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과적으로 독서하는 방법.
남의 바르지 못한 점을 탓하지 말라.
남이 무엇을 하든 참견 말라.
다만 내가 무엇을 하고 무엇을 하지 말아야 할 것인가만을 생각하라. / 법구경
필사 : 베끼어 씀.
책을 씹고 뜯고 맛보고 감상하는 방법은 수도 없다.
묵독, 발췌독, 소리 내어 읽기, 책 대화하기, 책 토론하기, 뒷 이야기 이어 쓰기, 책 패러디해 보기, 오디오북 듣기, 책이 원작인 영화 보기 등.
그중 매일 해도 부담 없고 효과적이었던 필사에 대해 이야기해보고자 한다.
처음 필사를 시작한 건 말도 안 되는 민원으로 분노가 기본템으로 장착될 시기였다.
맞서서 싸우는 방법도 있었지만 사회 초년생으로서 그 방법은 뒷감당을 할 수 없었고 어차피 말도 안 되는 민원을 넣는 사람과 그걸 묵인하는 상사와 관리자에게는 대응을 해봤자 소용이 없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이 열받음을 대체 어찌할 것인가.
이러다간 내가 내 분노에 태워지겠다 싶을 때쯤 인터넷에서 떠도는 법구경의 구절들을 보았다.
"선한 열매가 맺히지 전에는 선한 이도 이따금 화를 만난다. 그러나 선의 열매가 익었을 때 선한 사람은 복을 받는다."
"남의 허물을 보지 말라. 남이 했건 말았건 상관하지 말라. 다만 내 자신이 저지른 허물과 게으름만을 보라."
그래. 그 말 통하지 않는 사람들과 뭔 소리를 떠들겠는가. 무교임에도 '그래 이건 그냥 수행이야. 어차피 지나가.'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후로 분노가 일어날 때에는 법구경을 필사하며 마음을 다졌다.
이걸로 근본적인 문제가 사라지거나 아예 마음이 해소된 것은 아니었지만 두통이 올 때 타이레놀 먹는 것처럼 한결 나아짐을 느꼈다.
주변 동료들은 얼마나 열받았으면 저러겠냐고 불쌍해했는데, 아마 그때 그 말들을 되새기지 않았다면 스트레스로 또 원형 탈모가 왔을 것이다.
종교에 상관없이 자신의 마음을 흔드는 글이 있다면 꾹꾹 눌러쓰며 상처 난 마음을 동여매보자.
책을 읽고 나서 시간이 좀 지나면 '좋았다.' 또는 '별로였다.'의 어렴풋한 느낌만 남아있을 뿐 책의 줄거리가 뭐였는지, 결말이 뭐였는지, 인물의 이름이 뭐였는지도 생각나지 않을 때가 있다.
심지어는 책을 읽었는데 그걸 새카맣게 까먹고 책을 또 읽은 적도 있다.
특히 시집을 읽을 때 이런 적이 많았는데, 어떻게 하면 책을 오랫동안 체득화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필사를 하기로 했다.
처음에는 법구경 필사때와 마찬가지로 종이에 옮겨 적었다.
물론 그냥 읽을 때보다는 훨씬 낫지만 기억이 나지만 무언가가 부족했다.
밖에서 종이를 꺼내 자유롭게 쓸 수 없었고 괜히 글씨체가 맘에 안 들어 다시 들여다보지 않게 되었다.
그래서 선택한 방법은 독서 어플에 기록을 남기는 것이었다.
여러 가지 독서 어플이 있지만 나는 '북모리'라는 어플을 쓴다.
사용법이 간단해서인데 손으로 쓱쓱 쓰는 맛은 없지만 언제 어디서든 쉽게 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한 가지 팁은 타이핑을 치지 말고 음성을 자판으로 변환해 주는 기능을 사용하면 책의 구절을 더욱 음미하며 기록할 수 있다.
갤럭시 자판 하단에 보면 마이크 모양이 있는데 그걸 누르고 말을 하면 내용이 그대로 기록된다.
긴 구절을 치기 힘들어서 이 방법을 써봤는데 책을 눈으로 읽거나 손으로 쓰거나 할 때보다 말할 때 책의 감동이 더 색다르게 다가온다.
아름다운 구절은 더 아름답게 느껴지고, 인물의 대사는 인물의 감정이 섬세히 느껴지는 듯하다. 특히 시 구절이나 묘사를 말로 표현해 보면 평소 쓰지 않는 단어를 내뱉을 때의 묘한 쾌감이 온다.
필사 아래에 내 감상을 댓글로 덧붙이면 책을 읽었을 당시에 '나'에 대해서도 알 수 있다.
마지막으로 좋아하는 소설을 통으로 필사해 보자.
강연에서 만난 소설 작가님이 알려주신 방법으로, 처음 소설을 쓰기 시작했을 때 여러 작가의 글을 필사하며 작법을 익혔다고 하셨다.
매일 한 두 페이지씩 따라 쓰다 보면 좋아하는 작가의 문체가 어느새 내 손끝에 저장되어 있다가 내 글을 쓸 때 다시 되살아난다.
모방이 창조의 어머니라는 말처럼 이럴 때 어떻게 글을 써야 할지를 알 수 있고, 내 의도에 맞는 글을 쓰게 되니 필사 전후 자신의 글을 비교해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
쓰고 싶은 사람은 많지만 읽고 싶어 하는 사람이 없어 문제라는 요즘 세태에서 필사는 읽기와 쓰기를 모두 만족할 수 있는 최고의 방안이라 자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