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고양이에게는 천적이 없다. 사냥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밥때가 되면 먹을 것이 나온다. 그래서 집고양이들은 무료하다. 전문가들은 부족한 자극을 채워줘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하여 “사냥놀이”가 탄생했다. 야생의 기억이 거실이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놀이라는 형식을 빌려 재현되는 것이다.
사냥놀이 장난감은 몇 가지 종류가 있지만, 낚싯대 형태가 가장 보편적이다. 낚싯대 끝에는 고양이들을 흥분시킬 만한 것들이 달려 있다. 작은 쥐 모양 장난감이나 깃털, 방울, 반짝이는 셀로판까지. 대충 세어보니 우리 집에도 10개가량의 낚싯대가 있다. 싫증 내지 않도록 가능한 한 매번 다른 장난감으로 골라 낚싯대를 흔들어 준다. 어떤 날은 바닥을 기는 벌레가 되었다가, 어떤 날은 하늘을 나는 새가 되어야 한다.
숙련된 집사라면 해당 장난감의 성격에 맞는 움직임도 함께 구사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야 사냥놀이의 즐거움이 배가 된다. 예컨대 작은 쥐가 달려 있다면, 쥐의 습성을 모방해 낚싯대를 움직여준다. 쥐는 후미진 구석을 좋아하니, 가구 틈새나 모서리 등을 중심으로 낚싯대를 움직여야 한다.
나비나 잠자리는 다르다. 그 녀석들은 날아야 한다. 낚싯대를 높이 들어 실제 살아 있는 나비나 잠자리처럼 날게 만들어야 한다. 나비는 펄럭이면서 한창 고양이 약을 올리다가 의자나 탁자 끝에 살포시 앉아야 한다.
고양이가 사냥을 하다 다칠 우려가 있는 곳은 되도록 피한다. 고양이가 자세를 정비해 날아오르기까지 기다려주는 것도 잊으면 안 된다. 이때 집사의 손목 스냅은 정교해야 하며, 고양이의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실시간으로 파악하는 고도의 집중력이 요구된다.
이도 저도 상관없고, 그저 휙휙 거리면서 정신없이 움직이는 장난감을 좋아하는 고양이도 있다. 마찬가지로 앞발로 사냥감과 대결하는 것을 즐기는 고양이도 있다. 이런 녀석들을 위해서는 커다란 솜방망이처럼 생긴 봉이 있다. 이 봉으로 고양이들의 스파링 상대를 해주는 것이다.
하지만 어떤 방식으로 놀이를 하더라도 대미는 역시 고양이의 승리다. 놀이의 마지막, 고양이는 사냥에 성공한 승리자가 되어야 한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간식과 칭찬을 덧붙여주면 금상첨화다.
사냥놀이는 가능한 매일 빼먹지 말고, 충분히 해주라고 한다. 하지만 나로서는 3분. 길게는 5분이 한계다. 고양이나 이 놀이가 재미있지, 인간에게는 그저 막대기를 들고 내내 흔드는 지루한 행위일 뿐이니까. 내게 굳이 고르라면, 사냥놀이와 녀석의 화장실 청소 중 당연히 화장실 청소를 고를 생각이다.
나비가 되거나 쥐가 되는 것은 생각보다 고단한 일이라는 뜻이다. 반복되는 낚시질에 어깨가 뻐근해질 때쯤이면, 나는 문득 내가 고양이를 놀아주는 것인지 고양이가 나를 훈련시키는 것인지 헷갈리기 시작한다.
가끔은 낚싯대를 흔들다 말고 "딱지야, 사실 이건 가짜야. 아줌마 어깨가 너무 아픈데 이제 그만하면 안 될까?"라고 진지하게 협상을 시도해 보기도 한다. 하지만 내 속도 모르는 녀석은 초점 없는 눈으로 허공을 응시하다가, 내가 팔을 내리는 순간 다시금 솜방망이 같은 앞발로 내 종아리를 툭 친다. 게속하라는 무언의 압박이다.
내 경험상 고양이들도 몇 번 가지고 놀다 보면 어느새 반응이 영 시시해진다. 이것이 진짜 나비가 아니고 진짜 쥐가 아닌 것을 아는 눈치다. 몇 번이나 잡아서 입에 물고 흔들어 보지만, 신통한 일은 하나도 벌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반응 없는 사냥감만큼 사냥꾼을 실망하게 하는 것도 없다.
결국, 고양이는 흥미를 잃는다. 이것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일까? 간단하다. 새로운 사냥놀이 장난감을 사야 할 때가 왔다는 뜻이다. 고양이는 이제 그 장난감의 비밀을 눈치채 버렸다.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의 산문집에서 읽은 이야기 하나를 소개할까 한다.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그는 소문난 애묘가다. 잠시 미국에 체류중이던 하루키는 미국에는 고양이를 위한 비디오란 게 있다는 걸 듣게 된다. 그가 가만 있을 리 없다. 수소문 끝에 비디오를 구한 그는 고양이들에게 비디오를 틀어주고, 역시나 고양이들은 넋을 일고 화면에 빠져들었다 한다. 꽤나 한참 전의 이야기다.
지금이라면 인터넷에서 비슷한 영상을 구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 시험 삼아 ‘고양이가 좋아하는 영상’이라는 검색어로 찾아봤다. 생각보다 많은 동영상이 올라와 있었다. 새들이 짹짹대며 먹이를 쪼는 영상, 물고기가 어항 속을 헤엄치는 영상, 사냥놀이 낚싯대를 한 시간 넘게 흔드는 영상까지. 종류도 다양했다.
