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도 일탈, 짜장면 한 그릇
서랍 속 여행 일기를 발견했어요. 제주도를 마지막으로 가본 게 십 년 전이네요. 그사이 몰라보게 달라졌겠지요. 제주도에 중국인이 엄청 많다는 얘기를 들었는데 점령당하진 않았죠? 우도 생각이 간절한 오후입니다.
"이번 열차는 왕십리 행 열차입니다."
지하철 역사 내, 바삐 움직이는 인파에 밀려 지하철을 탄다. 지하철 안,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이다. 복작거리는 사람들 틈에 끼어 '역을 몇 개 더 가야 하나'하고 노선도를 쳐다보는 창밖으로 시선이 간다. '바다다!' 소리칠 뻔했다. '아니구나, 한강이네.' 저 멀리 펼쳐진 강줄기에 시야가 트이고, 숨통도 트인다. 싱그러운 자연의 생기가 전해진다. 참 좋다.
자연이 그리워지거나, 그 넉넉한 품에 폭 안기고 싶을 때 0순위로 생각나는 곳이 제주도이다. 제주도를 떠올리면 푸르름이 따라온다. 자연이 정말 멋진 곳이라 제주도 어디서든 카메라 셔터를 누르기만 하면 작품사진이 나온다.
제주도 여행의 첫 시작은 우도였다. 올레길 1-1코스에 자리 잡은 섬, 우도는 잘 알려진 곳이고, 이미 많은 이들이 다녀갔다. '나도 거기 가봤는데.'라고 우도를 설명하기에는 한참 부족하다. 그곳의 아름다움과 청량함을 어찌 담아낼 수 있을까?
제주도 올레길이 유명세를 치르면서 곳곳에 숙박시설이 많이 생겼다. 나 같은 뚜벅이 여행자도 부담없이 편하게 머무는 공용 침실, 도미토리 형태 시설도 꽤 있다. 여기에선 일정이 비슷한 동행자를 만나 여행 친구 삼을 수 있고, 넉넉한 인심의 주인장을 만난다면 저녁 식사가 풍성해진다. 짧은 국내 여행에 즐거움이 배가된다. 올레길 1코스 주변의 숙소에서 묵었는데 숙박객 중에 우도를 가려는 사람이 많았다. 숙소에서 선착장까지 셔틀 서비스가 있어 당일 우도 여행이 가능했다. 뚜벅이 여행자를 위한 숙소 주인장의 배려가 고마웠다.
배에서 내리면 해안선을 따라서 한 바퀴 걷거나 자전거를 탈 수도 있다. 바닷바람을 가로지르며 걷는 것도 괜찮겠다싶어 우리는 걸어다녔다. 숨어있던 멋진 풍경이 하나씩 모습을 드러냈다. 이번엔 에메랄드빛 바다가 펼쳐졌다. 자동으로 환호성이 나온다. 자연에 소리치고 나면 정말 속이 후련하다.
우도를 걸어 다니다보면 조금 지칠 수 있다. 특히 햇살이 눈 부신 날에는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바다가 아름답지만, 해안선을 따라 한 바퀴 도는 건 체력이 뒷받침 해줘야 한다. 나같이, 중간에 헉헉대는 사람을 위해서 섬을 가로질러 마을로 들어 오는 지름길도 있었다.
해안도로를 따라 걷다가 얼마쯤 되었을까? 일행 중 한 명이 짜장면 이야기를 꺼냈다. 맛있는 중국집이 있다며. 그때 우리 모두 비슷한 마음이었을까? 기다렸다는 듯이 전부 호응했다. 우도에서 짜장면 한번 먹어보자며 흔쾌히 루트를 바꾸었다. 해안선 대신 마을로 들어가는 길로 틀었다. 우도를 한바퀴 완주하진 못했지만 괜찮다. 짜장면은 맛있었고 우리는 즐거웠으니까. 여행에서는 정답이 없다. 내일은 어떤 여행 문제를 풀어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