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나의 사카린. “

04. (3) 이별, 그 후.

by Da테



내가 가톨릭 신자로서 교리니 성령이니에 천착했던 시기는 결코 길지 않았지만, 그 시간이 남긴 카인의 표식은 이마 위에 남아있다. 나는 중학생 때 영성체를 받았는데, 영유아를 동의 없이 물속에 쳐 박는 세례와 달리 이는 나의 자유의지가 어느 정도 반영된 선택이었다. 당시 우리 가족은 어머니가 선두에 선 가톨릭 집안이었다. 친척 중에서는 불교 신자, 스님, 신자는 아니지만 로사리오 봉사단에서 일하는 사람, 독실한 가톨릭 신자가 뒤섞여 있어 매해 제사와 상장 예식을 동시에 치렀다. 우리는 매주 주일 미사를 갔고, 방학에는 성령 캠프에 참여해 순교자의 무덤을 순례하고는 했으며, 남동생은 중학생이 되자마자 미사에서 사제를 돕는 복사가 되었다.


나는 성령이라는 관념만큼이나 성당이라는 공간 자체를 사랑했다. 오르간의 엄중하고 고귀한 선율을, 하늘과 땅이 웅성거리는 듯한 기도소리를, 우수에 젖어 있는 성가대의 장엄한 음성과 애원을, 거울처럼 반짝거리는 대리석 바닥과 성모 마리아상의 순결한 표면을 사랑했다. 특히 핍박과 구원의 길을 눈부시게 수놓은 스테인글라스가 통과시키는 햇살은 몇 시간이고 황홀하게 바라볼 수 있었다. 가톨릭의 관념과 표상만큼이나 그 미적인 가치가 나를 매료했다. 영성체 기념으로 선물 받은 천사와 장미가 짜인 미사보를 받았을 때 나는 그 아름다움에 한눈에 반했고, 그것이 자신을 크리스천으로 여길 충분한 이유라고 확신했다.


그러나 해를 거듭할수록 나는 성당이라는 공간에서 벗어나고 싶다는 기묘한 소외감을 느꼈다. 이유를 뾰족이 진단하게 어려웠으므로, 주일 미사에 향하는 차에는 불만 없이 몸을 실었지만 미사가 시작되면 참을 수 없는 권태로움을 느꼈다. 하루는 2층 성가대들이 앉는 높은 의자 뒤에 숨어 있다가 들키는 바람에 미사가 잠시동안 중단되기도 했다. 결국 나는 미사가 시작되기 직전 슬그머니 지하로 빠져나가 성경과 책들, 일보와 잡지가 쌓여 있는 지하에 있는 방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그곳은 평소에 아무도 방문하지 않는 공간이었으므로, 나는 쥐 죽은 듯한 침묵과 어둠 때문에 두려움에 빠져 있다가도 점차 적응해 성경을 필사하거나 일보에 실려 있는 만화들을 읽으면서 시간을 보낼 수 있게 되었다. 별들을 읽어 아기 예수의 탄생을 예감한 동방박사가 황금과 유황, 물약을 챙겨 베흘레헴까지 향하는 여정과 한국의 로마 가톨릭 성인들의 삶과 죽음, 메시아를 확증하는 표식인 예수의 기적에 대해 읽으며 나는 순수한 즐거움을 느꼈다. 예수가 사한 기적보다 그가 인류를 위해 사랑으로 희생했다는 사실에 감복하며 눈물을 흘렸고, 예수뿐 아니라 다른 이들 또한 사랑을 위해 삶을 포기할 수 있다는 것에 강렬한 충격과 감동을 느꼈다.


