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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Apr 29. 2023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7

7일 차  김계란과 UDT

7일 차 -  김계란과 UDT


몸무게 69.6 kg, 체지방율 17.3% 

(몸무게 3.6kg, 체지방 3.2% 감소)


갑자기 배고픔이 심해졌다. 그리고 오후 들어 속 쓰림이 심해졌다. 

단식원 원장님이 그럴 때마다 추가로 챙겨준 약을 먹으라고 했다. 그러니 좀 낫다.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화장실을 들렀다가 몸무게를 재는 것이 아침 루틴이 되었다. 

그리고 집에 있는 전신거울로 몸을 관찰하는데, 살이 빠지니 어렸을 때처럼 눈이 커 보이고 매서워 보였다. 

대학시절 겁 없고 자신 만만했던 그 눈빛이었다.  


그런데 오늘 보니 확연히 허벅지 둘레가 줄어든 것 같다.

허벅지 지방도 빠졌지만, 근육도 많이 빠진듯하다. 

소위 근손실이 일어난 것이다. 


근손실 하니 피지컬 갤러리의 김계란이 먼저 떠오른다. (그는 근손실을 죄악으로 여긴다.) 

빡빡머리 가면과 선글라스가 그의 시그니처인데, 재치 있는 입담으로 헬스코칭을 하는 것으로 인기를 끌었고 이내 300만이 넘는 팔로워를 가진 대형 유투버로 성장했다. 


또한 해군 UDT 부사관 출신이었던 그는, 그 경력을 십분 이용해서 가짜사나이라는 일반인 대상 특수부대 훈련 체험 영상을 제작했었고 엄청난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이때부터 대한민국에는 특수부대 열풍이 불기 시작했고 강철부대, 더솔져스와 같은 밀리터리 서바이벌 프로그램들이 속속 생겨났다. 일반인에겐 생소한 특수부대의 면면과 각 부대의 전투력까지 엿볼 수 있는 구성이 시청자의 주목을 끌기에 충분했다. 이후 출연자 중 몇몇 인기 있는 인물들이 부각되기 시작했고 그들은 자연스럽게 인플루언서가 되었다. 


개인적으로는 나라를 지키기 위해 남들보다 더 특별하고 고된 길을 걸었던 군인들이 주목을 받았던 점에서 반갑고 고마웠다. 

 

보통 특수부대 출신들은 성향상 전역 후에 경찰특공대나 소방관과 같이 군과 유사한 공무원 조직에 지원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그곳에 선발되는 인원은 소수일 뿐, 여의치 않는 경우에는 경호원이나 사설 경비 등에 종사하며 어렵게 생활하는 것이 대다수이다. 나는 평소 나라를 위해서 젊음을 바친 그들에 대한 국가의 예우와 배려가 부족하다 느끼면서 내심 안타까웠었다.  


내가 졸업한 대학교에는 해군 ROTC가 있었는데 많은 대학동기들이 지원해서 장교로 임관했다. 

일년에 보통 5-6명 정도가 특수부대인 UDT와 SSU에 지원했었는데, 총원이 60여 명이었으니 약 10프로 정도가 지원한 것이다. 특수부대에 지원한 동기 중에 한 두 명 정도는 다들 그 동기가 특수부대를 지원할 줄 알았다는 반응이었다. 그런데 나머지 4명에 대해서는 모두 의외라고 입을 모았다. 평소 내성적이고 조용조용했으며 딱히 튀지 않는 친구들이었기 때문이다. 


후에 특수부대 훈련을 마치고 잠깐 외출 나온 그들을 만날 기회가 있었는데,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기억이다. 

살이 빠지고 몸이 한껏 다부져 보이는 것은 당연하고, 무엇보다도 그 눈빛이 너무나 인상적이었다. 

뭐랄까.. 독기가 너무 올라서 살짝 광기 어려 보인다고 해야 할까? 절도 있으면서도 한층 여유로워 보였고, 언행에 자신감이 넘쳤다. 마치 폐관수련을 마치고 독문 무공의 성취를 이룬 무림고수가 이런 모습일 것이다.  

그들의 예전모습을 너무나 잘 알기에 그 변화가 더욱 놀라웠던 것 같다. 


그러나 놀란 내 마음은 이내 실망으로 바뀌었는데, 실은 그들과 나눈 대화에서 드러났던 안타까운 현실 때문이었다. 


그들은 훈련을 마치자마자 특수부대 내의 행정실로 배속되었으며, 주 일과는 단순 행정업무였다. 

만났던 그날도 하루종일 한글워드로 공문서를 만들다가 나왔다고 했다. 고도로 훈련된 전투력과 신체능력을 실전에 사용하는 이들은 특수부대 내에서도 부사관 집단이지 초급 장교가 아니었다. 특히 내 동기들은 사관학교 출신이 아니라 2년 복무기간 후 전역하는 ROTC 장교였기 때문에, 단기 행정업무로 소비되었다가 전역하는 것은 어쩔 수 없는 관례였다. 


나는 그들의 젊음이 아까웠던 것 같다. 


그들은 24살이었고 피 끓는 청춘이었다. 

하루종일 컴퓨터 앞에 앉아서 키보드를 두드리고 있기에는 그들은 너무 젊었고 그들의 시간은 소중했다.  


몇 개월간의 특수부대 훈련이 지금까지도, 그리고 앞으로 남은 인생을 통틀어 가장 중대한 변곡점이고 전환점이 되었을 것이다. 그건 부정하지 않겠다. 나라에서는 장기복무 여부와 상관없이 그들에게 귀중한 자원을 지출하고 기회를 제공했다. 그것도 매우 고마운 일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들의 뜨거운 젊음을 허무하게 낭비했던 것이 아직도 용납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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