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없다면 그래도 이렇게 받아들이고 싶다
고용주 또는 학교의 입장에서는 직원이나 학생이 기대한 만큼에 대한 성과가 잘 나오는지 그 이상인지 또는 기대 이하인지를 주기적으로 평가하고 싶은 것은 당연하다. 대외적으로는 평가의 이유를 '직원 개인의 커리어 발전'을 위해서라고 포장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조직은 투자 대비 최대한의 성과를 끌어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보상, 승진, 상위 학교로의 진학 등의 근거로 활용하기에 나름 객관적 기준에 따라 평가 결과 데이터를 축척하는 사전 작업이 필요하기도 하다.
하지만 평가는 받는 사람에게는 참으로 힘든 과정이다. 일을 잘 한 사람은 잘 한 사람 나름대로 기대치가 다르고 못한 사람은 낮은 평가를 받는 것 자체가 괴로운 일이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조직에서는 매니저 또는 상급자가 팀원 등을 평가하는데 사실 몇몇 수치적으로 성과를 평가하기 쉬운 영역(영업 부서의 경우 매출 등)을 제외하고는 사실 정량적 평가보다 정성적 평가 즉 주관적인 요소가 많이 작용하는 것이 현실이다.
즉 평가자와의 관계, 매니저의 성향, 당시의 주변 환경 등에 의해서 결정되는 경우가 많다. 어떤 경우에는 반드시 몇 명에게 상대적으로 낮은 평가를 줘야 하는 규정 등으로 어쩔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그래서 어떤 경우에는 묵묵히 아무리 열심히 일해서 좋은 성과를 거두더라고 자신의 성과를 강하게 어필하지 못해 합당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우도 있고 일은 그냥 적당히 하더라도 상사와의 관계가 좋던지 말발이 좋아 매년 성과를 잘 받는 경우도 많다. 이러다 보니 회사 생활에 있어서 개인적인 역량, 스킬, 성실함 만큼 (또는 그것 이상으로) 관계 형성, 정치력 등이 중요하다고 많은 분들이 조언하기도 한다.
문제는 이런 자신의 성과를 잘 드러내고 어필하면서 포장까지 하는 것도 일종의 타고난 ‘능력’이라는 점이다. 다시 말해 태어난 기질 또는 자라면서 형성된 성격이 내성적이거나 겸손을 미덕으로 배워온 문화권에서 컸다면 ‘열심히 잘하는 것’ 보다 더 어렵고 괴롭다는 점이다.
미국에서 일한 지 벌써 8년 차인 나는 스스로를 드러내는데 아직도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한국에서 일할 때는 그래도 어느 정도 소속 그룹의 소위 이너서클(Inner Circle)에 속할 수 있는 성향을 가지고 있었다. 처음 안면을 트고 관계를 가질 때 공통의 접점을 찾아 관계를 형성하는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았다. 농담도 편하게 하고 식사도 하면서 친해지고 이런 과정에서 쌓은 유대감을 통해 나의 부족한 능력, 자잘한 실수 등은 형성된 관계를 통해 가볍게 넘길 수 있었다.
미국에서 직장 생활을 하면서는 매 순간순간 오직 능력, 태도, 스킬로 나를 증명하고 평가받아야 했다. 나름 관계를 쌓아보려고 했지만 이미 성인이 되어버려 머리와 마음은 한국인으로서 너무 강한 정체성이 생겼고 즐기는 취미, 문화, 뉴스, 정보 등 많은 부분이 다르다 보니 스몰톡(Small Talk)의 소재, 유머의 포인트 등이 달랐다. 특히 코로나 팬데믹 이후에 원격 근무, 화상 회의 등이 일반화되고 하이브리드 근무 형태가 자리 잡으면서 더욱 대면하는 횟수가 낮아지고, 같은 공간에서 근무하지 않아 서로 간에 무관심해지고 인간 관계도 일 년에 몇 번 정도의 팀 점심식사, 일대일 미팅 정도를 통해서나 쌓을 수 있게 된 점 또한 나를 어렵게 했다.
관계 형성이 불안정하고 대화를 자주 하지 않는 상황에서는 심리적 안정감이 낮아진다. 즉 업무 할당, 분배가 이뤄진 이후, 내가 업무를 수행하는 매 순간마다 ‘내가 잘하고 있나?’라는 스스로에 대한 불안감이 엄습해 오고 누군가가 ‘잘하고 있어’라는 대답을 해주길 기대하게 된다. 하지만 우리의 환경은 이러한 관계 형성, 외부로부터의 확신 등을 기대하기가 어려워지는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다. 팀스, 슬랙 등 협업 툴을 통해 비대면을 통해 일하는 경우가 많고, 줌, 전화, 메신저 등을 통해 커뮤니케이션하고 클라우드를 통해 결과물을 동시에 공유하면서 작업하고 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본인과 가족들 중심으로 관심이 크고, 개인 생활, 업무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주변에 대해서는 의외로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겉으로는 필요한 것이 있거나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지 얘기하라고 하지만 막상 본인의 일이 바쁘거나 정신이 없다면 당장 급한 우선순위에 집중하고 자신의 동료나 팀원은 후순위로 밀려나가기 십상이다. 정서적 지원을 기대하기가 쉽지 않다.