성당에 완전히 발길을 끊게 된 것은 고등학생이 되면서였다. 그때의 나는 성당이라는 공간과는 완전히 다른 세계의 피로함에 찌들어 아침에 눈을 떠야 한다는 사실을 괴롭게 여기게 되었다. 공부를 하며 자신을 둘러싼 세상에 대해 자세히 알아갈수록, 신앙심과 기도는 세상에 그 어떤 문제도 해결해 주지 않을 것이란 현실적이고 세속적인 불안감이 나를 사로 잡았다. 나는 빠르게 고교의 입시 환경에 적응했고, 나 자신이 그렇게 될 수 있기를 바랐다. 하루는 분노한 어머니가 동면에서 깨어난 곰처럼 누워 있는 나를 성당에 데려가기 위해 얼굴 위에 차디찬 얼음물을 쏟아 붙기도 했다. -나는 끝끝내 일어나지 않았고, 어머니는 그 후로 나와 주일 미사에 동행하기를 포기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떠나고 싶었던 것은 성당이 아니라 아니라 한국 사회 그 자체였다. 선지자와 민중, 그 후손을 대대손손 질식 시켰던 사회의 경쟁과 능력주의의 교리가 나와 이 땅의 명줄을 스스로 끊고야 말 것 같았다. 나는 제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는 침묵과, 좀처럼 올바른 방향으로 향하는 법이 없는 소란 속에서 힘 없이 흩어지고 마는 문자의 힘을 열정적으로 갈망하기 시작했다. 대학에 가고 싶었다. 이 숨 막히는 나라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학문의 세계 속에서 내가 구사할 수 있는 것과는 다른 종류의 언어를 개발하고 싶었다. 지금과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쓰고 말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하여 진정으로 내가 자신다운 삶을 ‘살고 있다 ‘고 느끼게 되기를 바랐다.


따라서 문자에 천착하기 시작한 나를 손쉽게 벙어리로 만드는 어린 애인의 위력은 나를 언제나 고통 속에 빠트렸다. 그가 내게 안겨주는 감성은 거룩한 교리의 가르침이나 세상을 바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도록 돕는 지식에 속한 것이 아니었다. 오히려 그것들과 아득히 멀리 떨어져 있고 결코 가까워질 수도 없는 실체 없는 떨림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나를 송두리째 흔들고 있다는 사실을 이해할 수도,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의 새까만 두 눈, 굳게 다물린 입술과 가냘픈 속삭임과 함께할 수 있다면 현재에 안주하면서도 만족스럽게 살아갈 수 있을 것이란 것을 결단코 인정할 수 없었다.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한 곳에 정착하고 싶지 않았다. 정착하지 않을 뿐 아니라, 가능한 한 당장이라도 떠나야만 했다! 그런데 어떻게 저 한 사람, 그토록 작고 약한 아이에게 마음이 뺏겨 이러한 결심을 뿌리부터 흔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이러한 동요에 대해 한 마디도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예정되어 있던 일본의 대학의 수험 기간이 다가올수록 그의 손길을 멀리 하기 시작했다. 그와 철저하게 심정적인 거리를 두면서 다른 관계 맺음과 일본에서의 생활을 꾸려나갈 방법을 모색했다. 내가 그러한 계획들을 그에게 전달했을 때, 그는 두려운 무언가를 예감한 사람처럼 침울한 표정을 했다. 그는 힘 없이 대꾸했다. ‘테라면 물론 대학에 합격할 수 있겠죠.’ 그리고 더더욱 침울해하기 시작했다. 나는 그런 그를 가만히 바라보면서, 즉 노골적으로 그의 고통을 방치하면서 무슨 일이 있어도 그를 통과시킬 생각이 없는 견고한 침묵의 벽을 쌓았다. 자신의 부재가 그가 지금껏 경험해 왔던 고통과 절망 위로 견딜 수 없는 외로움을 더할 것이라는 사실에 죄책감과 슬픔을 느꼈지만 그를 구하는 책임은 자신에게 없다고 단호하게 선을 그었다.


