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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슨 May 08. 2023

나의 마흔한살 단식기 #9

9일 차  본전돼지국밥의 추억

9일 차 -  본전돼지국밥의 추억


몸무게 68.6 kg, 체지방율 17.3%

(몸무게 5.6kg, 체지방율 3.2% 감소) 


이제 몸이 적응하는 것 같다. 아침에 효소를 먹는 것을 깜빡할 정도로 배고픔에 둔감해졌다. 

바지를 입으려니 헐렁하다. 허벅지와 엉덩이 쪽 살이 많이 빠져서 좀 볼품없어 보인다. 


토요일이다. 

날씨가 좋아서 외출이나 다녀올까 했는데 미세먼지가 최악인 관계로 침대에서 느긋하게 쉬기로 결정했다. 

 

라면과 김치가 최고의 짝꿍이듯 침대와 유튜브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그리고 이번에 새롭게 깨달은 사실인데, 단식과 먹방 또한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다. 


뭔가 색다른 먹방을 찾다가 홍석천과 이원일이 최근에 개설한 채널을 발견하게 되었다. 채널 이름은 줄 서는 맛집 앞이다. 맛집을 찾아다니며 시민들과 인터뷰를 한다는 콘셉트는 여느 채널과 비슷했다. 그러나 이 채널만의 특징은 유명한 식당에 가서 줄 서서 기다렸다가 먹는 게 아니라, 식당 앞 길거리에 상을 차려놓고 먹는 것이었다.

 

식당 내부 촬영이 없다 보니 다른 손님에게도 크게 방해되지 않았고, 그래서 방송을 꺼리던 식당 주인들도 쉽게 마음을 열어주는 효과가 있었다. 또 어차피 식당주인 입장에서는 방송에 나오든 안 나오든 손님이 많기 때문에 크게 개의치 않았을 것이다.                           


여러 에피소드 중 부산 되지국밥 편이 눈길을 끌었다. 

부산에서 대학시절을 보낸 나로서는 부산 시민들의 남다른 돼지국밥 부심에 익숙하다. 

신기하게도 부산친구들은 열이면 열, 자신의 돼지국밥 단골 맛집 리스트가 있었다.   

나도 부산에서 지낸 세월이 있다 보니(내 고향은 부산이 아니지만), 나 역시 나름 돼지국밥 부심이 생겨버렸다. 


나의 돼지국밥 원픽은 내가 부산에 와서 처음 먹었던 밀양돼지국밥 집이다.  

그 집은 학교 앞에 있었는데, 워낙 혈기왕성하고 배고플 시절이라 더 맛있게 느꼈는지도 모르겠다. 

대학시절, 술로 지새웠던 무수한 날들, N차 술자리의 마지막은 항상 돼지국밥 집이었고, 그렇지 못한 날은 다음날 아침에 이 집에서 해장을 했다.  


사실 돼지국밥은 밀양과 부산 사이에서 원조 논란이 있다. 

밀양에 실제로 100년 넘은 돼지국밥 집이 있으니 원조라는 주장과, 그것이 부산으로 넘어와서 지금과 같이 대중화되었으니 부산이 원조라는 식의 싸움이다. 


두 지역이 국물을 끓여내는 방식 차이가 있었다는 썰도 있지만 상호가 밀양돼지국밥이었던 그 집도 부산의 여느 다른 돼지국밥 집들과 비슷하게 국밥을 끓여냈던 것을 기억한다. 내 결론은 그 둘이 자연스럽게 섞였기에 일부러 구분 짓는 것이 무의미하고, 오히려 그런 구분보다는 국밥집마다 베리에이션이 가미된 개성들이 드러나는 것이 더 좋다고 느껴졌다. 그 덕분에 부산사람들은 그 수 백가지 개성중에 자신의 최고 맛집을 찾아가는 가는가 보다 싶다. 


홍석천 이원일 유튜브에 첫 번째 소개된 집은 본전 돼지국밥이다. 

정말 유명한 집인데, 너무 붐벼서 부산사람들은 잘 안 가는 것 같다. (아니 못 간다고 해야 맞겠지)


식당 앞에는 아침마다 항상 줄이 길게 늘어져 있는데, 한눈에 봐도 서울 사람들이 기차 타고 내려오자마자 곧바로 방문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왜냐하면 옷 차림새가 누가 봐도 관광객들이고, 아침부터 여독이 덜 풀린 듯 피곤해 보이기 때문이다. 


나는 일부러 줄을 섰던 적은 없지만, 평일 낮시간에 지나가다가 우연히 빈자리가 보이면 한 그릇을 하곤 했다. 

잡내 없이 담백하고 착착 감기는 국밥과, 탱클 하니 소주를 부르는 수육맛이 일품이다. 보편적인 비주얼에 누구나 좋아할 맛, 확실히 서울사람들이 호불호 없이 좋아할 법하다.  


결혼 후 부산을 여행차 방문했을 때 아내가 돼지국밥을 먹어보고 싶다길래, 고민하다가 검증된 본전 돼지국밥에 데리고 갔다. 오후 3시쯤 도착했는데 역시나 대기 줄이 있었고, 인내심이 거의 바닥이 날 때쯤 겨우 입성할 수 있었다.  


입구에 드러서자마자 돼지국밥 집 특유의 구수하고 쿰쿰한 냄새가 정겨웠다. 

서빙하시는 부산 아지매 특유의 넉살도 반가웠다. 

아내가 맛있게 잘 먹는 모습을 보니까 기다린 것이 헛되지 않았다 싶었다. 


아내는 반주를 즐겨하지 않았는데, 처음으로 소주를 같이 마시고 싶다고 먼저 말을 꺼냈다. 

그날 생각보다 오랜 시간 국밥집에 머물렀다. 

와이프와 대낮부터 소주 3병을 마셨고 그날따라 이상하게도 깊은 이야기를 나눴다.


결국 국밥을 싹싹 긁어먹고 수육 두 접시까지 깔끔히 비웠다. 

이윽고 식당을 나왔을 때는 이미 해가 저물고 있었지만 여전히 환하고 따뜻했다. 


기분 좋은 취기가 올라왔다. 몸이 두둥실 뜨는 느낌이 너무 좋았다. 

찐 J로서 거창하게 계획되었던 그날의 다음 목적지도 더 이상 의미 없어졌다.  


아내는 처음 사랑했던 그 시절처럼 나를 보고 배시시 웃었다. 


나도 같이 웃었다. 


몇 년이 지난 지금도 아내와 나는 그 늦은 오후의 공기와 분위기를 추억하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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