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그런데
쉬는 시간 종이 울리고, 학생 대여섯이 우르르 교무실로 들어온다. 단체로 담임 선생님께 볼일이 있나 했는데 웬걸, 수업 시간에 핸드폰 하다가 무더기로 걸려서 반성문 쓰러 왔단다. 근데 잘못한 얼굴이 아니다. 이렇게도 당당할 수가 없다. 면죄부라도 받은 건지.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안도감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쟤도 그랬는데요.”스마트폰을 하다가 먼저 걸린 아이가 물귀신 작전으로 다른 애를 물고 넘어졌을 수도 있겠지. 혼자 걸린 게 억울하기도 하고, 공범이 있다면 덜 혼날 것만 같으니까.
‘나만 그런 것도 아닌데 뭘.’ 이런 식으로 잘못을 무마시키고, 합리화하는 건 별로다. 그렇지만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은 일종의 심적 보호장치 같다. 그 덕에 벌렁벌렁했던 마음이 누그러들고, 한결 편안해진다.
"담임이 너 교무실로 오래.” 영문도 모른 채 혼자 호출받았다면 상황은 달라진다.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심장이 철렁한다. 행여나 뭔가 켕기는 게 있다면 교무실 가는 길은 산티아고 순례자의 길이 된다.
좋은 일이든 그렇지 않든, 혼자보다는 둘이 있을 때 든든하다. 확실히 마음 상태가 다르다.
나만 별난가 싶어 고민하는 친구가 있다. 유별난 취향을 속 시원하게 말도 못 하고, 눈치보며 전전긍긍하는 아이. 그림책 <돌 씹어 먹는 아이_송미경 글, 세르주블로크 그림>의 주인공이다. 나는 떡볶이가 좋은데, 이 아이는 돌을 좋아한다. 돌이 너무 맛있단다. 이러다가 돌이 되진 않을까 걱정하면서도 끊을 수가 없단다.
그림책 <내 꼬리_조수경 글 그림>에도 혼자 속앓이 중인 친구, 지호가 나온다. 별안간 생겨버린 꼬리 때문이다. 어느 날 갑자기 엉덩이에 붙어버린 꼬리가 지호의 걱정거리다. 어쩌다가 이 지경이 되었는지 알 길이 없고, 어찌 해결해야 할지도 전혀 모르겠다. 당황스러움에 꼬리를 감춰보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 가리기다.
혼자 끙끙 앓는다고 해결되는 건 크게 없는 듯하다. 나만 그렇다는 생각에 고립되고 외롭기만 하다. 고민하면 할수록 마음이 무거워질 뿐이다. 헬스장에서 무게를 치며 근력 운동할 순 있어도 마음의 무게는 별 도움이 안 된다.
‘나만 그럴 거라는 생각’은 자꾸 자신을 감추게 한다. 꼭꼭 숨기고 말 못 할 비밀로 간직한다. 어미 닭이 알을 품고, 21일이 지나면 병아리가 부화한다. 마음에 품은 문제는 시간이 지나면 몸집을 키우기도 한다. 일상적인, 지극히 개인적인 문제가 어느새 국가 기밀처럼 중대한 사안이 되어버린다.
두 그림책은 주인공이 전전긍긍 속앓이하면서 생겨난 심리적 무게감을 묵직하게 표현했다. 생각보다 쉽게, 전혀 예상치 못한 방식으로 그것을 풀어냈다. 신선했다.
돌 씹어 먹는 아이는 자기처럼 돌을 좋아하는 사람을 만났다. 돌을 맛있게 먹는 자신을 인정하게 되었다. 그리고 자신의 별나 보이는 입맛을 가족에게 털어놓는다. “나는 돌 씹어 먹는 아이예요.” 식구들의 반응이 재미있다. 알고 보니 아빠는 흙을 퍼먹고, 엄마는 녹슨 못과 볼트를 좋아하고, 누나는 연필 꼭지에 달린 지우개를 즐겨 먹는다고 했다. 그 가족은 각자 좋아하는 음식으로 도시락을 싸고, 소풍을 갔다.
엉덩이에 꼬리를 달고 학교에 가게 된 지호. 꼬리는 교문 앞에서 커질 대로 커져 버렸다. 엉거주춤 꼬리를 감추면서 아이는 교실 문에서 짝꿍과 마주쳤다. 앗! 지호도 짝꿍도 둘 다 놀란 눈치다. 짝꿍에게도 비밀이 있었다. 고양이 수염. 둘은 교실에 들어갔는데 더 놀라운 장면이 펼쳐졌다. 같은 반 친구들이 이상하다. 아니, 어쩌면 다들 자기 모습 그대로 드러난 건지도 모르겠다. 어떤 친구는 손이 집게발이다. 머리에 사슴뿔이 난 친구도 있다. 어깻죽지에서 날개를 펄럭이는 친구, 토끼 귀, 요정 귀, 코끼리 코가 달린 친구도 보인다.
알고 봤더니 감출 일이 아니었다. ‘나만 그래’가 ‘너도 그래’로 ‘다 그래’로 바뀌면 들킬까 봐 싸매고 감추지 않아도 된다. 엄한 데 힘 빼지 말 걸 괜히 아등바등했다는 후회도 든다. ‘다 그래’라는 생각으로 그냥 있는 그대로 내어 보이면 어떨까? ‘다 그래 정신’이 있다면 그렇게 할 용기가 날거다. 감추려고 애쓰지 않으니 편안해지겠지. 내 모습을 그대로 보이면 나도, 보는 상대도 편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