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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pr 24. 2023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5

5일 차  정신과 시간의 방

5일 차 

몸무게 70.4 kg, 체지방율 17.9%

(몸무게 3.8kg, 체지방 2.6% 감소)


몸무게가 줄어드는 페이스가 느려졌다. 0.4kg만 빠졌다. 

근육보다 상대적으로 가벼운 지방이 빠지고 있는 듯하다. 어제보다 지방 뱃살이 확연히 더 줄어들었다. 

잠이 잘 왔고 일찍 깨었다. 몸이 가볍고 정신이 맑다. 

책 읽기 좋은 컨디션이다. 


삼시 세 끼를 안 먹으니 시간이 참 많아진 느낌이다. 


하긴, 우리는 먹는데 참 많은 시간을 보낸다. 

장을 보고 밥을 짓고 밥을 차리고 밥을 먹고 설거지를 하고.. 

그리고 보통사람은 이 작업을 하루에 세 번씩이나 반복한다. (갑자기 엄마가 보고 싶다..)

삼시 세 끼를 사 먹는 사람들도 끼니당 적어도 30분 이상을 먹는 데 사용한다. 


이쯤 되니 사람은 살기 위해 먹는 것인가, 먹기 위해 사는 것인가 같은 철학적인 질문까지 떠오를 지경이다. 

갑자기 없던 시간이 생기다 보니 처음에는 사실 당황스럽기까지 했다. 시간이 많아진 데다가 배고픔 때문에 시간도 더디게 흘러서 하루가 너무너무 길게 느껴졌다. 


마치 드래곤볼의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온 느낌이다. 




요새 극장가에 일본 애니메이션 흥행이 한창이다.  

내 학창 시절 땐 일본 코믹북이 거의 유일한 문화생활이었는데, 특히 슬램덩크와 드래곤볼이 양대 산맥이자 그 시대를 살아온 수컷들의 성배로 추앙받는다.


앞서 말한 정신과 시간의 방은 드래곤볼에서 등장하는 장소인데, 그 방 안에 들어가면 시간왜곡 현상이 일어난다. 잠깐 설명하자면 바깥세상에서의 하루와 그 방의 1년은 같다. 다시 말해 안에서 1년을 머무르고 방을 나와도 현실에서는 하루만 지나있는 것이다. 또한 무공 훈련을 위한 방이다 보니 내부여건이 만만치 않은데, 중력이 지구의 10배이고 공기도 희박하며 먹을 것도 충분치가 않다. 


이 콘셉트를 처음 접했을 때 작가의 놀라운 상상력에 무릎을 탁 치며 감탄할 수밖에 없었고, 이내 나의 공상(쓸데없는 생각)의 나래에 기초를 마련해 주었다. 특히 시험기간에 벼락치기를 할 때면 그 공상이 더욱 간절해지면서 정신과 시간의 방이 있었으면 바라봤다. 이후에는 어른이나 상사가 잔소리를 길게 늘어놓을 때, 마치 정신과 시간의 방에 들어온 것 같다고 말하는 밈이 유행하기도 했다.

  

아무튼 시간이 많아지니 뭔가 할 거리를 찾게 되었다. 이 에세이를 쓰는 것도 그 일환이다. 

그런데 책이라도 읽을라치면 머리를 너무 많이 쓰게 되어서 배가 더 고파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유산소 운동을 많이 하라길래 산책을 했더니 배가 더 고파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그래서 유튜브나 보면서 시간을 때우려 했더니 알고리즘이 먹방으로 인도하는 바람에 배가 더 고파지는 부작용이 있었다. 


손오공과 오반이 당장 다음날 셀과의 대결을 앞두고 정신과 시간의 방에서 1년간의 혹독한 수련을 참았던 것처럼, 나도 지금 그 방에 들아와 있다. 그들 부자도 당장 방을 뛰쳐 나가고 싶은 유혹에도 불구하고 이윽고 1년을 참아냈던 것은, 그들의 몸과 실력을 완성시키기 위해서 였다.  




배고프다. 

매 순간 배고픔이 10배의 중력과 같은 고통으로 다가온다. 


그러나 안다. 

제대로 몸이 완성되어야 이 방을 나갈 수 있다는 사실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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