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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유 노우 '폴란드 만두'?

비슷한 듯 안 비슷한 비슷한 것 같은 폴란드 식문화

by 흑투리

여러분이 다른 나라에 장기간 살아야 한다면, 어떤 게 제일 신경이 많이 쓰일 것 같은가? 아마 첫 번째는 주거일 거고, 그 외에는 언어, 물가, 뭐 여러 가지가 있을 것이다. 필자는 '음식'도 그 요소들 중 하나에 해당된다고 본다. 사람에 따라서 당연한 거 아니냐고 반문하는 분들도 있을 수 있고, 그게 그 정도로 크냐고 갸우뚱하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본인 역시 먹는 걸 크게 즐기는 타입이 아니라서 국내에 있을 때는 음식이 그렇게 중요한지 잘 몰랐다. 그런데 막상 지내보니까, 이게 생각보다 미치는 게 크다. 가는 나라마다 차이는 있겠지만, 자신이 한국에서 먹었던 음식들의 절반 정도는 앞으로 못 먹는다고 생각하면 이해가 되려나?



한국에서 떡볶이를 먹을 때 찍은 사진



단적인 예로, 한국을 떠나기 전 투리가 가장 기억에 남는 식사가 두 번 있다. 첫 번째는 유한열과 함께 먹었던 '두 끼' 떡볶이(뒷광고 아니니까 오해는 금물), 두 번째는 친한 형들이랑 함께 먹었던 동네 중국집 짜장면이다. 이때 한열이랑 형들이 공통적으로 했던 말이 있다.



"가기 전에 먹고 싶은 거 먹고 가라. 어차피 거기 가면 못 먹을지도 모르니까."


여기서 퀴즈. 투리는 폴란드에 와서 떡볶이와 짜장면을 과연 몇 번 먹었을까? 지금 온 지 한 달 반째인데, 떡볶이는 한 번, 짜장면은 없다! 과연 그분들이 말한 대로다. 물론 요새 한국 음식의 인기가 세계적으로 엄청나서, 맘만 먹으면 한식을 찾는 게 어렵지는 않다(저번 글에서 학교 국제요리행사에 한국이 1등 나온 걸 잊지 마시길). 그렇지만 아무래도 외국이다 보니 한국에서 먹는 것만큼 자주는 못 먹는 게 현실이다.



투리가 근처 마트에서 산 현지 냉동식품을 요리하는 장면



이렇게 얘기하면 교환학생 꿈나무들한테 찬물을 끼얹는 것처럼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인연이란 헤어짐이 있으면 만남도 있는 법. 현지에 있게 된다면, 오히려 한국에서는 느낄 수 없었던 다른 음식들이 당신과 함께할 것이다. 그들이 그 빈자리를 완전히는 채울 수 없겠지만, 아마 취향에 따라서는 그들의 매력이 한국의 그것을 능가할지도 모른다.



학교 본캠퍼스 건물 안의 빵 자판기.



마침 투리도 폴란드에 있게 된 거, 이번 글에는 음식과 관련시켜서 본인의 일상을 풀어보도록 하겠다. 의도한 것은 아니지만, 유독 그 당시에 음식과 관련한 해프닝들이 많았던 것 같다. 한국인의 관점에서 본 폴란드 먹을거리에 대한 얘기이기 때문에, 누군가에게는 참고가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다.



카페에서 받은 피에로기와 서비스용 퐁츠키, HOT 라떼



이전에 투리가 학교에서 국제요리행사를 진행한다고 했던 글 기억하는가? 그렇다, 한국 요리가 1등 한 바로 그 행사 말이다! 이건 행사가 있기 직전의 일이었는데, 행사까지 시간이 남아서 잠깐 학교 안 카페에 들어간 적이 있었다. 들어가 보니, 이 카페가 특이한 점이 2가지 있다. 첫째, 이 카페는 피자를 판다. 둘째, 이 카페는 피에로기를 판다.




여기서 '피에로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거의 대다수일 것이다. 이 '피에로기'에 대해서 먼저 소개를 하려 하는데, 폴란드에 오면 반드시 접할 수밖에 없는 음식들 중 하나이다. 그만큼 폴란드 국민들 사이에서는 대중적인 음식이고, 투리도 가장 먼저 들은 폴란드 음식이 이 음식이다. 위에 카페에서 주문한 음식을 보면, 만두처럼 생긴 음식이 보이는가? 그게 바로 피에로기(Pierogi)이다.



