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 세상에서 당신은 하나뿐이야?"

03. XXX

by Da테

그녀의 눈이 두 개의 푸른 별처럼 나를 바라보며 반짝였다.

마치 교회에 있는 것 같았다.

—제임스 M. 케인, <포스트맨은 벨을 두 번 울린다>중에서—



이번 주는 정말로 글을 못 쓰게 될 줄 알았다. 여러 가지 일을 앞두고 있어서 그랬던 것인지, PMS증상이 거세진 바람에 나는 꼼짝없이 바닥을 뒹구는 신세가 되었다. 내가 느끼는 고통이 사실은 사치스럽기 짝이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자 끊임없이 입에서 쇠 맛이 났다. 설상가상으로 애인이 4일 동안 집을 비워야 하는 일이 생기자 -비록 떨어져 있는 원격상의 거리는 거의 달라지지 않아 별 차이가 없을지라도- 나는 더더욱 의기소침해졌다.


마음이 우울한 시기에는 전화로나 실물로나 그의 바짓가랑이를 붙잡고 훌쩍거리며 청승을 떠는 것이 의례 같은 것이 되어 버렸다. 맨 처음에는 '왜 이 세상에서 당신은 하나뿐이야? 어떻게 둘이나 셋이 아니라서 나를 불안하고 슬프게 할 수 있어?'라고 따져 물은 뒤 엉엉 울었다. 그다음에 벌어진 일도 대충 엇비슷했다. 어제도 잠에서 깬 뒤 그를 붙잡아 훌쩍거리다가 도무지 안 되겠다 싶어 부랴부랴 집을 나가 버렸다. 극심한 절망감을 어떻게든 이겨 보려 주저앉아 길게 적은 노트에 다음과 같은 문구가 적혀 있었다. '해야 할 것: 1) (관리비) 돈을 출금해서 전달하기. 2) (그를) 피신시키기.'


오늘은 아침 일찍 일어나 미팅도 마치고, Bronski Beat의 Smalltown Boy를 들으며 방구석에서 춤을 출 수 있을 정도로 정신 건강을 회복했다. 그러자 어제 느꼈던 감정이 5년 전 그와 처음 대면했을 때 내가 느꼈던 그것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닫고 퍽 놀랐다. 아, 그 지긋지긋한 감정적 무능함이란!




그를 처음 만났을 때는 본격적으로 고소를 준비하기 시작한 단계이거나, 혹은 사건 접수를 마친 직후였을 것이다. 그 모든 일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성년이 접어들기 전 자기 자신이 누구인지 모르는 행운을 마음껏 누릴 수 있었다. 그날의 사고는 오히려 성에 대한, 그 위험천만한 가능성에 대한 왕성한 호기심에 불을 당겼을 뿐이었다. 사고의 기억은 나의 뇌에 대고 몇 번이고 성냥을 그어댔다. 그 난폭하고 성긴 마찰은 내게 어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 같은 화학 작용을 담빡 뒤집어쓰라고 종용하는 듯했다. 나는 함께 불타버릴 수 있는 이, 혹은 불을 꺼트릴 수 있는 이 중 어느 쪽을 원하는 것인지 알지 못한 채로 상대를 찾아다녔다.


더욱 자세히 서술하고자 하는 마음이 펜을 유혹하지만, 아주 간단하게 말해 그 당시의 내가 생각했던 이상적인 남성의 조건은 이하와 같았다.

죽었다가 부활한 전적이 있을 것.

혹은 이미 죽었고, 선할 것.


이전 경험했던 것으로 말미암아, 당시의 나는 남성과 교제하는 것이 자신의 영혼에 사형 선고를 내리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짐작했다. 바닥을 알 수 없는 수모를 겪게 될 것이라 생각했다. 비비언 고닉이 인용하듯이, 안톤 체호프도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은 절대 수모를 당하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고? 그것은 일종의 예감이었다. 자신이 남성성의 아름다움을 얼마나 숭배하는지와는 관계가 없었다. 나는 열렬하게 타자에게 욕망당하고 싶었다. 나의 손을 잡아 끈 손아귀의 단단함, 꾸며낸 미소가 전달하는 폭력성, 자신의 죄를 조금도 돌아보지 않고 그저 안달이 난 그 유해한 몸과 한번 더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동시에, 그것이 자신의 뜨거운 몸뿐만 아니라 영혼도 들여다보아주길 원했다.... 폭력과 부딪혔을 때 자신은 그의 영혼을 들여다보는데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것이 일종의 가호였음을, 결코 해낼 수 없고 해내었어도 안 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 데는 조금 더 시간이 필요했다.


