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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pr 22. 2023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4

4일 차  사람들은 너에게 관심이 없다.

4일 차

몸무게 70.8 kg, 체지방율 18.3%

(몸무게 3.4kg, 체지방 2.2%감소)


몸무게가 어제 대비 0.8kg 감소했다. 감소폭은 줄었지만 외형적인 변화는 확연해 보인다.

아랫배가 상당히 감소했고 얼굴이 홀쭉해진 것이 보인다. 그러나 위장은 여전히 불편하다.


주말이 지나 월요일이다.

이제부터는 사무실에 나와서 일을 하면서 단식의 고행을 이어나가야 한다.


우리 사무실 직원들 다 합쳐봐야 6-7명이 채 안되다 보니 점심을 항상 같이 먹는다.

하루에 30분씩 몇 년 동안 점심식사를 같이 하다 보니 대화 주제가 고갈되었고, 그러다 보니 직원 하나하나 가정사, 연애사, 심지어 흑역사까지 세세하게 다 털리게 된다.


나의 단식계획은 지난 주간 점심시간 내내 핫이슈였다.

큰누나가 단식을 시작했던 이유부터 시작해서 단식원의 역사까지 장황한 프레젠테이션을 마쳤다.  사장님은 생각보다 긴 기간을 염려하면서도 은근 다이어트 효과에 관심을 보이곤 했다. 나머지 동료 직원들은 걱정반 의심반 흥미로운 반응을 보이는 듯했다.


그런데 월요일이 된 오늘, 그들은 이미 내 상황을 까맣게 잊고 있었다.

점심시간이 돼서도 나갈 준비를 안 하고 앉아있는 날더러 왜 안 나가시냐고 되묻기도 했다. 내가 토요일부터 단식을 시작했다면, 백번 양보해서 주말사이에 까먹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을 거다. 그런데 금요일에 단식 첫날이라고 그 난리를 쳤었잖아..? 너희들 정말 이러기야?


단식 4일째 아니세요? 주말에 괜찮으셨어요? 배 안 고프세요? 기억해 주고 말한마디 해주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건가..?


나는 한번 더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

사람들은 주변에 별 관심이 없고, 내가 광화문 광장에서 바지 벗고 뒷구르기를 한들 신경 쓰지 않는다.

 



대학 때 학생회 활동을 하면서 겪은 일이다.

학생회 멤버들은 무리 앞에 서서 공지사항을 발표해야 할 일이 많다. 어느 날 여느 때처럼 공지사항을 발표하던 중 본의 아니게 특정 동아리를 저격하는 발언을 했었다. 당시 내가 2학년이었는데, 분명 실수로 한 말이지만 그 여파는 상당했고 그 동아리 4학년 선배들이 나를 벼르고 있다는 둥 흉흉한 소문이 돌았다.

 

나는 공식적으로 사과하고 싶었지만 기회가 없었고 시간만 흘렀다.

그 후에 잠잠해졌지만 불편하고 찜찜한 마음이 가시지 않았다.  그 동아리에 속해있는 대학 동기가 있었지만 그다지 친하지 않았기 때문에 말 붙이고 사과하기도 좀 그랬다. 그러나 그 일이 있은 이후에 그 동기가 나에 대해서 안 좋은 감정을 가진 것은 분명해 보였다. 마주쳐 지나갈 때마다 인상을 썼었고 약간 불쾌한 감정을 드러내고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은 더 흘러서 4학년 졸업반이 되었다.

우연히 식당에서 그 동기와 내가 옆테이블에 앉아서 밥을 먹게 되었다. 주변에 다른 사람들이 없고 둘만 홀로 앉아있었기 때문에 대화하기에 나쁘지 않았다. 나는 용기 내어 그 친구에게 2년 전에 있었던 일을 설명하고 늦었지만 용서를 구했다.


그런데 돌아온 반응은 나를 황당하게 만들었다.  


그 친구는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도 몰랐고, 알았다 한들 2년 전의 일을 어떻게 기억하냐고 되물었다.

결정적으로 그는 나의 존재에 대해 잘 알지도 못했는데, 갑자기 말을 붙여서 놀랬다고 이야기했다.


그랬다.

내가 한 실수는 대단한 일도 아니었고 2년 넘게 기억에 남을만한 핫이슈도 아니었다.

하긴 일주일 전 헤드라인 뉴스도 기억 못 하는데 2년 전에 듣보잡이 한 말을 뭣하러 기억하고 있겠는가?

나는 그 동아리 멤버들에게는 물론 대학교 내에서도 존재감 없는 존재였고, 아웃 오브 안중이었다. 마주쳐 지나갈 때 그 동기는 불쾌한 감정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그냥 평소 인상이 더러웠을 뿐이었다.   




나는 연예인이 아니다.

직장 동료들에게 나는 특별한 사람이 아니며 그들은 나에게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

그들이 내 행동, 내 말투, 내 옷차림에 신경 쓰지 않듯이, 내가 밥을 먹는지 안 먹는지는 기억할 만큼 중요한 일이 아니고 그들의 관심 밖의 이벤트이다.



남들이 신경 쓸까 봐 신경 쓰는 사람은 오로지 나 자신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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