천성적으로 몸이 자주 아팠던 그는 앓는 동안 여러 장의 편지를 썼다. 그곳에서 자그마한 글귀로 속삭였다. ‘제가 별이 될까요? 테는 반짝반짝 한 걸 좋아하잖아요.’ 여러 가지를 예감한 듯이 편지의 마지막에 당부를 했다. ‘추신. … 이 편지를 창가에 놔두세요. 바람에 실려 글자들이 날아가버릴 수 있도록.‘


그가 편지가 적힌 공책을 돌려주고 난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우리는 한 카페에서 다시 만났다. 후각이 예민했던 그는 내가 오늘만큼은 향수를 몸에 두르고 오지 않은 것을 칭찬했다. 그는 나의 손에 보라색 수국을 안겨주고 내게 이별을 고했다. 내가 일본에 가게 된다면 그 고통을 견딜 수 없을 것 같다는 것이 이유였다. 만남 도중에 그가 나와 연락을 그만두고 싶다는 의사를 몇 번 알린 적이 있었지만, 본능적으로 그와의 만남이 오늘로 마지막이 될 것이라는 예감이 들었다. 나는 덜컥 두려워져서 결정을 한 번만 재고해 볼 수 없겠냐고 애원했다. 내가 순순히 수긍하지 않자 그는 잠시동안 바깥에 나가 있어 달라고 부탁했다. 내가 자리에 돌아가려 했을 때, 멀리서 그가 책상 위에 엎드려 눈물을 쏟아내고 있는 것이 보였다. 나는 충격을 받아 그 자리에서 도망치듯이 빠져나왔고, 긴 시간이 지나 자리로 돌아왔다. 그리고는 그가 원하는 작별을 받아들였다.


그와 헤어진 날 밤, 서로를 우연히 마주치지 않기 위해 시간차를 두고 카페를 떠났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지하철 승강장에 서 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 순간 나의 두 눈이 마치 카메라의 줌을 당긴 것처럼 움직여, 피사체인 그는 가만히 있고 주위의 풍경이 어지럽게 흐트러지기 시작했다. 아니, 틀렸다. 그는 실제로 나를 바라보며 가만히 서 있었고, 지하철이 도착하자 사람들이 열차에 타기 위해 일제히 앞으로 움직였을 뿐이다. 커다란 붓이 내려와 인상적인 한 획을 그은 것처럼, 인간은 퍼져버린 색색의 물감이 되고, 그 속에서 유일하게 또렷한 형체를 한 그가 우두커니 서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정지해 있는 창백하고 푸른 온점으로.


나는 그가 마지막으로 선물한 수국을 품에 쥐고 얌전히 집으로 돌아갔다. 그 뒤에는 어리석게도, 극렬하게 분노했다. 자신이 누군가에게 그렇게 극심하게 분노할 수 있다는 것을 처음 알았다. 분노의 화살이 그에게서 나 자신에게로 옮겨 간 것은 자연스러운 수순이었다. 나는 그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준 자신을 극심한 고통 속에 밀어 넣어 벌을 주고 싶었다. 그에게 버려졌다는 기분을 호소하면서 원망의 말을 쏟아내고 싶지는 않았다. 마음을 되돌려 달라고 호소하고 싶지도 않았다. 그의 성격 상 이별을 결심한 이상 그 결정에서 물러설 것 같지 않았고, 나 또한 나의 감정보다 그의 의사를 존중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결국 나는 그저 그의 물건을 소중히 보관하면서 시간을 보냈다. 그것 외에 할 수 있는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몇 달 후 대학에서 합격 통지서가 날아왔고, 나는 차근차근 출국 준비를 서둘렀다. 그때까지만 해도 입시를 하면서 염원했던 해외 유학의 길은 순조롭게 열리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누구도 예상치 못한 변수가 생겼다. COVID-19가 확산된 것이다. 팬데믹의 발생은 가장 먼저 항로를 마비시켰고, 마침내 입국 제한이 시행되면서 나의 출국은 사실상 무기한으로 연장되었다.


그러나 나는 그에게 돌아가지 않았다. 헤어짐을 결심한 그를 다시 만난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나는 그를 대신할 수 있는 존재를 기대하면서 다른 관계 상대를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전보다는 노골적이고 거침없는 폭력을 기대하면서.

지속될 수 있는 진지한 관계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저버리고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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