따라서 나의 관심사는 자연스럽게 여성으로 향했다. 당연하게도 여성과 연애를 위해 필요한 기술이나 요령 따위는 없었다. 여성의 신체를 가지고 여성성을 표현할 수 있는 꾸밈 노동-어쩌면 전자보다 후자가 중요할 수도 있다-을 하는 것이 최소 조건이 되는 남성 청소년과의 연애와는 달랐다. 여성과의 성적 교류가 어떤 모습일지 짐작 가는 바도 없었다. 당시의 나는 인류학자 마거릿 미드와 루스 베네딕트의 자유연애에 다룬 책에 흠뻑 빠져 있었지만, 그곳에서 실천에 응용할 수 있는 기술을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었다.


무엇보다, 청소년의 퀴어가 자유롭게 만나 교류할 수 있는 장소가 없었다. 딱 한번 청소년 레즈비언만 출입이 가능한 카페에 친구와 함께 가본 적이 있었다. 그 음산하고 비위생적인 외견과 곳곳에서 풍기고 있는 담배 연기는 나를 경악하게 만들었을 뿐이었다. 그러나 불평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성을 좋아한다는 이유로 불시 단속에 걸려 감옥에 갈 걱정도 없고, 경찰한테 두들겨 맞을 필요도 없고, 다른 도시로 이주를 할 필요도 없고, 인정머리 없는 부모에 의해 집에서 쫓겨날 걱정도 없었다.... 나는 아주 운이 좋은 속했던 것이다.


남은 선택지는 데이팅 어플이었다. 그 조악한 텍스트들 사이에서 그를 찾아내는 것은 분명 어려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비록 고등학생이었지만, 그나 나나 문장을 최대한 조심스럽게 다루고 싶어 한다는 점에서 닮아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그였다. 신중하게 메시지를 주고받은 우리는 분당의 한 아웃렛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나의 첫인상은 최선보다는 최악에 가까웠을 것이다. 막상 당일이 되자 나는 그와 대면해야 한다는 사실에 불안함을 견디지 못하고 백화점의 2층 위로 올라가 있었다. 나선형의 검은색 나스 칠을 한 계단을 올라가 불안한 표정으로 고개를 빼고 있는 나는 말쑥하지만 기운이 없어 보인다. 새까만 셔츠와 슬랙스를 입은 모습이 마치 전선 위에 득의양양 자리 잡아 사람들의 웃통수를 노려보고 있는 까마귀 같다.


이 겁 많고 의기소침한 까마귀는 영민하다. 보석 같은 것을 손쉽게 찾는다. 한 사람이 인파 속에서 주위를 둘러보다가 결국 떠나 버리려고 하자 나는 숨 가쁘게 계단을 뛰어 내려간다.... 그렇게 마주한 그의 작은 얼굴은... 결코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는다. 왜 이 자리에 서 있는지 이유를 묻고 싶을 정도로 수려한 그것은 딱딱하게 굳어 있다. 내가 머뭇거리자 그는 눈만 들어 올려 나를 바라보다가 중얼거린다. “예쁘다.” 그리고는 마땅한 대답도 찾지 못하고 어쩔 줄 몰라하는 나의 손을 잡아끌고 근처의 카페로 걸어간다.


길고 새까만 머리칼과 작고 섬세하게 빚어진 얼굴.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커다란 눈망울. 작은 체구 위 매번 달라지는 가려한 옷차림. 어느 하나 빠짐없이 인상 깊었지만 그 모든 것을 압도하는 것이 그의 시선이었다. 자리에 앉아 그를 마주 보았을 때, 내가 처음 감각한 것은 그가 나를 아주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다는 것이었다. 악의는 없지만 호기심과 짙은 피로감이 반씩 섞여있는 눈을 마주칠 때마다 숨이 턱턱 막혔다. 그가 다섯 손가락 전부 네일을 받고 있었던 것이 고마웠다. 그 이후 그의 손가락은 그의 시선으로부터 도망갈 수 있는 유일한 피신처가 되었다. 또 날마다 달라지는 네일을 하고 나타났기에 내가 그의 손바닥에 코를 박고 있는 날도 자연히 늘어났다.


