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윤주 Mar 22. 2024

나를 함부로 대하게 하는 짓들은 그만두겠어

게으르지만 꾸준하고 싶은 쫄보, “행복하고 싶다” 고 외치다.

이건 내가 그리던 삶이 아니야. 여기서 대체 뭐 하고 있는 거지?

첫 직장을 다닌 지 어언 2년 5개월이 되었고, 난 퇴사를 결심했다.

아동학대 현장에서 아이들을 구한다는 사명감을 가지고 일하고 싶었지만 여러모로 환경이 뒷받침해주지 못했다. 학대로 판단된 것을 인정하지 못하는 대상자의 잦은 민원을 응대하면서 그들의 잘못됨을 인지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회의하고 설득해야 한다는 생각에만 사로잡혀 악을 쓰는 목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분노로 뒤덮여있는 사람은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그저 물고 늘어질 약한 존재가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그들보다 훨씬 어리고 아이를 낳아 키워본 적 없는 내가 희생양이 된 기분이 반복되었다. 그렇게 민원 대상자에게 통화를 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소리가 귓전에 때려 박혔다. 아마 공황의 초입 단계였을 것이라 예측해 본다.


아마도 난 일을 시작한 지 3개월도 채 되지 않았을 무렵,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던 것 같다.

"아 나 여기 일을 오래 하진 못하겠구나."

그래도.. 1년은 버텨봐야 하지 않을까?, 2년은 버텨봐야 하지 않을까? 하고 단지 스펙을 쌓기 위한 버티기가 시작되었다.


일한 지 1년 정도 되었을 무렵, 보다 능동적으로 버티고 싶어서 적극적으로 상담했고 교육했었다.

하지만 민원 응대를 할 때 나의 감정선이 요동치면서 불안감이 확 올라갔다가, 라포형성으로 인해 분노가 잠잠해지면 나의 불안도 이완되는 과정이 분단위를 다투며 빠르게 일어났다. 재학대 같은 위급상황이 갑자기 발생하면 출동하여 최선의 조치를 내려야 했던 긴박한 환경도 불안감을 조성하는데 한몫했던 것 같다.

이러한 환경에 지속적으로 노출되다 보니 회사 안에선 잔잔한 긴장상태로 늘 있었던 것 같다.

별 것도 아닌데 그렇게 깜짝깜짝 놀랐었다. 상사가 나를 부르기 위해 뒤에서 어깨를 툭 치기만 했는데 화들짝 놀라서 같이 민망해졌던 순간들이 떠오른다.


그렇게 민원 응대하는 업무에 의연히 대처하는 방법을 몰라 미숙했던 시절을 지나 이젠 어느 정도 적응을 했다고 생각했었지만 그 생각은 대단한 착각이었다.

알고 보니, '이 정도면 나름 의연히 적응한 거야.' 라며 정신승리를 해왔던 것이다. 마음은 작고 깊은 상처가 아물지도 못한 채 쌓이고 쌓여 낫지 못하는 상태 직전까지 간 줄도 모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잘하고 싶단 생각에 마음을 뒷전으로 둔 채 적극적으로 임해보려 노력했지만, 내가 원하던 방향의 서포트가 이뤄지지 못하는 상황과 마음대로 따라와 주지 않고 아동학대 제도를 악용하는 아이들까지 겪으니 점점 인류애가 사라지더니 웃음기도 사라졌었다.

사람을 그렇게 좋아해서 측은지심을 가지던 나였는데… 냉랭히 변해버린 나에게 이질감이 들기 시작했다.

여태껏 내지 못했던 용기가 폭발했던 순간이었다.


'아, 여기까진가 보다. 나를 함부로 대하게 되는 짓들을 다 내려놓을래. 그만해야겠어.'


그렇게 나는 첫 퇴사를 결정지었다.

청량하고 서늘한 바람이 부는 겨울 밤하늘을 우뚝 서서 올려다보는 감정이 들었다.

