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양이 중성화 2
고양이가 우리에게 온 지 두어 달이 지났을 무렵이었다. 녀석은 확연히 새 환경에 익숙해졌다. 창가에 앉아 밖을 바라보기도 하고, 자주는 아니지만 사람 곁에 와 잠을 청하기도 했다. 하지만, 겨우 이 정도로 녀석이 우리에게 완전히 마음을 주었다고 생각했다면, 겨우 이 정도로 녀석이 이 집에 완전히 적응했다고 생각했다면, 그것은 우리의 착각이었다. 녀석은 이제 겨우 정을 붙여 가려는 첫발을 뗀 것뿐이었다.
하지만 어리석은 우리는 곧장 다음 단계로 고양이를 끌고 갔다. 처음부터 여름에 수술을 시킬 작정은 아니었다. 덥고 습한 여름은 상처가 덧나기 쉽기 때문이다. 사실 2년을 기다렸는데 몇 달 더 기다린다고 그사이 뭔가 일이 생길 것 같지도 않았다. 하지만 화장실이 아닌 집 여기저기에 소변 실수를 하는 횟수가 늘자, 우리는 더 미룰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중성화가 안 된 고양이의 경우 소변으로 영역 표시하는 경우가 있다. 이를 “스프레이”라고 부른다. 사실 녀석의 소변 실수가 의도적인 스프레이인지 아니면 단순한 소변 실수인지 고양이를 처음 키우는 우리로서는 판단하기가 어려웠다. 결론을 말하자면 그것은 그저 실수였지만 당시 우리는 스프레이라고 생각했다. 이것이 수술 시기를 앞당기는 데 큰 역할을 했다. 우리는 그렇게 덜컥 수술 날짜를 예약해 버렸다.
수술은 오전 10시 반이었다. 수술 직전 8시간 이상은 금식해야 했다. 딱지는 배고플 때 외에는 거의 울지 않는다. 녀석이 야옹거리면 우리는 바로 그릇에 사료를 채워준다. 그날 아무리 울어도 사료 그릇은 비어 있었다. 어쩌면 그때부터 녀석은 뭔가 이상한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눈치챘는지도 모르겠다.
아침을 먹고 우리는 병원 갈 채비를 마쳤다. 사실 그날은 고양이가 우리 집에 온 후 세 번째로 동물병원에 가는 날이었다. 첫 번째 진료를 받던 날, 남편과 큰아이는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느라 진땀을 뺐다. 우리도 긴장했고 그 긴장감이 고스란히 고양이에게도 전달된 까닭이다.
그래도 한번 해봤던 일이라 그런지 다음번은 조금 수월했다. 큰아이 혼자서 고양이를 이동장에 넣었다. 순식간이었다. 조짐이 좋다고 생각했다. 병원에서의 10분 남짓한 수술이 끝나면 곧바로 평소의 생활로 돌아갈 것이라 기대했다.
수술 후 다섯 시간 정도 지났을까? 마취에서 깼으니 데리러 오라는 연락이 왔다. 병원에서 돌아와 이동장을 열자, 플라스틱 넥카라(상처를 핥지 못하게 목에 씌우는 보호 장치)를 한 겁먹은 딱지가 튀어나왔다. 녀석은 아직 마취가 완전히 풀리지는 않은 상태였다. 다리에 힘이 없어 기다시피, 그러나 필사적으로 녀석은 도망쳤다. 마치 처음 보는 낯선 고양이 같았다. 넥카라 때문에 시야가 좁아 집안 벽이며 가구며 수없이 부딪치면서도 계속 도망을 갔다. 그 광경이 얼마나 처참했던지 작은아이는 엉엉 울어버렸다.
녀석은 수십 번 벽에 부딪히면서 결국 우리 집에 와 처음 숨어 지냈던 세탁기 뒤로 숨어버렸다. 간단한 수술이라고만 생각했지만, 세상에 생살을 찢고 장기를 떼어내는데 간단한 수술이 도대체 어디 있을까? 어쩌면 중성화가 필요하다는 것은 다 인간의 편의를 위해서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야생의 동물을 집안으로 들여오려다 보니 이 모든 부자연스러운 일이 생겨난 것이다.