처음 동영상을 틀어줬을 때 딱지는 비상한 관심을 보였다. 마술이라도 일어난 것일까? 녀석은 까맣던 화면에서 갑작스레 수십 마리 새가 나타나자 매우 놀란 눈치였다. 어지간해서는 점프하지 않는 녀석이 TV가 있는 거실장 위로 몸을 날렸다. TV 화면 위로 얼굴을 들이밀며 탐색하더니 조금 뒤에는 TV 뒤쪽을 뒤지기 시작한다. 화면 뒤에 새들이 감춰져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우리는 생각보다 딱지가 영리하다며 감탄했다. 하지만 뒤를 아무리 뒤져본들 새가 있을 리 없다. 한참을 머뭇거리던 녀석은 좁은 공간이 불편한지 다시 바닥으로 내려와 목을 길게 내밀고 그냥 화면을 바라본다. 몸을 낮추고 언제든 뛰쳐나갈 준비 자세를 취한다. 하지만 그렇게 얼마나 계속할 수 있을까? 긴장이 과했는지 녀석은 십 분 정도가 넘어가자 지친 기색이다. 스크레처를 실컷 긁어 쌓인 긴장을 풀어내더니 이내 딴 일에 몰두한다. 가까이 가도 잡히지 않고, 냄새조차 나지 않는 2차원의 새들은 딱지에게 허망한 신기루에 불과했다.
영상을 두 번째 세 번째 반복할수록 반응은 눈에 띄게 약해졌다. 반복되는 화면에 질려 버린 걸 수도 있고, 가짜에 속아 넘어가지 않을 만큼의 경험이 쌓인 것인지도 모른다. 뭐가 되었든 고양이를 만족시키기란 이렇게 힘들다.
사람과의 평균 수명이 다른 만큼 시간에 대한 감각도 다른 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평균 수명을 기준으로 단순 계산하면 고양이의 하루는 대충 우리의 일주일 정도와 비슷해진다. 쉽게 싫증을 내는 것도 이런 이유라면 왠지 이해가 간다. 그들에게 5분 10분은 우리의 한 시간과 맞먹는 밀도를 가졌을지도 모른다. 그래, 같은 장난감으로 한 시간씩 놀다보면 싫증이 날만도 하지.
결국 녀석의 새로운 사냥놀이 장난감은 시간이 갈수록 계속 늘어만 간다. 물고기, 쥐, 잠자리, 나비, 깃털, 공, 깃털 달린 공, 방울 등등.
하루하루가 소중한 만큼 녀석은 매일의 장난감에 꽤 까다롭다. 서랍 하나가 오로지 녀석의 장난감으로 가득 찼지만, 정작 쓸 만한 것은 없다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볼 때면 집사의 지갑은 다시 열릴 준비를 한다.
하지만 항상 통하는 아이템이 하나 있으니, 그것은 바로 "강아지풀"이다. 실제로 고양이 장난감 중에는 강아지풀을 본떠 만든 장난감이 있다. 자주 가는 애완동물 용품점에서 강아지풀 장난감을 본 뒤, 시험 삼아 길에 무성한 강아지풀 하나를 뜯어 딱지에게 줘 봤다. 반응이 폭발적이다. 그 후 나는 강아지풀이 무성한 계절이 되면 녀석을 위해 외출했다 집에 돌아올 때 강아지풀 하나씩은 들고 오려 노력한다.
우리 아파트 근처에는 수변 공원이 있다. 여름부터 가을까지 강아지풀이라면 먼지만큼 돌멩이만큼이나 흔하다. 공원 관리 부서에서 정기적으로 풀베기를 하지만, 며칠 후면 또 어떻게 자랐나 싶게 올라와 있는 것이 바로 이 강아지풀이다.
풀은 지천으로 널렸다. 그 때문에 나는 풀을 고르는 데 신중하다. 어지간한 녀석은 성에 차지 않는다. 털 부분이 진짜 강아지 꼬리처럼 뭉실뭉실하고 손에 잡기 편하게 대가 길어야 한다. 대가 튼튼해야 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다. 길가에 쪼그리고 앉아 최상품의 강아지풀을 고르는 나의 뒷모습은 영락없는 고양이 주인을 모시는 집사다.
남들이 보기엔 그저 흔해 빠진 잡초일 뿐이겠지만, 내 눈에는 '이건 털이 너무 빈약해', '이건 대가 너무 짧아서 손맛이 안 살겠어'라며 나름의 엄격한 선별 기준이 작동한다. 가끔 운 좋게 통통하고 실한 녀석을 발견해 손에 쥐는 날에는, 마치 대단한 전리품이라도 챙긴 사냥꾼처럼 어깨가 으쓱해지기도 한다.
내 손에 들린 강아지풀을 보면 딱지는 늘 흥분 상태가 된다. 어서 놀자고 졸졸 따라다니며 재촉한다. 그래도 혹시 벌레가 붙어 있을까 싶어, 사용 전에는 물로 한 번 헹군다. 풀이라 금세 찢어질 줄 알았지만 그건 오산이었다. 딱지가 물고 뜯고 해도 한 차례 실컷 가지고 노는 데 아무 문제가 없을 만큼, 강아지풀은 생각보다 튼튼했다. 녀석은 내 선물에 감사 인사라도 하듯 온 힘을 다해 신나게 논다. 껑충껑충 뛰기도 하고 호떡 뒤집듯 몸을 뒤집기도 하면서 풀을 잡으려 안간힘을 쓴다. 인공적인 장난감이 주지 못한 생생한 풀 냄새와 촉감이 딱지의 잠들었던 야성을 아주 건강하게 일깨우는 모양이었다.
강아지풀이 싫증 날 때쯤이면, 어느새 겨울의 문턱이다. 풀은 제철을 지나 말라버리고 나도 더 이상 풀을 뽑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이듬해 딱지가 다시 심심해질 즈음 새 풀이 돋아난다.
그래, 이렇게 놀면 되지. 안 그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