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공연을 올렸던 직장인 뮤지컬팀

파국으로 이르렀던 직장인 극단의 결말

by 설탕우유

1. 팬데믹


우연한 계기였다. 뮤지컬의 어떤 작품들이 있는지나 어떤 배우들이 유명한 지도 잘 모르던 시기였는데 유튜브에서 지킬 앤 하이드 컨프론테이션의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와 저런 장면은 어떻게 표현하고 어떤 연습과 준비가 필요한 걸까 하는 생각을 했던 것 같다. 그렇게 우리 동네 근처에는 뮤지컬 팀이 없을까 하는 생각으로 검색을 했다가 집 앞에 뮤지컬 팀이 새롭게 생겼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집에서 도보로 5분 정도 거리에 있는 연습실. 어떤 공연을 하는지 어떤 사람들을 만나게 될지 설렘과 함께 처음으로 직장인 극단에 들어간다는 기대감이 아주 컸다. 어떤 작품을 하게 될지를 기대하기보다 새로운 사람들과 공연을 위해 다시 준비한다는 사실 자체로 이미 충분히 즐거웠다.


참고용으로 가져온 대본을 리딩하고 연기하는 것만으로 충분히 재밌었고 팬데믹 시기라 연습실에 옹기종기 4명 정도의 인원이 모여서 연습하는 것도 재밌었다. 여기에 인원이 조금씩 더 추가되면서 연습 시간을 나누어 팀을 운영하다가 팬데믹 모임 규제가 좀 완화되면서 완전체의 인원들이 모일 수 있게 되었다. 공연을 준비하는 긴 시간 친해지는 사람들이 따로 생기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2. 모임 안에 모임


우리 모임은 같은 직장의 동호회가 인원이 부족하여 직장인 극단으로 나온 특이한 경우였는데 그러다 보니 단장부터 이미 팀 내에 있던 많은 인원들이 같은 직장의 사람들이었다. 이 사람들은 공연에 능동적으로 참여하고 있다기보다는 소극적이고 수동적이라는 인상을 주었는데 그러다 보니 처음에 같은 팀원으로 친해지기에 어려움이 있었다.


반면 나를 포함한 외부에서 이 팀으로 합류하게 되었던 사람들은 따로 술자리와 모임을 만들어가며 친해질 수 있었는데 그러다 보니 모임 안에서 다른 모임들이 따로따로 움직이고 있었다. 약 반년의 시간을 지내왔던 사람들이었지만 공연이 한 달이 남아서야 서로가 편하게 이름을 부르고 챙겨주는 사이가 되었기에 친해지기 위해 필요했던 시간이 제법 오래 걸렸던 것이 사실이었다.


함께 친해진 계기도 별 일은 아니었다. 직장에서 함께 오고 있던 사람들의 생일을 축하한다며 챙기고 연습실에서 작은 파티처럼 분위기를 바꾸어 놓았는데 이 부분이 그 직장인 분들에게 큰 인상을 남겼던 것 같다. 이후로 우리와 함께 자연스럽게 모이거나 우리를 집에 초대하기도 하면서 확실한 벽을 무너뜨리게 되었다. 지금도 팀에서 가장 잘한 일은 그때의 생일 축하를 주도했던 일이 아니었나라고 생각한다.


stage-curtain-660078_1280.jpg 무대의 커튼 뒤에서는 사실 수많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사진 : 픽사베이



3. 두 번의 공연 그리고 탈퇴까지


이 공연 팀에 소속되어 1년 반 정도의 시간을 함께 했던 것 같다. 대극장 공연을 하나 마치고 갈라쇼를 통해서 두 번의 공연을 만족스럽게 끝낸 시점에 나와 친하게 지내던 몇 사람들과 극단 사람들은 멀어지고 있었는데 나와 자주 만나서 놀고 있던 친구가 팀 내에서 트러블메이커로 각인되었기 때문이었다. 문제는 나도 항상 그 친구와 함께 놀고 있었기 때문에 이 분위기를 감지하고 우리가 팀을 나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었다.


다만 팀 내에서도 그 트러블메이커를 제명시키기 위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그렇게 되었을 때 나를 비롯한 몇 친구들이 함께 빠져나갈 것으로 예상하고 있었다고 했다. 하지만 정작 트러블메이커였던 그 친구와 나 사이에도 트러블이 생기면서 그 친구는 팀에서 혼자 나가게 되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 역시 팀에서 나오게 되었다.


내가 나왔던 이유는 팀에서 따로 소극장 공연 하나를 연출을 맡아 적은 인원들을 데리고 공연을 올렸는데 당시에 단장이 도와준다는 이유로 우리 팀을 도와주던 스태프 친구에게 성추행을 했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듣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이후에 친해졌던 극단 내 직장 사람들도 그 사람이 직장에서도 직급과 위치가 높다 보니 오히려 피해자 쪽이 그만두고 내부징계 없이 쉬쉬하는 분위기로 넘어갔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내가 극단생활을 하면서 친해졌던 여자애들이 가끔씩 불편함을 이야기했던 것이 스쳐 지나갔다.


난 그렇게 첫 직장인 극단에서 개인 사정이 있다고 말하고 팀에서 탈퇴하게 되었다.



4. 첫 직장인 극단에서 배운 것들


단장은 내가 탈퇴한 이후에도 똑같은 문제로 팀 내에서 문제가 불거져 결국 남아있던 단원들이 문제 제기를 하자 팀을 해체하는 방향으로 결정이 되었다고 했다. 지금까지도 그때의 문제를 공론화시키지 못한 것에 대한 내 개인적인 후회가 남아있지만 결국 이렇게 될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반면 내 개인적인 반성도 자연스럽게 따라왔다. 내가 친해진 사람들과의 삶을 우선으로 챙기다 보니 내 주변 사람들과의 관계를 포함하여 직장 생활에서도 지장이 갈 정도였으니 기본적인 생활들이 완전히 무너졌는데 일주일에 적어도 3번은 모여 늦은 시간까지 술을 마시고 있었고 급격하게 건강을 챙기지 못하고 무너진 것과 함께 그만큼 나가는 돈도 많아지고 있었다.


첫 극단에서 함께해서 나 스스로 만족스러울 정도의 공연을 올리고 좋은 사람들을 만나는 더없이 행복한 시간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 찾아온 후폭풍은 지금까지도 다 감당해내지 못했다. 나는 나를 충분히 제어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었고 관리하고 있다고 믿었으나 인간관계도 나의 몸도 시간도 통장도 그 어느 것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한 사람이었다.


어쩌면 이때의 가장 큰 교훈은 내가 관리해야 할 것들이 무엇이었으며 버려온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독한 방식으로 깨달았다는 것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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