길고양이들은 보통 6년 정도를 산다고 한다. 물론 성묘가 되기까지는 수많은 시련을 뛰어넘어야 하는 만큼, 성묘가 되기 전 죽는 고양이는 더 많은 것이다. 하지만 주인을 얻어 집에서 보살핌받는 고양이들은 이제 20년 가까이도 산다. 영양이 풍부한 먹이를 먹고, 천적들에게서 보호받으며, 예방주사와 각종 치료를 통해 수명을 연장한다.
물론 그만큼 고양이들은 인간화된다. 사냥할 필요도 없고, 천적에 맞서 나무 위로 높이 뛰거나 빨리 달릴 필요도 없다. 고양이들은 점점 작고 연약해진다. 사람의 도움이 필요한 고양이가 더 귀염받는다. 발정기에 고양이가 보이는 평소와 다른 행동들도 사람 눈에는 이상행동일 뿐이다. 한두 마리면 가정에 고양이는 충분하니 더 이상의 번식은 원치 않는다. 문명화된 방식으로 야생을 길들인다.
나는 중성화 수술을 반대하지는 않는다. 당연한 말이지만 개체 수가 많다고 그 종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러 가지를 고려할 때 중성화 수술은 도시에서 고양이와 사람이 공존하기 위해 피할 수 없는 선택이다.
다만 그 일반론과 고통에 헐떡이는 고양이를 곁에서 지켜보는 것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있다. 아침까지만 해도 누구보다 건강했던 녀석이었다. 금식해서 분명 배가 고플 텐데 간식도 사료도 심지어 물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항생제 탓인지 녀석은 계속 설사다. 고양이는 어쩌다 다시 세탁실을 나와 작은아이 방으로 숨어들었다. 고양이는 그 방에서 몸조리를 했다.
녀석은 바로 앞 모래 화장실로 갈 힘도 없다. 바닥에 지린 오줌으로 방안 전체가 악취로 가득한데도 녀석은 미동조차 없다. 딱지는 그만큼 심하게 앓고 있었다. 다만 사람을 보면 기어서라도 도망간다. 뒷다리를 채 들지도 못해 질질 끌면서라도 구석으로 파고 들었다. 녀석이 고통 속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을 보며, 우리의 결정이 이 작은 생명에게 어떤 의미였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었다.
우리를 잇고 있던 실낱같던 신뢰는 이 수술을 계기로 끊어져 버렸다. 사람이든 동물이든 고통으로 신음하는 존재를 보면 누구나 안쓰러운 마음을 갖게 된다. 당시 내가 느낀 마음은 안쓰러움과 더불어 죄책감이었다. 평생 집안에서만 살 수컷인데, 호전적이기는커녕 순하디순한 겁쟁이 녀석인데 굳이 이렇게 수술을 시켜야 했나 싶었다. 내 선택으로 고통받는 존재가 눈앞에 있다. 문명이란 이름으로 내가 야만적 행동을 한 것 같아 몹시 마음이 괴로웠다.
뭔가 당장 해줄 게 없을까 싶어 애완동물 용품점으로 갔다. 플라스틱 넥카라가 상당히 불편할 거라는 직원의 말에 천으로 된 넥카라를 장바구니에 집어넣었다. 바닥에 깔 배변 패드와 목욕 티슈도 샀다. 집에 와 넥카라를 바꿔주니 한결 편해 보였다. 누워 있는 자리에 패드를 깔아주고 목욕 티슈로 오줌에 젖어 있던 털을 닦아주었다.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녀석의 곁을 지키며 회복을 기다리는 것뿐이었다. 결과적으로 녀석의 수술은 잘 마무리되었다. 상처가 아물고 몸 상태가 돌아오면서 고양이는 예전의 모습을 서서히 회복했다.
인간에게는 별일 아닌 일처럼 보일지 모르겠지만, 사실 녀석은 태어나 가장 큰 일을 치른 셈이었다. 그리고 우리는 그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봤다. 이제 이 고양이는 빈말이 아니라 진짜 우리 집 고양이가 되었다. 처음 집으로 데려왔을 때는 그저 순하고 귀여운 얼굴이 마음에 들었을 뿐이었지만, 이제 우리는 작은 산을 함께 넘은 동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