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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늦된 사람 Feb 28. 2022

마르지 않는 샘물처럼

세계유산 '한국의 서원' 답사기 2-도산서원

퇴계 선생이 풍기군수로 재직하던 시절, 백운동 서원을 명종에게 건의해 '소수'라는 이름을 받았다.

소수서원의 곳곳마다 백운동 서원을 사랑한 퇴계의 애정을 느낄 수 있었다.

다음 답사지가 도산서원인 것은 우리에게 너무 당연한 순서였다.




바람 부는 겨울날 도산서원으로 가는 길은 낙동강의 수수한 멋을 감상할 수 있었다.  

낙동강을 건너는 다리를 건널 때는 굽이 흐르는 멋에 취해 갑자기 운전 속도가 느려질지도 모르니 조심하시길!


굽이굽이 길을 따라 들어가면 도산서원 주차장이 나온다. 입구의 주차요원에게 주차비를 지불하고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소수서원은 주차비는 받지 않고 입장료만 받았다. 반면, 병산서원은 주차비와 입장료가 모두 없다. 도산서원은 주차장 입구의 주차요원에게 주차비를 내고, 하마비가 있는 서원 입구에서 입장료를 따로 계산해야 한다. '한국의 서원'으로 공통 지정되었으나 관리는 각 지자체별로 이루이지는지 입장료와 주차비가 모두 다르다.


1. 시사단試士檀

하마비에서부터 안동호를 끼고 걸어 들어가면 퇴계 선생의 도산서원을 만날 수 있다.

서원의 입구에서 정면에 보이는 '시사단'은 정조가 퇴계를 흠모하여 그의 학덕을 기념하기 위해 특별히 과거시험을 치른 장소이다. 퇴계선생의 학덕을 기린 의의도 있으나, 지방 선비들의 사기를 높여주기 위함도 있었다고 한다. 어명으로 특별히 진행된 과거시험에 총 7,228명이 응시하였고 정조가 직접 11명을 선발했다고 한다.(도산서원 안내지 참고) 예나 지금이나 사회문화적 자본이 집중된 서울과 상대적으로 부족한 지방과의 편차는 출세에도 적잖은 영향을 끼쳤나 보다. 시사단은 굽이길을 따라 시험에 응하기 위해 골짜기를 찾아온 응시자들의 간절한 패기와 형평과 균형을 바탕으로 인재를 찾아 쓰려는 정조의 의미와 실리를 동시에 획득한 정책이 합을 맞추어 선을 이룬 장소인 것이다. 댐으로 수몰된 것을 복원해놓은 강의 한가운데 놓인 시사단은 세한도의 소나무처럼 홀로 맑았다.




2. 열정冽井, 진도문進道門과 몽천夢泉  

서원 앞, 우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투박한 돌 위에 깊이 새긴 글귀가 선명하다.


열정冽井, 진도문進道門

배움이 자기만족으로만 그친다면, 그것은 결코 공자가 드러내고자 했던 '도道'는 아니었을 것이다. 서원 입구 앞의 우물인 '열정'은 <역경易經>의 '정렬한천식井洌寒泉食 물이 맑고 차가우니 마실 수 있다'에서 그 이름을 따왔다고 한다. 우물의 물은 마을을 떠나지 않으며, 길어내도 줄어들지 않고, 다시 샘이 솟아난다. 선생은 제자들이 세상의 널린 지식을 부단한 노력으로 닦아 샘물처럼 사회에 꼭 필요한 인재가 되라는 뜻을 전했다고 한다.

제 아무리 뜻을 세워 길을 나선다 해도 꽃길은 드물다. 도道라는 실체도 없는 대상을 찾아 나선 길이 쉽기란 애초에 불가능한 일이지만, 뜻을 펼칠 기회를 얻기가 어려워 더욱 막막하다. 그래도 나아가야 한다. 샘물은 멈추면 썩는다.

남에게 인정받기 위한 위인지학爲人之學을 넘어, 스스로 자신의 소명을 다하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위기지학爲己之學으로서의 배움은 편협한 나를 넘어 나를 둘러싼 공동체로 확장한 더 큰 나로 확대해 나가는 것이다. 왜란, 호란으로 조선의 민중이 처절할 때에 일제강점기의 비참한 때에 퇴계 선생의 제자들이 분연히 떨쳐 일어선 것은 선생의 가르침을 체화한 제자들이 이윽고 다다른 바다였을지도...

도산서당 앞 몽천

몽천夢泉

진도문을 들어와 보이는 오른편에 도산서당이 있다. 선생께서 4년에 걸쳐 지으신 건물로 이곳에 머물며 제자들을 가르친 곳이다. 그 앞에 작은 샘물이 있다. 몽천.

퇴계 선생은 산골에서 솟아나는 샘물을 보고 이곳에 서당의 터를 잡았다고 한다. <역경易經>의 몽괘에서 이름을 따와 이름 붙인 '몽천', 무지몽매한 제자를 바른 길로 이끌어나가려는 스승의 마음가짐을 담은 샘물이며, 더불어 제자로 하여금 산골의 한 방울 샘물이 이윽고 바다에 이르듯 끊임없는 정진으로 선비가 될 것을 전하는 샘물일 것이다.  




서원을 나와 표지판을 따라 퇴계종택을 찾아가는 길에 개울 옆의 심상찮은 비석이 보여 차를 세웠다. 도산서원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계상서당溪上書堂'을 복원해 놓은 곳이었다. 제자가 많아져 도산서당을 지어 옮기셨다고 한다. 눈썰미와 산만함이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칠 뻔했다. 잠시 내려 계상서당을 둘러보던 찰나, 올해 처음 눈이 내렸다. 석 달 가까이 눈다운 눈이나 비다운 비가 내리지 않아 푸근하게 오시려나 기대했더니 잠시 내리고 말아 아쉬웠다.


발치에서 퇴계 종택을 본 후, 퇴계 묘소를 참배하는 것으로 서원 답사 2탄을 마무리했다. 퇴계 선생의 며느리 묘를 지나 가파른 계단을 오르고 나면 퇴계선생 묘소가 있다. 잡목으로 잘 정돈되지 않은 주변이 못내 씁쓸하였다. 돌아가시기 전, 직접 남겨놓고 가셨다는 묘비명을 살피고 있는데, 아이가 넙죽 절을 올린다. 나도 따라 인사를 드렸다.

"잘 배우고 갑니다"


선생께서 좋아하시던 매화 필 때, 다시 와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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