서늘하고 추운 겨울바람이지만 뭔가 청량하고 시원한 깨끗함에 혼자 슬며시 웃음 지어지는

어느 겨울밤처럼.


퇴사를 한 후 다시 취업 준비를 하기 전, '나는 어떤 삶을 살고 싶은지?'에 대해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열렬히 참여했었다. 엄마는 '네가 입시 때 그런 열정으로 공부했으면 서울대 갔겠다.'라고 했을 정도였으니 말이다. 삶의 전환점에 서 있는 기분에 나아갈 방향을 결정하기 전, 터벅터벅 걸어왔었던 발자국을 따라 삶을 거슬러 올라가 보는 시간을 가졌다.


그러던 중 내가 살던 삶의 템포를 발견할 수 있었다.

쫄보인 나는 수많은 고민 끝에 순간의 용기를 얻어 한 발자국 조심히 나아갔다가 탄력 받으면 ‘이게 맞나 봐!!’ 우다다 뛰어가다 슬라이딩으로 넘어져버린다.

그땐 ‘이게 아니었나 봐ㅜㅜ’ 엉엉 울고..

누군가의 토닥임으로 ‘그래 에이씨, 다시 해보는 거야’

툭툭 털고 일어나서 발가락부터 다시 조심히 내디뎌보는 그런 템포로 삶을 살아왔다.

언젠가 다가올 슬라이딩이 너무 아파서 일어나지 못할까 봐 실패하는 것도 너무 두려워한다.


스스로 생각이 많고 걱정도 많은 예민한 기질을 타고난 것을 너무나도 잘 알아서 관련 심리학 강의나 책들, 글귀들을 읽고 삶을 마주할 위로와 용기를 얻었던 지난날들이 주마등처럼 떠올랐다.

여태껏 강의나 책들로 위로와 공감을 얻을 수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순간적이었을 뿐, 지속 가능하진 못했던 것 같다. 이래서 사람이 가진 관성이란 게 참 무섭구나.


결국 불어나는 걱정과 감정은 ‘왜 그런 감정과 생각이 들었는지’ 마주해야 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어떤 감정이 드는 것은 그럴만한 이유가 있기 때문에!

설사 왜곡된 생각으로 인한 감정이었을지라도, 왜곡된 생각이었음을 인지하게 된다면 감정은 해소될 수 있을 것이다. 그 과정에서 날 것의 ‘나‘ 가 드러나서 견디기 힘들더라도, 이 과정이 익숙해지면 해방감이 잇따를 것이라 믿는다.


그리고, 날 것의 ‘마음‘을 알아차리고 공감해 주는 것은 나를 옭아매던 무언가에서의 해방감과 풍요로움까지 경험할 수 있는 과정이 될 것이라 생각한다.


사실 아직 나도 이 과정이 정말 익숙지 않다.

하지만 이 과정이 내재화가 된다면 그것이 내가 그리는 이상적인 ‘성공’이고 ‘행복한’ 모습일 것이다.

그래서 마음의 거품들을 걷어내고 알맹이를 보기 위한 작은 걸음을 브런치에서 한 발짝 내보려고 한다.


스스로 나약하다고 느끼는 누군가에게,

세상에 끼워 맞춰 살다 보니 자신이 누군지 잃어버린 공허함을 느끼는 누군가에게,

사랑하는 사람에게 상처를 입은 누군가에게,


드넓은 밤바다 같이 앞으로 일어날 일들이 예측 불가능하여 막막하다고 느낄지라도, 우리 인생에도 한 줄기 빛은 있겠지! 등대 불빛처럼!

스스로 내 삶에 등대지기가 되어주자. 그리고 내가 밝히는 불빛 줄기만 따라 삶을 향유해 보자!

빛의 줄기가 이리저리 방향을 틀게 되어도 괜찮아,

어차피 내가 등대지기인걸!

그럼 언젠간 꿈에 그리던 목적지에 도착해 있을 것이라 믿는다.



작가의 이전글 나는 그냥 한 없이 약해지기로 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