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제이슨 Apr 21. 2023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3

3일 차  성시경의 순댓국집

3일 차 

몸무게 71.6 kg, 체지방율 18.4%

(2.6kg, 체지방 18.4% 감소)


3일 차가 되니 확실히 폭풍이 덜했다. 그리고 그 자리에 소나기가 내리기 시작했다. 

열대지방 스콜처럼, 한여름의 소나기처럼 솨~하고 쏟아졌다. 


몸무게가 또다시 1.2kg 줄었다. 첫날 1.4kg 줄어든 것에 비해서 감소폭이 적어졌지만, 이런 추세라면.. 나중엔 정말 뼈만 남겠다 싶다.   


그리고 배고픔의 정도가 날이 갈수록 더해졌다. 

효소가 허기짐을 달래주긴 했지만 그 욕구마저 잠재우진 못했다. 


보통 가족이 있으면 구성원들이 다 같이 단식을 한다.  

식구 한 명이 단식을 하고 있는데, 남은 가족이 음식을 차려먹기가 눈치 보이기도 하고 미안하기도 해서이다. 

그래도 남은 식구들은 먹고살아야 하니 어쩔 수 없다. 


아내도 처음에는 어쩔 줄 몰라했다. 

금요일에는 내가 직장에 있는 동안 식사를 해결했으나, 주말에는 하루종일 붙어있다 보니 곤란스러웠다. 그러나 사람은 적응의 동물이 아니던가. 오늘 점심에 와이프는 명란 묵은지 닭가슴살 볶음밥을 만들었고 야무지게 먹었다. 


와이프가 먹고 있는 모습을 직관했는데, 실상 그렇게 많이 힘들지는 않았다. 

오히려 먹는 모습을 보니 대리만족이 되었다. 그래서 그 시간 이후로 두 시간 동안 먹방을 봤다. 

예전에 알고리즘이 맺어준 수많은 먹방 유투버들이 즐겨찾기 목록에서 여전히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먹방이 최고 인기였던 시절은 지났다. 

그 사이 먹방의 트렌드는 일반인이 얼마나 많이 먹느냐에서 연예인들이 어떤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먹느냐로 이동해 오더니 이제는 사람이 얼마나 적게 먹고 사는지를 보여주는 소식 콘텐츠도 인기를 누리고 있다. 


최근까지 한창 봤던 먹방은 '성시경의 먹을 텐데'이다. 

미식가이자 요리에도 일가견이 있는 그가 서울 토박이로써 맛집을 소개하면 왠지 모르게 신뢰가 갔다. 

특히 대부분이 본인의 단골집인데, 대개 촬영을 허락하지 않는 집까지 기어코 뚫어내는 그의 친화력이 인상적이다. 그러나 단점은 일단 성시경 유튜브에 소개되면 그 식당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집이 되므로 그림의 떡이 된다.  


일례로 광화문에 있는 화 X순댓국은 본래 유명한 집이었지만, 성시경이 여의도 본점을 소개한 뒤로 덩달아 대박이 났다. 다른 순댓국에 비해 알곱창이 많이 들어있어서 특이하고 특별하다. 이 집은 6시에 문을 열고 9시 30분부터 11시까지 브레이크가 있다. 점심시간은 11시 오픈 이전부터 대기가 있고 2시까지 줄을 계속 서있기 때문에 도저히 엄두를 못 낸다. 그나마 출근하자마자 9시쯤 가면 줄 없이 라스트 오더로 식사를 할 수 있다.  


2022년 월드컵 당시 한국과 브라질의 16강 경기가 한국시간으로 새벽 4시에 시작했었다. 

카타르 월드컵은 지역특성 때문에 겨울에 개최된 첫 번째 월드컵으로 기록되었다. 그래서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광화문 길거리 응원을 하는데 두꺼운 패딩을 입고 모인 붉은 악마들의 모습이 어색하게 느껴졌었다. 


중요한 것은 꺾이지 않는 마음이라는 명언을 남기며 우리의 월드컵은 막을 내렸다. 

그 겨울날 광화문에서 밤새 목이 터져라 응원했던 붉은 악마들이 그 새벽에 어디로 갔을까?


나는 그날 아침 9시쯤 회의를 마치고 순댓국집에 갔었다.  

평소와는 다르게 한바탕 폭풍이 몰아친 듯 가게 직원들이 모두 기진맥진해 있었고 식탁에는 미처 치우지 못한 그릇들과 소주병들이 널브러져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간까지도 어린 친구들이 빨간 티를 입고 삼삼오오 앉아있었는데 하나같이 만취해 있었다. 


아.. 그랬구나, 너희들의 젊음이 부럽다.   

그들이 그날 새벽에 추위에 떨다가 한 숟갈 씁~하며 들이킨 순댓국은 평생 잊지 못할 맛이었을 것이다. 


내가 단식을 마치는 그날에 먹을 화X순대국도 그럴 것이다. 


이전 04화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2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