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이미 시각화를 하며 살고 있다.
퇴근길, 팀장이 스탠딩바에서 10분만 양주를 마시고 가자 한다.
이미 어두워진 하늘. 몇시간전 핸드폰에는 일이 생겨 아이를 픽업해 집으로 가라는 배우자의 문자가 들어왔다. 최대한 티나지 않게 업무를 빠르게 정리하고 나오려 하는데..
"차장님, 회사앞에 새로 생긴 그 커피집이요. 저녁에는 스탠딩바로 양주를 털어서 먹고 갈 수 있게 팔더라고요. 우리 10분만 팀원들이랑 먹고가죠."
빨리가기위해 내가 얼마나 노력했는데..번개를 저렇게 쉽게 말하다니..
"저.........."
거절 전조로 머뭇거리자, 눈치 빠른 팀장은 선수를 친다.
"딱 털어먹고 가시죠. 10분만 먹읍시다."
10분이라..10분이라...먼곳을 쳐다보는데, 팀장은 생각지 못한 말을 한다.
"저 그런 로망이 있었거든요. 성공한 직장인의 모습. 퇴근길에 스텐딩바에서 탁 털어서 먹고 집에 가는 그런 모습...그런데 그 커피집이 저녁에 그런곳 인것 같더라고요."
그리고 그는 이미 다른 대리들을 일으켜 세우고 있었다.
"OO야, OO야..가자..딱 10분만..."
그 말을 들은 나는 과거의 내가 떠올랐다. 나에겐 약 20년동안 나를 지배했던 어떤 명확한 장면이 두개 있었다.
하나는,
월스트리트와 같은 높은 건물 사이에서 스타벅스 밴티를 들고 출근하는, 잘 차려입은 바쁜 직장 여성의 모습. 신발은? 당연히 힐이다.
그 출처 모를 이미지는 결국 나를 금융가에서 매일 커피를 들고 출근하는 직장으로 만들었다. 아마도 대학생때 즐겨보았던 미국 드라마의 영향인듯 하다. 그 이미지가 나를 여기까지 이끌었다.
두번째는,
잘 차려입은 40대 직장이 여성의 모습니다. 단, 첫번째와 다른점은 그 여성뒤에 세네명의 젊은 직원들이 따라오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그녀의 손엔 법인카드가 들려있다.
이 장면은 각인된 순간이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바야흐로 직장 10년차 대리 정도 였을때 점심먹고 회사로 들어가는길에 마주친 어떤 여성의 모습이었다. 왜인지 모르게 그 여성이 마음에 들었고 그녀의 모습은 오래동안 내 머리속에 남아있었다.
그 두장면은 홀리듯 나의 직장생활을 이끌었다. 그 장면을 처음 보았을땐 너무나 먼 이야기 같게 느껴졌지만, 마법처럼 그 이미지는 나의 일상이 되어 있었다.
팀장은, 스탠딩바에서 양주를 마시는 직장인의 모습이 자신이 오랜시간 보았던 그 장면이라 한다.
정말 십분만 있을 요량으로 따라갔다. 누군가의 오랜 시간의 그 이미지가 현실화 되는것에 동참해주고 싶은 마음이 일어서 였다.
그곳에서 평소 까칠하기 그지없고 고맙다는 말을 생전하지 않는 그 팀장은, 로망이었으니 찍어주겠다며 독사진을 몇장 찍어 그에게 보내주자, 세상 공손하게 '고맙습니다..'라고 답했다. 평소엔 그리도 고맙다는 말에 인색하던 사람이었음에도.
실제로 그 스탠딩바에서의 자리는 13분정도로 털어먹고 파해졌다. 그리고 팀장은 정말로 행복해 했다.
나는 불현듯, 깨달았다..
사람들이 말하는 시각화라는것이 우리가 살면서 경험하고 있던 바로 그것이었다는 것을.
또한 알게 되었다. 지금 내가 자주 보는 나의 미래의 모습인 그 장면은 10년안에 나에게 올 것이라는 것을. 왜냐하면 저 두 장면 또한 그 장면을 볼때는 참 멀게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래의 내가, 내가 보는 그 장면의 내가, 나를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과거에도 그랬듯이, 앞으로도 그렇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