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독후감 공모전

2024년 11월 11일 월요일

by 흐르미

10월에 회사에서 개최한 독후감 공모전에 글을 냈다. 입사한 지 1년 반 만에, 작년에는 포기했던 공모전에 글을 낸 것이다. 책은 <불편한 편의점>이었다. 고른 이유는 공모전 가능 도서들 중 가장 진입장벽이 낮아 보였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다들 재밌게 보길래 내용이 궁금하기도 했다.


나는 8월부터 공모전을 준비했다.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었다. 정말 오랜만에 읽는 책이었다. 그러고 마감하기 삼 일 전에 독후감 쓰기를 시작해서 제출했다. 결과는 탈락이었다.

결과 발표 나기 5일 전부터 부장님께서 수상자들에게 연락을 돌리는 걸 보았고 나에겐 ‘고객님한테서 어떤 문의받았냐 ‘는 회사 전화 말고는 연락을 받지 못했다. 그때 어렴풋이 느꼈다. 나 탈락했구나.


꽤나 마음이 아팠다. 왜냐하면 독후감을 제출할 때 동료분들이 모두 참가상은 받을 거라고 했기 때문에. 헛바람 덕분에 내 몸이 한 달간은 붕 떠 있었던 것 같다. 발표날이 다가올 때마다 심장박동 소리가 내 귓가에 스피커를 둔 듯 크게 들려왔다. 하지만 그 모든 것들은 달콤한 가을밤의 꿈이었다.


독후감을 쓸 땐 굉장히 괴로웠다. 고등학생 때 이후로 독후감을 처음 써보는데 어떻게 써야 하는지 기억이 안 났다. 내가 써왔던 글이라곤 철학 발표지와 졸업 논문(그마저도 4년 지난 기억), 인스타툰에 쓰일 함축적인 문장들, 징징거리듯 쓰는 일기인데, 반듯한 모범생 같은 독후감을 이제 와서 어떻게 쓰지? 싶었다. 그래서 인터넷에 ‘독후감 쓰는 법’ 검색도 했다.


청개구리 심보가 있는 나는 ‘독후감 쓰는 법’을 읽으면서도 흥, 이건 심심해. 내가 끌리는 대로 쓰겠다! 하고 생각했다. 탈락이라는 결과는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좋았던 건, 나를 소개할 게 직장밖에 없다는 자괴감에 몸부림치던 때에, 점집에서 아홉수라는 얘기를 들었던 때에, 친구들은 이직에 성공하고 사촌언니와 남자친구는 긴 시험에 합격해서 축하받는 모습을 보며 나는 축하받을 게 없다는 걸 차갑게 깨달았을 때에, 도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생겼다는 사실이다.


3일에 걸쳐 쓴 독후감을 제출한 날은 내가 나를 인식하게 된 날이었고 2024년에 뭐 했냐는 질문에 당당히 공모전에 도전했다는 말을 할 수 있게 된 날이었다. 올해 섭섭하고 억울하고 자존심 바닥났던 기억들이 다 완화되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왠지 모르게 모든 게 잘될 것 같은 기분마저 들었다.


내가 나를 믿어보고 싶다는 기분이 들었다는 것. 그걸 느꼈다는 것 자체가 난 이미 상을 받은 것과 마찬가지였다. 물론 글 쓰는 것에 욕심이 있는데 수상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굉장히 자존심도 상하고 수치스러웠다. 하지만 뭐 어떤가. 건강하지 않은가. 겁을 먹으며 도전을 했고 후련했고 떨어져서 부끄러워하고. 이 과정들이 너무나 다채로워서 꽤나 신이 나기도 하다. 정말, 졌지만 잘 싸웠고 재밌는 실패였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유부초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