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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 참가

쓰기가 좋은 걸 어떡해

by 소민

세상의 모든 첫걸음은 보잘것없어 보인다. 그러나 첫걸음을 떼지 않으면 아무것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 쓰기의 쓸모 / 양지영



글을 쓰지 않고는 못 견딜 만큼 쓰기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인 브런치 공간이라 이제야 말할 용기가 생긴다.

글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걸까? 책을 낸다는 건 전문 작가에게만 허용된 일인 걸까?

처음 나의 글쓰기 가능성을 알게 된 건 초등학교 5학년 때였다. 그때 나는 한 반에 2~3명씩 있는 흔한 이름을 가지고 있었고, 지극히 평범한 외모에, 성격도 튀지 않고, 성적도 중상위권 정도인 그저 그런 여학생 중 하나였다. 속으로는 남들 앞에 나를 보이고 싶은 마음이 가득했지만 넉살이 좋지도 않고 자신감도 없어 늘 뒤에 서성이는 조연 1에 불과했다.

그런 나에게 6.25 기념 글짓기 교내 대회에서 1등을 하는 일이 생겼었다. 이 대회에서 1등을 하면 학교 대표로 전국 글짓기 대회를 나가게 됐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별것 아닐 수 있는 이 경험이 나에게는 마치 내 안의 나를 발견하는 충격적인 사건이었던 것 같다.

전국대회에서는 장려상이라는 작은 상을 탔지만 처음으로 교장 선생님 앞에서 상도 받아보고 내 11년 인생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내 기억 속에 각인된 처음으로 내가 자랑스러운 순간이었다.

이후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글쓰기와 다시 마주할 일은 없었지만 성인이 된 후 국어 관련 직업을 갖게 된 걸 보면 글을 좋아하는 마음은 항상 어딘가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다시 글을 만나게 된 건 30대 초반에 간 템플스테이에서였다. 민원과 직장 스트레스로 못 견디게 힘들었던 시기였고 힘듦을 내려놓을 곳이 필요했다. 안 그러면 이 직업을 놓거나 나를 놓을 것 같았기 때문에. 그래서 혼자 한 시간 반을 버스를 타고 충남 공주 갑사로 향했다. 혼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스님이 알려주신 산책로를 걷고, 새벽 4시에 일어나 불공을 드리고 낮에는 108배 염주를 만들며 조금씩 심신을 회복했다. 좀 살만했기 때문일까 그때 내가 머무르던 방에는 <템플스테이 10주년 글쓰기 공모전> 안내문이 붙어있었는데 왠지 그날의 경험을 글로 남기고 싶은 마음이 치고 올라왔다.

결과는 장려상. 이번에도 큰 상은 아니었지만 20년 전 내가 나를 발견했던 것처럼 이번에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건 어쩌면 글쓰기가 아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날 이후 나태주, 이슬아, 박서련 작가 등 작가들의 강연에 참석하며 작가의 꿈에 다가가보려 했고, 네이버에 '공모전'이라고 치면 제일 먼저 뜨는 '위비티'라는 사이트에 내가 나갈 만한 공모전이 있는지 살펴보는 게 삶의 일부가 됐다.

문학동네, 창비 등 큰 대회는 아직 자신이 없었고 어떻게 시나 소설을 써야 할지 막막했기에 지역에서 하는 독후감, 에세이 쓰기, 시 창작 등 작은 공모전에 먼저 도전했다. 4~5개 나가면 1~2개 정도 상을 받았는데, 떨어져도 어떤 글이 좋은 글로 뽑히는지 배워가는 과정이라 생각하며 자존감을 채워가는 삶을 1년 정도 지속해 왔다.

그리고 나의 글쓰기 삶을 완전히 바꿔놓을 일을 마주하게 된다.

내면과 치유를 주제로 하는 한 유명 작가의 강연에 참석했을 때였다. 운 좋게도 강연 후반에 지원자에 한해서 글을 피드백해 주겠다고 하기에 나는 망설임 없이 위에 썼던 내가 작가라는 꿈을 꾸게 된 계기와 앞으로 작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겠다는 내용의 글을 써 내려갔다.

하지만 이때 치명적인 실수를 하게 된다. 라디오 스타에서 배우 류승수가 말한 "아무도 나를 모르고 돈이 많았으면 좋겠어요."라는 말을 인용했었는데, 의도는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다는 포부를 밝힌 거였으나 유명 작가에게는 매우 거슬리는 부분이었던 것 같다.

