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일 차 곡괭이와 흰 드레스
[6일 차 곡괭이와 흰 드레스]
몸무게 69.9 kg, 체지방율 17.9%
(몸무게 4.3kg, 체지방 2.6% 감소)
어제보다 0.5kg 더 감량되었다. 몸은 한결 가볍고 머리가 어제보다 더 청명해진 느낌이다.
계속 더 청명해지니 어디까지 더 청명해질 수 있을까 싶다. 그런데 위장은 아직 좀 쓰리다.
드디어 60kg 대에 진입했다.
30대 초 신혼 이후 거의 9년 만이다.
특히 아랫배가 많이 들어갔는데, 몸이 내장의 지방을 점점 더 많이 태워 쓰는 것 같다.
아내와 결혼 전, 그러니까 20대 후반에 호주 시드니 근교의 한 캠프 같은 시설에서 수십 명이 함께 숙식하며 지냈었는데, 그곳은 숲이 우거지고 살기 좋은 시골마을이었다. 숲 한가운데 캠프가 있다 보니 도로정비, 배관공사를 비롯해서 나무를 베는 평탄화 작업 등 이런저런 보수공사가 많았다.
하필 내가 시설보수일을 도맡아 하다 보니 매일 밖에서 땀 흘리며 일했고 호주의 따가운 햇빛 때문에 내내 검게 그을려 있었다. 돌이켜보면 그때가 내 인생에 가장 건강한 시기였던 것 같다. 특히 도끼질이나 곡괭이, 해머질을 많이 했다.(단언컨대 전신 운동에 이만한 것이 없다.)
당시에 키 178cm, 65kg 대 몸무게면 정말 호리호리한 체형인데, 이런 내려치는 반복작업 때문에 잔근육이 많이 발달했었다. 한 번씩 와이프도 평탄화 작업에 참여하곤 했는데, (당시에는 사귀기 전이었다) 건강하고 성실하게 일하는 내 모습에 처음 호감이 생겼고 특히 곡괭이질 하는 모습이 섹시했다고 했다. 그래서 지금의 늙수그레하고 아저씨 같은 내 모습을 보며 한탄하면서도 그 시절 그 모습을 종종 이야기하곤 한다.
나도 그 당시에 아내에게 호감을 느끼게 된 이유를 떠올려보면, 그녀의 발랄하고 톡톡 튀는 매력 때문이었던 것 같다. 좀 과묵하고 말주변이 없는 나와 달리, 누구와도 거침없이 대화하고 언변이 화려했던 그녀에게 동경심을 느끼곤 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내가 그녀와 사랑에 빠지게 된 순간은 따로 있었다.
그 캠프에서는 봄과 가을에 한 번씩 축제가 열렸었다.
평상시에는 맨얼굴에 청바지 차림으로 지냈었지만 그날만큼은 모두 안입던 정장과 드레스를 꺼내서 차려입고 한껏 멋을 뽐냈다. 패션디자인과 출신으로서 지금도 남다른 패션감각을 자랑하는 와이프는, 그날 그녀가 이제껏 숨겨왔던 모든 매력을 보여주었다. 허벅지 중간쯤 내려오면서 치마 부분이 풍성히 부풀어있는 흰색 원피스를 입고 나타난 그녀는 모든 이의 주목을 끌었다.
그녀 나이 24살이었다.
흰색 티셔츠에 청바지만 입어도 예쁜 나이다.
흰 드레스를 입고 처음으로 화장한 그녀를 보자마자 나는 숨이 멎을 듯 놀랐고, 그 모습에 반해버렸다.
그 후, 나를 보며 배시시 웃어주는 그녀를 사랑했고 우리는 3년 뒤에 결혼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녀의 아름다운 외모 때문에 반하기도 했지만, 그 외모가 전부는 아니었던 것 같다.
평상시와는 색다른 모습이 놀라움으로 다가왔고 그것이 하나의 기폭제가 된 것 같다.
평소와 다른 무언가는 항상 놀라움과 매력으로 다가온다.
그 놀라움과 매력은 무엇인가를 사랑하게 하는 힘이 있다.
그러나 1년에 주말, 휴일 빼고 200일 이상 똑같은 노선의 버스, 똑같은 사무실에 출근하는 직장인으로서 평소와 다른 무언가를 만나기가 쉽지 않다.
요 몇일 점심 식사를 하지 않으니 그 시간을 이용해서 주변을 산책한다.
사실 광화문은 산책할만한 길이 너무나 많다. 경복궁, 광화문 광장, 덕수궁 돌담길, 청계천, 경희궁..
매일 다른 길을 걷다 보니 광화문이라는 공간이 사랑스럽게 느껴진다.
버스만 타던 출근길, 조금 돌아가더라도 지하철을 이용해 보는 것
한 정거장 먼저 내려서 구시가지 샛길을 꼬불꼬불 걸으며 출근해 보는 것
밴치에 잠시 앉아서 바쁘게 출근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지켜보는 것
퇴근길 지하철역, 평소에 그냥 지나치던 꽃집에 들러 아내를 위한 꽃을 사는 것
평소와 다른 무언가로 내 삶은 사랑스러워진다.
[이미지 - MIDJOURN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