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는 대한민국' 북클럽을 만나고
말보다 글이 확실히 편하다. 글을 잘 쓴다는 건 아니다. 그냥저냥 끄적대는 정도지만 상대의 시선이 덜 느껴져서 부담이 없다. 내 글을 누가 볼 거라고는 생각 못 하고, 혼자 끄적거리는 식으로 쓰면 되니까 편하고, 자유롭다.
말해야 할 때 난 참 힘들다. 대화를 나눌 때 나는 마이크를 좀처럼 잡지 않는다. 웬만해선 그저 듣고 있는데, 계속 듣고만 있기 뭣한 상황이 생긴다. 내가 대답할 차례다. 다른 사람의 시선이 내게 향하고, 나는 뭐라도 얘기해야 한다. 상대방이 대답을 기다리듯 나를 빤히 쳐다본다. 눈에서 레이저를 쏘는 게 아닌데도 그 시선이 따갑다. 빨리 뭐라도 해야 할 것 같은 초조함이 밀려온다. 그리고선 내 머릿속은 버퍼링 버튼이 눌린 듯 먹통이 된다. 입 밖으로 나도 모르고, 상대도 모를 뭔가가 튀어나온다. 출력값은 '어버버'다. 아무 말 대잔치로 마무리되곤 하는 내 말주변을 어떻게든 손봐야 했다.
말발이 없다. 왜 그럴까? 혼자 머리를 굴려본다.
우선 나는 순발력이 부족하지.
짧은 시간 내에 할 말을 생각하지 못해 주먹구구식으로 대처하니 그럴 수밖에 없겠다.
할 말을 미리 생각하고, 준비하면 덜 당황하지 않을까?
평상시 생각을 정리하고, 내용을 구성하는 훈련이 필요하겠네!
책을 읽으면서 생각 정리하기 연습하면 되겠네!
이러한 고민을 거쳐 말발을 늘려보고자 '책 읽기'를 선택했다.
책을 좀 읽어야겠다.
말만 쉽다. 책 읽기를 숨쉬기 운동 정도로 가볍게 생각한 적이 있었다. 자기소개서 항목에 딱히 적을 게 없을 때 '취미는 독서'라고 적었다. 누구나 할 수 있는, 그러면서도 있어 보이는 활동이라고 생각했다.
누구나 할 수 있다지만, 아무나 할 수 없는 게 독서라는 걸 이제는 안다. 말이 좋아 독서지. 취미로 책을 읽는다?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쉬는 시간에는 쉬어야 한다. 내 사전에 책 읽기는 쉬는 게 아니다. 쉴 틈만 나면 늘 그렇듯 스마트폰을 잡는다. 유튜브를 기웃거리고, 앱테크를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왜 책에는 손이 가지 않는 걸까?
일단, 책이 스마트폰보다 무겁다. 심리적 무게까지 더하면 책은 천근만근이다. 스마트폰은 손에 착 감기지만, 둔탁한 책은 잡히지도, 굳이 내가 잡으려고도 안 한다. 텍스트의 무게 때문인지 책장을 넘기는 것도 버겁다. 책이라는 놈, 호락호락하지 않다. 빽빽한 글자를 꼭꼭 씹어 읽으면서 기억 속에, 머릿속에 채워 넣어야 한다. 여간 정성과 웬만한 인내심으로는 버텨내기가 어렵다. 진득하게 앉아있을 엉덩이 힘은 옵션이다.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핸드폰으로 향하는 내 손을 뿌리쳐내기도 쉽지 않다.
습관이 잡히지 않아서인지 책 읽기에 거부반응이 심다. 책 읽기가 좋은 건 알아도 게으른 뇌는 그다지 반기지 않았다. 독서에 대한 내적 장벽은 두껍고 높았다. 다부진 결의나 굳은 마음만으로는 책을 읽기가 힘들었다.
도저히 혼자서는 안 되겠다. 책 읽기 동지가 있을까? 등 떠밀리듯, 어쩔 수 없이라도, 책을 읽을 장치가 필요했다. 책을 읽는 게 자연스러워질 때까지 책과 친해지는 시간을 가져야 했다. 그러다 보면 습관이 생기고, 관성이 붙어서 쉬워질 것 같았다.
관심을 두고 찾아보니 주변에 오프라인 독서 모임이 생각보다 많았다. 보통은 같이 읽을 책을 정하고, 주 1회나 월 1회 약속된 날에 만나서 소감을 나누는 형태로 진행하는 듯했다. 말주변이 없고, 소심한 나는 회원들 얼굴을 보고, 얘기하는 자리가 걸림돌이 되었다. 해야 하나 머뭇거리다가 북클럽 모집 배너 광고를 보게 되었다.
‘책 읽고 싶은 사람 여기 붙어라.’