강연을 듣던 사람들 앞에서 내 글을 읽어가며 '운 좋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대회에서 상을 타게 되신 것 같은데, 전문 작가들이랑 붙으면 안 될 거예요.'라는 내용의 피드백을 아주 세게 받았고(워딩이 매우 셌다), 작은 공모전에 참가하지 말고 큰 공모전 하나에 집중하라고 했다.
그때의 말투와 표정. 누군가에게 비웃음과 무시를 당한 건 거의 없는 경험이었기에 아주 큰 충격을 받았었다. 더구나 아주 따뜻하게 글을 쓰던 작가에게 그 말을 들으니 충격은 2배였다. 글을 따뜻하게 쓰는 사람은 실제로도 따뜻하다고 착각했기 때문에.
주변 사람들은 그래도 글을 쓰고 공모전에 내는 실천력이 대단하다고 생각한다고 위로해 주었으나 그날 이후로 나는 작은 공모전에 참가하는 것도 끊게 되었다.

그리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정말 내가 떼돈을 벌기 위해서 글을 쓰려고 한 것인지, 남에게 인정받는 게 즐거워서 글을 쓰려고 한 것인지.

결론은 둘 다 맞기도 하고 둘 다 아니기도 했다.

돈은 나의 본업에 집중할 때 더 많은 이익을 얻을 수 있었고 실제로 작은 공모전에 참가하면 문화상품권이나 원고료 정도의 소정의 상품만 받았을 뿐 큰돈은 벌지 못했다. 공모전을 고르는 기준은 '내가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주제인가?' 딱 하나였다. 하지만 내 책이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고 팔리길 원하는 마음도 있기 때문에 떼돈을 벌 마음이 전혀 없다고는 할 수는 없다.

또 나는 남에게 인정받는 게 즐거워서 글을 쓰는 건가? 브런치에 글을 쓰면서 누군가 내 글에 댓글을 달고 하트를 눌러 주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처음 브런치 합격 소식을 메일로 받았을 때 "작가"라는 호칭에 심장이 두근거렸던 것 보면 인정받는 것이 글을 쓰게 하는 원동력이기도 하다. 하지만 인정받지 않더라도 매주 글을 쓰고 어딘가 내 얘기를 자꾸 하고 싶은 걸 보면 인정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1년 전 그 강연을 들은 후 글쓰기에 관해 굉장히 방황했었다.
작가가 될 자질이 있는 사람인지, 큰 공모전 하나만 목표를 두고 해야 하는 건지, 애초에 나는 글을 써도 되는 사람인지.

그래서 한동안 아무 글도 쓰지 않았었는데 어느 순간 화가 났다.
내 글이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것도 아닌데 왜 쓰면 안 되나.
작은 공모전에 참가하는 사람들의 글도 충분히 훌륭한 글인데 작은 공모전들을 왜 무시하는 건가.
박완서 작가도 40대에 데뷔했는데 그보다 어린 내가 지금부터 배워서 작가도 데뷔하면 되지 않나.
설령 내 글을 출간하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렇게 쓰는 행위 자체가 의미 있는 것은 아닌가.

이렇게 생각이 정리되고 나니 다시 뭐라고 쓰고 싶은 의욕이 마구마구 들었다. 때마침 직장 동료가 '카카오브런치'를 알려주었고, 양지영 작가의 <쓰기의 쓸모>를 읽으며 글 쓰는 재미를 다시 찾아가고 있다.

쓰기의 쓸모와 가치, 재미를 아는 것.
이것만으로도 얼마나 삶이 풍요롭고 설레는가.
부족하더라도 더 나아지는 나 자신을 알아가는 게 삶의 재미가 아닐까.
남에게 피해를 주는 게 아니라면 뭐든지 도전할 가치가 충분하다.
반드시 생산성이 있고 1등으로 성공해야만 의미가 있는 건 아니니까.

브런치 공간에서 자기 글을 나눠주는 사람들의 글을 보며 많이 배우고 쓰려는 마음을 붙든다. 이런 마음을 담아 내 브런치북 <사는 게 너무 재밌잖아>에서 기죽지 말고 좋은 글 쓰자는 이 이야기를 꼭 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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