 하는 것이 좋을까. 잘 읽고 해석하고 쓰기 위해서는 어떤 식의 쾌활함도 필요했다. 아주 슬플 때는 단 한 자도 쓸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거리감이 매 순간 필요했다.


조금 더 큰 곳으로 이사가고 싶다는 생각해 본 적 있어? 어느 순간부터 내가 이사에 대한 이야기를 꺼냈다. 첫 1년은 다 같이 기숙사에 살았으나 2년, 3년이 지나면서 주변 사람들이 서서히 더 크고, 더 나은 집을 찾아 이사를 하기 시작할 무렵이었다. 미주는 이사를 원하지 않았다. 나는 이사를 원했다. 나는 여행도 더 자주 갈 수 있기를 바랐다. 우리가 서로에게 그 정도의 여유를 낼 수 있기를 바랐다.


- 우리는 그들이 아니잖아.


당연한 말. 우리는 그들이 아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여유롭지 않다. 우리는 그들처럼 화목한 가정에서 자라지 못했다. 우리는 그들처럼 삶의 공간을 쉽게 바꿀 수 없다. 그러나 나는 도망쳤다. 내 상황이 변하지 않는 한 장소가 변한다 하여 새로워질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계속해서. 이곳에선 이런 경험을 꼭 해봐야지, 저곳에 가면 저 사람들이 먹는 것을, 사는 것을, 하는 것을 그대로 해봐야지. 그러나 항상 분명한 사실을 잊었다. 우리는, 나는, 그들과 달랐다.

사람들은 미주가 쾌활함과 거리가 아주 먼 사람이라고 말했으나 내 눈엔 자신만의 쾌활함이 확실한 사람이었다. 그냥 자기 자신인 것이 충분한 사람. 자기 자신에 대해 깊게 고민하지 않는 대신 약간 남는 에너지를 스스로가 아닌 다른 이에게 돌리는 사람. 미주는 그래서 거의 쉬지 않고 꾸준히 읽고 해석하고 쓸 수 있었다. 학회 발표가 해외에서 있는 경우에는 발표 준비를 마치고 하루 이틀 정도 이전에 도시의 역사에 대해 짧게 찾아봤다. 유명한 관광지에는 크게 관심이 없었다. 5일 정도 둘러볼 수 있는 장소들을 찾고, 근처의 서점 목록을 저장해두었다. 미주만의 보양식도 있었다. 규칙적인 식사에서 벗어날 때 조차도 규칙이 있었다. 그런 규칙 덕분에 일정한 수준의 강함이 항상 유지되었다. 그러려고 매일을 비슷하게 살았다. 여동생에게 보내는 돈도 결코 밀리지 않았다. 미주의 일기장 맨 앞 면에는 이런 말이 써있었다.


최선을 다해도 프레임이 다른 사고를 하려면 반드시 일정 수준 이상의 시간을 들여야한다. 누군가의 지식이 더욱 훌륭한 것으로 평가될지언정 반드시 해야 하는 연구도 있다. 빈틈없이 걸어가야 한다. 내가 어디에서 시작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질문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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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도시든 서점을 찾는 것이 아주 어렵지 않다는 사실이 큰 위안이 되었다. 확실히 이곳은 런던보다 따뜻했고 먹을 수 있는 음식도 디저트도 다양했다. 읽을 수 없는 간판 아래로 책들이 진열되어있는 것을 보고 무작정 들어갔다. 언어를 알지 못하는 도시에서는 주로 그림책이나 영어로 번역이 되어있는 짧은 단편을 구매하곤 했다. 끌리는 표지와 색감, 두께와 같은 것들이 도시마다 달라지는 재미가 있었다. 이런 것들을 방 한 켠에 모아두곤 했었다.

30분 가량 서점을 돌아봤다. '변화'라는 제목을 가진 그림책을 한 권 사서 나오며 그녀가 있다는 식당 쪽으로 몸을 틀었다. 가는 길 곳곳에는 작은 향수 가게들, 레몬 향이 나는 케이크, 두 세 명씩 무리지어 걸어다니는 사람들이 있었다. 15분 가량 걷다가 멀지 않은 거리에서 그녀가 손을 흔들고 있는 모습을 봤다. 그 순간 런던에서 보냈던 오랜 시간들이 내가 가지고 있던 많은 구획들을 흐려놓았다는 사실이 문득 선명해졌다. 이번에는 도망친 게 아니구나.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이끌고 그녀를 따라왔구나. 무엇도 기대하지 않지만 모든 것에 절망하지 않는 마음으로. 그리고 그녀가 가진 쾌활함이 궁금해졌다. 미주와 나의 것과는 분명히 다를 그 쾌활함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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