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유부초밥

2024년 11월 5일 화요일

by 흐르미

유부초밥을 만들려고 재료를 사러 마트를 갔다. 3000원짜리로 살지, 4000원짜리로 살지 고민하다 4000원으로 샀다. 퇴근 후에 밥 만드는 것도 억울한 나에게 유부초밥 이게 뭐라고 싼 걸 먹여야 하나 싶어서. 내 입에 들어가는 거, 비싼 걸로 먹이자 하고 골랐다.


4000원의 유부초밥은 특별한 게 없었다. 굳이 꼽자면 매실액이 들어갔다는 거? 싼 것과 비교가 안될 정도로 냄새도 구성도 비슷했다. 식초, 후레이크 그리고 유부. 전자레인지에 돌려 해동시킨 밥 2개를 그릇에 넣고 식초, 후레이크와 함께 비볐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밥을 숟가락으로 적당량을 퍼서 유부 입을 벌려 집어넣었다.


나는 유부초밥을 맛있어 하긴 하지만 만드는 건 좋아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유부의 기름이 손에 묻는 게 싫기 때문이다. 손만 미끌거리겠나. 유부를 포장했던 비닐을 자른 가위도 미끌, 밥을 유부에 집어넣는 숟가락도 미끌, 설거지할 때 쓰는 수세미도 미끌. 그래서 맛있게 먹는 것치곤 만드는 횟수가 현저히 적다.


하지만 이번엔 기분이 달랐다. 7시간을 서서 일한 후 집 가자마자 설거지까지 하고 만들었는데도 짜증이 나 있기는커녕 기분이 되게 좋았다. 손이 미끌해도 아이고, 미끌거려~ 하면서 콧노래를 불렀다. 유부에 밥을 집어넣다 뜨거운 밥에 손이 데어도 아이고 뜨거워라~ 하며 쿨하게 손을 탈탈 털었다.


왜 오늘은 만드는 게 재밌지? 콧노래를 부르면서도 평소와 다른 게 있는지 생각했다. 평소와 다른 점이라면…. 마트에 있던 유부초밥 중 가장 비싼 걸 샀다는 것. 그 점이 뭐랄까, 고작 천 원 차이인데도 나에게 사랑받는 느낌이었다. 평소라면 3000원짜리를 샀을 텐데. 그때 느꼈다. 아아, 나는 돈에게 얼마나 내 낭만을 갖다 바쳤는가 하고.


매번 제일 싼 걸 고르던 내 손. 비싼 것은 쳐다도 보지 않던 내 눈. 이랬던 내가 제일 비싼 걸 골랐다는 건 나에게 큰 결심을 했다는 것이다. 나는 제일 비싼 걸 샀다는 것보다 그걸 고르면서 했던 결심이 기분 좋았다. ‘내 입에 들어가는 거, 비싼 걸로 먹이자.’ 이 결심이 꼭 지갑에 남은 마지막 지폐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다 준 느낌이었다.


그 지폐를 내가 받아보니 알겠다. 이때까지 나의 낭만은 돈을 아끼는 데에 다 쓰였다는 것을. 이런 내가 불쌍하면서도 가성비 좋은 모습에 웃음이 나기도 했다. 단순하기는. 가끔은 낭만을 내게 온전히 쏟아야겠다는 다짐을 했다. 스스로를 사랑하는 걸 티 내는 방법을 배우다니, 운이 좋은 날이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나는 성공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가?“ ”아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