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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Feb 27. 2022

뜻을 세워 문에 들어선다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답사기 1-소수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2019년 '한국의 서원'이 등재되었다.

우리는 얼마 전부터 한국의 서원으로 등재된 아홉 곳을 차례대로 답사 중이다.

그 시작은 매우 즉흥적이었다.




어느 여유롭던 날, 크고 작은 사건 사고들로 어수선한 우리 가족의 마음에 청량한 기운을 채워줄 영주 부석사로 당일 치기 여행을 나섰다. 인파가 드문 때에 찾아간 덕분에 찬찬히 경내를 살펴볼 수 있었다. 부석사는 무량수전의 배흘림 기둥만 아름다웠던 것이 아니었다. 수묵화로 그려놓은 듯한 소백산 능선, 바람에 무심히 울리는 풍경소리, 빗질 자국이 보이는 정갈하게 정돈된 바닥들, 선비화, 부석 등 곳곳이 전설로 가득한 정성과 신비의 공간이었다.


야트막한 돌담 위에 기왓장을 올려놓은 길의 끝에 커다란 부석(浮石)이 있다. 아이는 부석으로 이어진 돌담길이 용의 꼬리 같다고 하였다. 그러고 보니 돌담 위의 기왓장이 꼭 용의 비늘처럼 보였다. (의상대사를 흠모 하던 여인이 용이 되어 의상대사가 부석사를 지을 수 있도록 거석을 들어 올려 주었다.) 우리는 신비와 전설의 부석사를 내려와 현실과 이상을 이어 줄 배움의 공간, 소수서원으로 향했다.

부석사ㅡ부석




10여 년 만에 아이와 함께 찾은 소수서원은 새로운 감회로 다가왔다. 중고등학생 시절, 국사 시험 때마다 괴롭히던 최초의 사액서원-소수서원. 주자학을 들여온 안향 선생의 고향에 그를 기념하기 위해 주세붕 선생이 서당을 지었고 마을 이름을 따서 백운동이라 지었다. 이후, 퇴계 이황 선생이 그 지역의 군수로 재직하며 명종에게 건의하여 '소수(紹修)'이름을 하사 받아 사액(賜額) 서원이 된 것이다. 백운동 서원과 소수 서원은 분명 같은 곳이지만, 결혼하기 전/후의 삶처럼 완전히 다른 의미이기도 한 것을 그때는 헷갈리기만 했다.


서원의 입구에는 500년 된 소나무들이 거북 등껍질을 감싸고 하늘로 쭉쭉 뻗어 나있다. 관리번호를 매겨 세심하게 관리된 소나무들은 사철 푸른 잎처럼 항시 정진하는 배움의 자세와 같아 학자수라 한다고 한다. 사람이 부여한 의미를 뛰어넘어 시간을 품은 풍경은 노을이 지는 해 질 무렵에 고요함으로 감성을 압도한다.


문턱을 넘지도 못하였는데, 서원을 끼고 흐르는 실개천에 걸음을 멈춘다.

죽계천. 건너편 주세붕 선생이 바위에 새긴 붉은 '경敬'이 눈을 사로잡는다. 단종 복위를 도모하다 희생당한 선비들의 넋을 기리고자 붉은색으로 칠했다는 엄중한 메시지를 담은 바위 옆에는 달빛에 취해 풍류를 즐기는 취한대가 나란히 있다. 장/단, 선/악, 중/경이 모두 하나다. 둘 중 어느 것을 버리고, 하나 만을 택하게 될 때 우리는 난폭해지거나 무도해지는 것이다.

소수서원 죽계천



  

이제는 문턱을 넘을 차례다.

지도문志道門

도에 뜻을 두다.

도.

하늘의 이치.

산속에 홀로 지내는 소용없을지 몰라도 부대껴 사는 사람 간에는 온갖 치사하고 억울한 일들이 일어난다. 부대끼지 않는 사람의 평온함은 그래서 일시적이다. 자극이 없으니 반응이 없는 것이다. 매일의 크고 작은 자극들과 시대적 조건에 놓이는 우리에게 어디에(또는 어떤 방향) 뜻을 두느냐는 중요하다. 시대의 혼란을 피해 밭을 가는 장저와 걸익이 자로에게 "사람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보다 세상을 피하는 선비를 따르는 것이 어떠하겠는가"하고 말을 건넨다. 이 말을 들은 공자는 한동안 무연히 계시다 "짐승과는 함께 무리 지어 살 수 없으니, 내가 사람의 무리와 함께 하지 않으면 누구와 함께 하겠는가'라고 대답한다. (논어 미자 편 6장)


흔하지만 뼈 때리는 격언이 있다.

'생각하는 대로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된다.' 무리 지어 사는 것이 인간의 숙명이라면 나를 잃지 않기 위해, 인간다움을 잃지 않기 위해 '도'에 뜻을 두려 서로를 일깨워야 한다. 인간다움은 무엇인지, 인간의 길은 무엇인지, 나는 어떤 선택을 할지,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마땅한지...

서로가 나약하므로 더불어 배워나가는 것이다.

그 문턱을 함께 넘어서는 것이다.  


서원은 그 배움과 실천의 과정을 공간적으로 재현한 곳이다.

문을 넘어서면 더불어 배우는 강학당, 더불어 먹고사는 기숙사, 선현을 기억하는 제향의 공간이 펼쳐져 있다.




서원 뒷길로 이어진 다리를 건너면 소수박물관에 갈 수 있다. 박물관 입구에는 공자-안향-주세붕 선생의 흉상이 세워져 있다. 선비들의 삶과 조선시대 경북 지리를 알 수 있는 내용이 전시되어 있다. 박물관을 나오면 죽계천을 따라 서원으로 돌아 나오는 산책로가 있다. 죽계천 물소리, 시원하게 뻗은 나무, 그 너머로 지나는 햇빛. 그야말로 철학하기에 완벽한 길이다.

철학이 뭐 별건가.

오늘에 치이고 살아도 인간답게 사는 것이 무엇인지 질문하기를 멈추지 않는 것이 철학이지.  


서원 나오는 길에 입구에 '한국의 서원' 유네스코 세계유산 안내석을 보았다.

"다른 곳도 또 가볼까?"

"좋지!"

그렇게 우리의 서원 답사기는 시작되었다.


병산서원 앞 표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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