그는 겨우내 쌓인 피로와 체념이라는 문양이 촘촘하게 새겨진 스타킹을 목 끝까지 당겨 입고 있는 듯한 인상을 풍겼다. 한여름과 어울리지 않는, 그러나 그의 몸에 꼭 맞아 보이는 듯한, 자수로 짜인 갑옷. 그 강하게 억제되어 있는 듯한 느낌이 나의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끊임없이 나의 신경을 불편하게 만들었던 것을 기억한다. 그러나 나는 그의 삶을 버겁게 만든 것이 이 만남 때문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를 해수면 밑으로 끌어당기는 중력은 분명 다른 곳에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중력을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전망은 서로에게 부재했다. 그래서 우리는 침묵 하기로 한 것이다. 고통에 대해서.


우리가 연애를 목적으로 만났음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그것에 대해서는 함구했다는 사실은 흥미롭다. 우리는 분명 서로의 멜랑콜리를 알아보았고, 그것을 깨닫자마자 몇 시간이고 마주 보고 앉아 침묵을 견디는 수행을 하기로 마음먹은 것 같았다. 나는, 분명, 그에게 첫눈에 반했지만 한편으로 그가 자신의 무능함과 어리석음을 꿰뚫고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다. 따라서 그와 만날 때마다 감추고 싶은 지점을 사정없이 포착당한 사람처럼 침묵을 지키게 되었다. 한편 그는 상대의 방어기제를 거침없이 침몰시키는 자신의 힘에 우쭐해하지도, 나의 감정적 불능 상태를 경멸하지도 않았다. 오로지 헤아리려고 했을 뿐이었다.


우리는 분명 대화를 나누기도 했지만, 서로에 대해 알고 있는 정보는 극히 표면적인 것에 그쳤다. 우리는 그저 서로의 옷자락, 손가락,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입술 따위를 눈에 담으며 잠자코 시간을 죽였다. 손을 잡거나 함께 거리를 산책하고, 편지와 꽃을 주고받고, 종종 서로의 우는 얼굴을 매만져 보기도 했지만 사랑이라는 단어가 화제에 오르는 일은 없었다.


그러는 동안에도 우리 사이에는 누구 할 것 없이 위태롭고,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감정적인 에너지로 들끓고 있었다. 나는 그 감정을 사랑이라는 단어 없이 설명하기 위해 애썼다. 사랑이라는 단어는 내가 느꼈던 감정에 비해서 터무니없이 조그마하고, 단순한 데다, 가장 핵심적인 부분을 놓치고 있다는 느낌마저 들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리허설 없이 바로 본 무대에 떠밀린 배우가 된 느낌. 상대방에게 ‘이제부터 자기 자신을 연기해 보라’고 끊임없이 명령받는 느낌. 그러나 대본은 텅 비어 있고, 발성 기관이 달려 있을 뿐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발달하지 못한 미숙아가 된 듯한 기분이 된다. 나의 무지함이 원망스럽고, 애초에 내가 이 세상에 태어나기는 했는지 회의감이 든다. 자기 자신이 가장 무능할 때 알맞은 상대를 발견하는 것만큼 고통스러운 일이 있을까?


그와 함께하는 시간은 감미롭다기보다 불온했다. 숨 막히는 압박감과 불안감 때문에 결과적으로 그와 있는 시간은 결코 편안하지 않았다. 그의 존재는 시시각각 모습을 바꾸는 살아 숨 쉬는 질문이었다. 매번 마땅한 데이트 장소를 정하지 못해 우리는 공원과 카페를 빙빙 돌아다녔다. 그럴 때면 나는 스스로가 무엇을 원하는지는커녕, 자기 자신이 누군지조차 알 수 없어지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이러한 감정적 무능함에 휩싸여서 끙끙 거리는 동안, 그는 일찍이 출현한 사랑의 증상을 알아차렸다. 그의 마음이 정직해질수록 그의 흰 얼굴은 자주 창백해졌고, 그의 몸은 솟아오르는 울음을 자주 견뎌야 했다. 그는 침묵하는 나를 보며 이 연애에는 가망이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는 점차 빛을 떨치며 연소하는 별이, 사뿐히 떠나가는 바람이 되고 싶었다. 떠나고픈 소망과 무언가를 붙잡고 싶은 열망 사이에서 갈팡질팡 했다. 무언가를 붙잡는 일과 훌쩍 떠나버리는 일을 동시에 해낼 수는 없었다.


그는 나의 침묵을 묵묵히 견뎠다.


충분히 오래 견디지는 못했지만.


그가 자신의 성향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한 것은 만나는 횟수가 빈번해질 때 즈음이었다.

keyword
일요일 연재
이전 03화"내게도 걸려 넘어질 돌부리가 있었으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