대기업, 글로벌 기업 등 체계적으로 구조화된 조직 대부분은 주기적 평가 체계를 가지고 있고 시스템을 통해서 또는 절차적 의무로(즉 강제로) 조직원을 평가하고 이를 문서화하도록 한다. 일종의 반드시 해야 할 업무인 셈이다. 그러다 보니 직원들의 평가가 직원의 성장을 위함이라는 취지와 달리 그냥 평가 시기가 되면 정해진 일정에 따라 매니저가 팀원을 평가하고 면담하고 그 내용을 문서화한다. 진심으로 개인의 발전을 위해 평가하고 조언을 해주는 경우도 있지만 영혼 없이 평가하는 경우도 많을 것이다.
내가 속한 조직은 매년 연초에 개인별로 당해 목표를 설정하라고 한다. 그 목표는 당연히 조직의 목표와 연계된 목표여야 한다. 그리고 조직의 목표는 팀의 목표로 그리고 팀의 목표는 개별 팀원의 목표로 이어진다. 그리고 분기별로 개별 직원은 프로젝트마다 같이 일한 팀원 또는 프로젝트 리더에게 평가를 받게 하고 그 평가 이외에 자신의 팀장과도 별도로 면담을 한다. 프로젝트 리더나 팀장은 좋은 피드백도 주기도 하지만 팀원의 발전을 위해 개선과 관련한 피드백을 준다. 당연히 다음 분기에는 ‘변화’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 하지만 이 부분이 참으로 쉽지 않다. 왜냐하면 사람은 기본적으로 변화를 두려워하고 기존에 하던 방식을 따르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평생 그렇게 살아왔는데 또는 그 방식이 지금까지 자신의 하던 포지션에는 적합했는데 승진을 위해서 조직의 목표를 위해서 한 개인의 변화를 기대(또는 요구)하는 것이다. 그렇게 잘 지내던 커플도 결혼하고 신혼 초에는 대다수 많이 싸우곤 한다. 살아오던 방식이 있는데 서로의 방식에 맞추기 위해 생활 패턴, 사고방식을 바꾸려니 힘들기 때문이다. 그래도 가족이니깐 사랑하니깐 인고의 노력으로 변화하고 바꾸는 과정을 거친다. 그런데 얼마나 함께 할지 모르는 조직을 위해서 ‘나’라는 사람을 발전이라는 명목하에 변화를 기대한다는 것은 어떤 면에서는 잔인한 측면도 있다. 하지만 피드백을 주는 사람 (평가자 또한) 또한 위에서 평가를 받고 개선을 해야 한다. 평가자도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조직의 생리, 기대, 시스템이 그렇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다.
다른 측면에서 평가를 주고, 받는 사람 모두 조직/사회의 구성원으로 서로 얽혀있고 물고 물려 있는 관계다. 자영업자, 개인 사업자는 손님, 고객의 평가를 직접 받는다. 요즘 네이버 맵, 구글 맵에서 검색하면 식당, 카페 등 모든 곳이 리뷰 평가를 받고 있다. 미국에서는 건강 보험사 네트워크 사이트에 들어가면 모든 의사들은 개개인마다 환자들의 평가를 받고 이를 수치화해 보여준다. 미국 의사들은 엄청나게 친절하고 살가운 편인데 이러한 평가 시스템의 영향도 있을 것이다. 기업의 임원들은 그 위에 임원 또는 대표, CEO에게 지속적으로 평가를 받고 그들의 역량을 넘어선 목표치를 제시받을 것이다. 엄청난 압박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다. 상장된 회사의 대표는 주주의 평가와 압박을 받는다. 실적을 못 내면 해고되는 경우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초, 중, 고, 대학을 거쳐 거의 16년 정도의 정규 교육 과정 내내 평가를 받는다. 학교 다닐 때는 성적으로, 대학을 졸업할 때는 취업이라는 과정에서, 직장 새내기로 들어가서 경력을 쌓는 과정에서는 주니어, 부하 직원으로 거의 ‘피평가자’의 경험이 대부분이다.
그런데 어느 시점부터 관리해야 하는 주니어 또는 스텝이 생기고 중간관리자가 되거나 또는 개인 비즈니스를 하거나 하는 순간부터 평가를 받는 입장을 유지하면서 평가를 해야 하는 상황이 되기 시작한다. 피평가자로서 자신도 잘 못했던 점, 부족한 점을 평가자가 되면서 상대방을 평가하고 개선하라고 평가하기 시작할 것이다. 올챙이 시절 모른다고 자신도 부족하고 모자란 점에 대해서 엄격한 잣대로 들이대며 겉으로는 따스한 말로 포장해서 전달한다.
이 지점에서 시사하는 점은 ‘평가’ 과정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그 결과에 괴로움을 느끼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평가를 너무 심각하게 받아들이거나 나의 능력 부족으로 받아들이거나 자책으로 이어지는 경우도 많다. (나 또한 그렇다).