북클럽은 책에 관심 있는 사람을 한데 모아주었다. 책 읽을 친구가 우르르 모이니 책 읽는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온라인이라서 한결 부담이 없었다. 단톡방에서는 책의 좋은 구절이 오고 가고, 분위기 좋은 북카페 사진, 감명 깊었던 책의 한 페이지가 틈틈이 올라왔다. OOO 책을 OO일 까지 읽으라는 임무를 던져주지는 않았다. 숙제하듯이 책을 읽지 않아도 되니 좋았다. 자기가 읽고 싶은 책을 아무 날에 읽고, 네이버 카페에 읽은 흔적을 남기면 된다. ‘아무개 왔다 감’ 방명록 남기듯, 인증사진이나 느낌 몇 줄 서술하는 정도면 충분하다. 책 읽기 입문자인 나에게 딱 맞았다. 할 수 있을 만큼만 무리하지 않고 조금씩 해나갈 수 있어서 좋았다.
책 읽기 인증을 비롯한 북클럽에서 준비한 다른 활동을 하다 보면 ‘북코인’이라는 것을 받는다. 가상화폐는 아니고, 오로지 북클럽에서만 사용할 수 있는 동기부여코인이다. 북코인은 책 읽기가 서툰 나를 우쭈쭈하면서 격려해주었다.
북클럽에 가입하고, 5월 17일 단체 오픈 채팅방에 들어갔다. 3개월이 지났다. 북클럽 활동 전과 후 차이가 생겼다. 눈에 띄게 달라진 건 책 읽기가 편해졌다는 거다. 책을 가까이하게 되었다. 3개월 남짓한 기간에 나는 종이책 3권, 듣는 책 5권을 완독했다. 책 한 권을 끝까지 읽은 게 얼마 만인지. 뿌듯하고, 감동이었다.
북클럽 책 읽기를 통해 얻은 정말 값진 수확이 하나 더 있다. ‘나 자신, 내 약점’을 보게 되었다는 거다. 여기 북클럽은 10가지로 관심 분야를 나누고, 관심사에 따라 북클럽 회원을 그룹으로 묶었다. 분야별로 멘토가 있다. 멘토님은 관심 분야와 관련된 읽을만한 도서를 추천해주고, 내용 길잡이를 해주신다. 그리고 온라인, 오프라인 강연으로 북클럽 회원과 만나면서 안내자가 되어 주신다. 나는 말주변을 늘려볼 목적으로 '소통, 공감' 분야를 선택했다. 아나운서 정용실 아나운서님이 우리 분야 멘토였다.
정용실 멘토님이 추천한 심리서를 두 권쯤 읽었을 때 내 상황을 객관적으로 볼 수 있었다. 단순히 말주변의 문제가 아니었음을 알게 되었다. 사실 나는 혼자 지내는 게 너무 익숙해져서 대화가 거의 고갈된 상태였다. 그 자리가 편치 않으니 말하는데도 버퍼링이 걸렸겠지. 서로 주거니 받거니 말하고 듣는 과정에서 언어의 정교함과 논리정연함만 갖추면 된다고 생각했었다. 근데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소통과 공감' 주제에 중요한 건 바로 마음이었다. 사람과 사람 사이 대화에는 감정과 정서가 얽혀있다. 나와 타인의 감정을 읽어내어 공감해야 진정한 소통을 이룰 수 있다는 점을 배웠다. 배울수록 더 어려워졌다. 막막하기도 했다. 사실 감정 살피기는 내게 참 낯설다. 수십 년 살면서 생각지도 못하고 지나친 영역이다. 무딘 마음으로, 뭉텅 거리 마음으로 살아왔기에 마음 읽기가 잘 될지는 모르겠다.
책을 읽으면서 논리적인 사고를 훈련하고, 세련된 언어 구사를 기대했었다. 그 정도면 충분하다 싶었는데 헤어나오지 못하고, 오히려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내가 모르고 지나친 미지의 세계가 자꾸 드러난다. 배워야 할 것도, 읽고 고민해야 할 것도 점점 쌓여간다. 그렇지만 그렇게 걱정되지는 않는다. 두려움 대신 그럭저럭해볼 만하다고 덤비는 걸 보면 책 읽기 근력이 조금은 생긴 모양이다.
생각의 물꼬를 터 준 북클럽에게 고마움을 전한다. 북클럽을 통해 책을 가까이하고, 읽게 되었다. 북클럽이 주선해 준 멘토님을 만나 자기 성찰을 위한 책을 읽고 배우게 되었다.
책 읽기가 서툰 분들에게 ‘책 읽는 대한민국’ 북클럽을 권하고 싶다. 특별히 소통에 대한 고민이 있다면 우리 정용실 멘토님이 쓰신 ‘공감의 언어’를 추천하고 싶다. 이 책에는 소통의 문제를 놓고, 다양한 책을 읽고, 다른 사람과 대화하면서 배우고 훈련하신 멘토님의 소통 경험치가 고스란히 담겨있다. 주옥같은 메시지를 진솔하게 나눠주신 멘토님께도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