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의 산책

by 김민영

생각해보면, 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저 나는 딱지와 산책을 하고 싶었던 것이다. 아주 오래 전, 내가 살던 아파트에는 조금 특이한 고양이가 살고 있었다. 다름 아닌 산책하는 고양이. 주인과 함께라고는 해도 단독주택도 아닌 아파트에서 고양이가 산책을 하다니. 알고보니, 주인은 사람들이 별로 없는 한밤중을 틈타 가끔 고양이 산책을 시키는 모양이었다. 목줄을 한 고양이는 익숙한 길인 듯 느긋하게 여기저기 냄새를 맡아가며 밤마실을 즐기고 있었다.그 광경이 제법 내 뇌리에 깊이 남아 있었던가 보다.


그 무렵부터 나는 고양이도 틀림없이 산책을 좋아할 거라고 지레 믿기 시작했다. 나 혼자 만들어낸 생각이었다. 게다가 그 믿음에 그럴듯한 이유까지 덧붙였다. 개보다 야생성이 강한 동물인데 밖을 싫어할 리 없다는 것이 그 근거였다.


물론 아파트가 보편화된 지금은 상황이 사뭇 다르지만, 불과 몇십 년 전만 해도 집고양이들도 집 밖을 수시로 오가며 자신만의 비밀스럽고 자유로운 생활을 즐겼을 것이다. 그 시절에는 집안과 집밖의 경계가 지금보다 훨씬 느슨했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는 내 멋대로 딱지도 당연히 산책을 좋아할 것이라 여겨버렸다.


딱지야, 우리 바깥 나들이 한번 해 볼까?


내가 이동장을 꺼내 놓자 녀석은 병원이라도 가는 건가, 놀란 모양이다. 일단 도망부터 친다. 하지만 그 정도로 꺾일 내가 아니었다. 나는 기어이 녀석을 침대 밑에서 끌어내 이동장에 넣었다. 그리고는 선심 쓰듯이 말했다.


“네가 몰라서 그렇지, 밖에 한번 나가보면 너도 생각이 달라질걸.”


사실 아무것도 모르는 것은 바로 나였지만 말이다.


나는 이동장 속 딱지를 데리고 한 층 아래 공동정원으로 내려갔다. 햇살 좋고 푸르른 봄날이었다. 바람에 실려 꽃냄새가 향기로웠다.


이동장에 들어간 직후부터 녀석은 그냥 얼음이 되어 버렸다. 미동조차 하지 않는다. 푹신한 이끼 바닥에 이동장을 내려놓고, 나는 지퍼를 조금 열어두었다. 딱지가 주변을 파악할 시간을 주려는 의도였다.


몇 분인가 지났을 무렵 딱지는 드디어 이동장 밖으로 고개를 쏙 하고 내밀었다. 그리고는 바닥과 바로 곁의 나무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나는 왠지 녀석을 둘러싸고 있던 두꺼운 알을 깨준 것만 같아서 뿌듯한 기분마저 들었다.


나는 이동장 지퍼를 완전히 열었다. 녀석이 밖으로 나오려면 언제든 나올 수 있게 만들어 둔 것이다.


사실 나는 목줄은 따로 챙기지 않았다. 고양이용 목줄은 구하기도 힘들었고, 대신 사두었던 강아지용 목줄은 녀석과는 맞지 않았다. 사람들이 농담삼아 말하는 고양이 액체설(고양이는 관절이 부드러워 조그만 틈만 있어도 잘 빠져나간다는 것에 빗대어 고양이를 액체라고 표현한 말)을 증명이라도 하듯 딱지는 손쉽게 목줄에서 탈출했다. 다만, 우리집 아래 공동정원에는 사람이 거의 없고 한적해서 녀석이 놀라 어딘가로 도망가는 일은 없을 거라 생각했다.


