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2). 드디어, BDSM에 대한 이야기.
Calling out my name
In the summer rain
Ciao amore
내 이름을 부르면서
여름날의 빗 속에서
안녕 내 사랑
-Lana Del Rey <Salvatore>-
당신은, 나는, 무엇에 그렇게 필사적이었을까? 여름날의 더위를 장마가 흔적도 없이 씻겨 내려주고 있었고, 우리는 서툴게나마 슬픔과 열망을 적을 줄 알았다. 서로를 몇 시간이고 마주 보고 앉아있을 수 있는 카페가 있었고 목적 없이 걷는 것을 꾸짖는 법이 없는 공원이 있었다. 이 구도심 속에서 우리가 코 끝까지 차올라온 각자의 외로움에 잠겨 떨어야 할 이유는 없었던 것이다. 조금도.
어린 우리는 분당의 한 카페에서 라테 두 잔과 스콘 하나를 놓고 다시금 침묵에 잠겨 있다. 식사류를 시키는 경우는 거의 없었는데, 서로가 상대를 앞에 두고 식사를 하는 것을 부담스러워했기 때문이다. 우리는 다른 지역으로 함께 놀러 가지도 않았다. 미성년자고, 학생이었기에 금전적인 부담이 있거나 시공간적인 감각이 좁아서가 아니었다. 권태로워진 부부처럼 다람쥐 쳇바퀴 돌 듯 의례적인 만남을 해치우고 있는 것도 아니었다. 단순히 서로에 대해 무지한 상태에서 굳이 다른 환경적 요소를 정신없이 끌어 들일 이유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장소를 모색해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번거로웠다. 우리가 필요로 한 곳은 오직 상대방 하나뿐이었다. 가까이 붙어 조용히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었다.
그가 기억하는 5년 전의 나는 정중하고, 예의 바르고, 말이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 그날의 나는 과연 지금 이 시간이 그의 외로움을 덜어주고 있기는 할지 회의하면서... 예의 바르게 턱을 괴고 있다. 그가 한번 해 보라고 건네주었던 성향 테스트의 결과를 거꾸로 읊은 뒤에 ‘바닐라네요.’라는 답변을 들은 다음 날이었을 것이다. (그것은 내게 몇 주간 공들인 작품에 대해 동경해 머지않는 수석 디자이너로부터 ‘Mid.‘ (그저 그렇네요.)라는 소감을 들은 느낌이었다.) 우리는 통유리창을 정면으로 마주 보는 자리에 앉아 사람들이 모였다가 뿔뿔이 흩어지는 장면을 평화롭게 내려다보고 있다. 그는 내게 검은색 손수건을 보여준다. 나는 그것이 왜 새까만 민무늬인지에 대해 묻는다. 그는 검정이 커뮤니티를 대표하고 있기에, 그것에 속해있는 일원이라는 의미로 검은색을 사용하고 있음을 알려준다. 나는 코 끝을 찡그리며 미소 짓는다. 나는 옷을 스스로 살 수 있는 자의식이 생겼을 때부터 검은색만을 좋아했기 때문이다. 그 위에 무엇이 흘러내려도 표가 나지 않는다는 검정 특유의 무심함이 좋았다.
하루는 그가 내게 직접 만든 초커를 선물해 주었다. 붉은색 나비가 반짝이며 투박한 빛을 반사하는 것이 보였다. ‘테는 내 나비니까.’ 그는 언니라는 호칭 대신에 그저 친근하게 이름을 부르거나 고양이의 귀를 간지럽히듯이 나를 나비라고 부르며 예뻐하고는 했다. 내가 머뭇 거리자 그는 미소를 지으며 초커의 연결 고리 부분을 부드럽게 쥔 뒤, 일말의 예고도 없이 잡아당긴다. 고개가 속절없이 앞으로 쏟아진다. 숨통이 조여들면 그 아래로 흐르는 맥박이 옅은 물에 버려진 물고기처럼 펄떡거리기 시작한다.
그러나 그는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자애롭게 바다에 풀어주듯이 그의 의도를 직접적인 행동에 옮기는 법이 없었다. 애초부터 입을 맞춘다는 행위 앞에 마땅한 개연성을 마련하는 일부터 어려웠고, 행동이 조금이라도 과감해진다 싶으면 사후경직을 일으키듯이 놀라는 나는 난감하기 짝이 없는 상대였을 것이다.
그런 우리에게도 딱 한번 밀폐된 공간이 허용된 적이 있었다. 카페에서 나와 역을 가로지를 때 새로 생긴 듯한 신축 무인 모텔이 눈에 들어온 것이다. 무인 호텔이라면 미성년자가 출입하는 것이 가능할지도 몰랐다. 나는 충동적으로 저곳에 가보고 싶다고 말했다. (사실은 그저 그와 단 둘이 있을 수 있는 공간이 필요했다.) 우리는 용감하게 모텔로 향하는 층수를 누른 뒤에, 뚜렷한 열패감이 엿 보이는 중년 부부들과 함께 나란히 엘리베이터에 몸을 실었다. 그것이 불법적인 행위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대해 따지기도 전에 뇌는 단단히 마비된 상태였다.
가지런한 방 안까지 숨 막히는 침묵과 동행했을 때, 우리는 말없이 침대 위에 걸터앉았다. 나는 불안함과 알 수 없는 초조함에 목구멍이 손가락 한 마디도 들어갈 수 없는 넓이로 좁아지는 것을 느꼈다. 그가 침대 깊숙이 앉으라는 듯이 자신의 옆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나는 습관적으로 그만 … 자신의 양말을 허둥거리며 벗고 말았다. 감탄과 낭패감이 반반 섞인 듯한 웃음소리가 그에게서 터져 나왔다. 나를 놀리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는 순수하게 당황한 듯이 보였다. 여기선 그러지 않아도 괜찮아요. 나는 멍청하게 두어 번 고개를 끄덕였다.
그가 무언가를 속삭였다. 무릎 꿇고 앉아 보세요. 어려운 요구는 아니었다. 나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천천히, 아주 신중하게 그의 앞에 무릎을 꿇고 그의 부드러운 허벅지 위로 볼을 문질렀다. 수분 간, 우리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다음 분명 무언가를 하기는 했지만, 행위 그 자체보다 그와 어떤 식으로든 교감하고 있다는 사실 외에 다른 것을 묘사하는 일 따위는 중요하지 않았다.
고개를 들었을 때, 그의 두 불은 여태껏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색깔로 붉게 상기되어 있었다. 그것을 본 나의 심장이 어떤 세기로 진동했는지 당신은 영영 알 수 없을 것이다. 그의 안위를 염려케 할 정도로 심상치 않게 붉어진 볼이라니! 나는 나의 존재로서 하여금 그를 기쁘게 만들었다는 사실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었다. 그의 기쁨을 깨닫자 그를 올려다볼 수 있다는 사실이 더없이 행복했다. ‘갓 태어난 작은 신.‘ 나는 그날 집으로 돌아와 침착한 어조로 적어 내렸다. ‘이름조차 붙일 수 없지만 그가 곧 나이고, 내가 곧 그가 될 수 있음이 느껴진다.’ 그는 장마가 한창때 깨어났으므로, 사막에 있는 이가 얼굴 위로 쏟아지는 비를 갈망하듯이 하강하는 입맞춤을 그리워하며 살게 될 운명이었다.
나는 그 작은 존재와 이르게 작별했다. 성년이 될 시간이 가파르게 다가오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