실제로 많은 경우에 좋은 평가를 받더라고 급격한 연봉 상승과 보너스로 이어지지 않는 경우가 많다. 상위 평가를 받더라도 중간 평가를 받는 경우 보다 월급에서 정말 몇만 원 또는 몇십만 원 정도 차이나는 경우도 많다. 보상은 기업 전체의 성과, 대외 환경, 경영진의 판단, 전 조직원의 사기 등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결정되기 때문에 평가와 보상이 완벽하게 연동되지 않는 경우가 대다수이다.
또한 나와 동료와의 비교 또한 나를 괴롭히는 좋지 않은 습관이다. 동료의 평가 결과는 단순히 동료의 개인 능력이 아닌 그 당시 환경, 동료가 맡았던 업무의 중요도(중요한 업무를 실패하거나 기대치보다 낮다면 오히려 마이너스 결과로 이어진다), 이해관계, 운 등등이 복합적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또한 남의 떡이 커 보인다고 본인의 강점에 집중하지 않고 내가 가지지 못한 강점을 가진 동료를 보면서 나 스스로를 비하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긴 호흡으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가 1, 2년만 살고 말 것이 아닌 이제 80, 90세까지 바라보고 살아야 하는 환경 속에 있다. 30세 전에 커리어를 시작한다면 최소 30년 이상은 조직생활, 또는 경제활동을 해야 한다. 1년, 짧게는 1분기 평가 못 받았다고 괴로워하거나 좌절할 필요는 없다. 소위 말해 성공적인 커리어를 가졌거나 외부에서 볼 때 성공한 사람 또한 다 실패하고 실수하고 산다. 우리보다 나이 많고 경력 많은 시니어 들도 이 점을 다 알고 있다. 그리고 그들도 실패, 실수를 두려워한다. 하지만 겉으로 그렇지 않은 척하는 것뿐이다.
평가는 괴롭다. 받는 사람도 하는 사람도. 하지만 피해 갈 수는 없다. 현명하게 받아들이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즉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좋은 평가를 받을 때는 기분이 좋기 때문에 아무래도 상관없다. 하지만 나쁜 평가를 받을 때는 현명하게 대처해야 한다. 이에 현명하게 평가를 받아들이기 위한 팁을 정리해 봤다.
평가는 시스템으로 물고 물려있다. 모든 구성원은 어떻게든 평가를 받는다. 즉 나를 평가하는 사람도 누군가에게 평가받고 평가에 대해 일정 부분 두려워할 것이다. 그러니 나만 괴로운 것이 아니라는 점을 잊지 말자
계속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없다. 그건 불가능하다. 계속 잘 받고 싶은 것은 욕심이다. 가끔 그런 케이스도 있겠지만 극 소수이다. 워크홀릭처럼 산다면 가능하지만 성인이 된 이후부터는 가족, 부모 등 챙겨야 하고 책임져야 할 대상도 많아진다. 커리어에서 얻는 게 있으면 개인생활에서 잃는 게 있다는 점도 있다.
한번 낮은 평가받았다고 인생이 달라지는 건 없다. 끽해야 낮은 연봉 상승 또는 보너스 정도일 것이다. 승진 누락되면 기분은 나쁘겠지만 길게 보면 잘난 동료들은 먼저 나가기도 하고 평범하지만 끝까지 버틴 사람이 성공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자책하면서 나를 괴롭히는 것이 정신적, 육체적 건강에 더 해롭다
평가는 절대로 객관적일 수 없다. 내외부 여건, 환경, 상황 그리고 인간관계 등에도 영향을 받는다. 즉 평가를 높게 받았다고 내가 잘난 것도 아니고 낮은 평가가 나에 대한 낮은 능력치. 가치 평가로 연결해서는 안 된다. 그냥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는 것이다.
피드백을 받으면 그 부분을 고치던지 말던지는 나의 선택이다. 조직이 나의 변화를 강요할 수는 없다. 내가 필요하면 받아들이고 아니다 싶으면 어쩔 수 없는 것이다. 평가자의 피드백이 다 맞는 것도 아니고 사람은 다 각자의 강점이 있기 때문에 약점을 고치기보단 내 강점을 더욱 발전시킬 수도 있는 것이다. 학창 시절에 부모님 말 다 잘 들었다고 성공하지 않는다는 거 대부분 다 알고 있다. 대다수 성인은 자신은 자신이 제일 잘 알 것이다. 좋은 피드백도 있지만 틀린 피드백도 있는 것이고 상대방을 모르고 하는 피드백도 많다.
우리 모두는 인간이다. 누구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해서 어느 정도는 신경 쓴다. 공식적으로 누군가의 평가받으면 당연히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발전을 위해서는 다양한 의견, 관점을 듣고 수용하는 게 좋다. 하지만 늘어난 커리어 기간만큼 지속가능하게 발전하려면, 편하게 듣고 선택해서 받아들이는 연습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