잠시 기다렸더니, 마침내 녀석을 앞발을 땅에 내딛었다. 딱지로서는 처음으로 진짜 땅을 밟아보는 것이 아니었을까 생각했다. 혼자서 감격에 잠겨 있을 때, 녀석은 갑자기 후두둑 하고 전력을 다해 정원을 빠져나갔다. 얼마나 긴장했는지 녀석은 온몸을 땅에 붙이다시피 해서 기고 있었다. 돌발상황에 놀란 나는 녀석을 쫓아 뛰었다.


딱지가 도착한 곳은 바로 아파트 공동현관문 앞이었다. 딱지에게 나무, 풀, 이끼, 하늘 위로 날아다니는 새, 작은 연못 같은 것은 안중에도 없었다.


녀석에게는 더욱 중요한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딱지를 지탱하고 있던 세계가 무너지고 있었다. 녀석은 어떻게해서든 집안으로 다시 들어가려 하고 있었다. 딱지는 필사적이었다.


결국 나는 다시 녀석을 안아 이동장에 넣어서 집으로 돌아왔다. 겨우 10분 만에 산책은 막을 내렸다. 계단을 올라 우리집 현관 앞에 도착했을 때였다. 잠잠하던 이동장이 갑작스레 요동을 치기 시작했다.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자 이동장 속 딱지는 더욱 난리를 친다.


이동장 지퍼를 열자마자 딱지는 쏜살같이 이동장에서 튀어나갔다. 그리고는 스크레처를 몇 번 긁더니 자신이 좋아하는창가 자리로 가 자세를 잡는다. 산책의 여파였을까, 딱지는 그날 먹은 점심을 몽땅 토해 버렸다.



아차 싶어 고양이 산책에 대해 이런저런 내용들을 찾아보았다. 물론 고양이마다 성격이나 처한 상황이 다르니 '이것이 정답이다',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다만, 외부 자극에 민감한 고양이는 새로운 환경에서 개처럼 재미를 느끼기보다는 스트레스를 받는 경우가 더 많다고 한다.


그럼에도 과거 고양이들이 집 밖을 돌아다녔던 데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었다.

우선 사냥 본능이다. 집에서 안정적으로 먹이가 제공된다 해도 사냥 활동 자체가 주는 자극은 필요하다.

둘째는 영역 감각이다. 예전의 집고양이에게는 집뿐 아니라 그 주변까지가 자신의 영역이었고, 그 공간에 다른 고양이나 천적이 침입했는지 확인해야 안심할 수 있었다.

셋째는 번식 욕구다. 번식기에 들어선 고양이는 짝을 찾아 밖을 떠돌 수밖에 없다.


하지만 지금은 이런 이유 대부분이 사라졌다. 사료에 익숙해진 고양이들은 사냥을 하지 않는다. 사냥은 놀이의 형태로 변했다. 고양이 주인들은 집집마다 여러 개의 사냥용 장난감을 갖고 있으며, 안전한 자극을 통해 녀석들의 무료함을 달래준다. 집 안과 집 밖의 경계도 확실하게 나뉘었다. 도시의 바깥은 예측할 수 없는 위험이 가득하다. 여기저기서 불쑥 튀어나오는 자동차, 오토바이, 사람들,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수많은 소리들.

이미 집 안을 자신의 안정적인 영역으로 받아들인 고양이들은 굳이 그 위험을 무릅쓰고 순찰할 필요가 없다. 게다가 대부분의 반려묘는 중성화 수술을 받는다. 짝을 찾아 떠돌 이유도 없다.


결과적으로 딱지에게 산책은 무리였다. 나는 내 욕심으로 녀석에게 과한 것을 밀어붙인 셈이었다. '좁은 집이 얼마나 답답할까?', '그래도 가끔은 하늘도 보고, 땅도 밟아봐야 좋지 않을까?' 이 모든 생각은 "나의 생각"이었다. 딱지의 꾸짖는 소리가 들렸다.


너는 나를 정말 하나도 몰랐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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