크라쿠프의 폴란드 전문점에서 동기들끼리 찍은 음식 사진, 상단 주 메뉴가 피에로기이다.


얼핏 보면 껍데기 모양만 다르지, 그 외에는 정말로 만두랑 비슷하게 생겼다. 실제로 만드는 방법도 만두랑 유사하게 반죽에 속재료를 넣고 삶거나 굽는 식이다. 그렇지만 다른 점이 없는 건 아닌데, 일단 투리가 느끼기에는 삶았을 때의 피에로기 피(?)가 만두피에 비해 더 부드럽다. 넣는 속재료도 중국에서는 고기와 야채를 적절한 비중으로 섞는 반면, 피에로기는 넣는 재료가 그때그때마다 다르다.



최근 간 루블린(폴란드의 도시)의 한 식당에 있는 피에로기 메뉴



위 사진에서 보시다시피 피에로기의 종류는 꽤 다양하다. 이 중에서 개인적으로는 'Pierogi Ruskie'와 'Pierogi z Mięsem'이 대표적이라고 생각되는데, 실제로도 딱 저 두 종류가 내가 좋아하는 것들이다. 'Ruskie'는 말 그대로 러시아식이라는 뜻으로, 속에 감자, 흰 치즈와 양파가 들어간 피에로기이다. 먹어보면 속이 다른 종류들에 비해 부드러운 편이다. 다음으로 'Mięsem'은 속이 삶은 소고기나 돼지고기가 양파 등과 함께 섞인 피에로기이다. 여행을 가다 보면 본인도 모르게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있는데, 그럴 때 이 'Mięsem'에 손이 많이 간다. 고기라서 단백질이 많이 당겨서 그러는 걸까.




역사적으로 피에로기는 13세기 무렵부터 사람들 사이에서 먹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초기에는 주로 결혼식이나 장례식 등 특별한 행사가 있을 때만 그 행사에 맞는 재료로 만들어 먹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7세기가 될 때쯤에는 그 존재가 대중적으로 알려지고, 18세기가 될 때에서야 사람들 사이에서 대중음식으로 자리 잡혔다고 한다. 피에로기의 원어 'pir'가 옛 슬라브 언어로 '축제'라고 하는데, 역사적으로나 대중적으로 보나 어울리는 말이라고 생각한다.



위 루블린 식당에서 주문한 피에로기. 11zt밖에 안 할 정도로 완전 쌌다!



어떤 사람들은 피에로기를 보면서 해당 음식이 중국에서 온 게 아니냐는 의문을 제기할 것이다. 실제로 당시 실크로드를 통해 중국과 다른 국가들의 교역이 이어지면서 영향을 받았다는 설이 유력한 편이다. 반죽을 만드는 과정은 중국의 영향을 받았지만, 그것을 본인의 스타일로 바꾸어 낸 음식이 피에로기라는 것이다.




피에로기에는 시금치가 들어간 것, 사우어크라우트(Sauerkraut, 독일식 발효된 양배추)와 버섯이 들어간 것, 심지어는 과일이 들어간 것 등 다양한 종류가 있는데, 아까 말했듯 나는 앞서 언급한 두 가지 종류가 제일 익숙하다. 실제로 그 카페 직원도 제시한 피에로기의 선택지가 딱 그 두 종류였다. 치즈와 감자를 좋아하는 나는 삶은 러시아식으로 달라고 했지만, 아쉽게도 확인해 보니 재료가 바닥났단다. 그래서 고기가 들어간 피에로기와 라떼를 주문할 수밖에 없었다.



처음 카페에서 받은 음식



그러더니 나중에 재료가 떨어진 게 미안했는지, 점원이 위 사진과 같이 라떼와 함께 도넛 같이 생긴 음식을 가지고 왔다. 당시에는 피에로기를 많이 못 먹어봐서, 설마 이게 피에로기인가 하고 의심을 했다. 하지만 알고 보니 해당 음식은 특별 사죄용(?) 서비스였고, 피에로기는 좀 더 지나서 받을 수 있었다. 저 서비스용 음식은 퐁츠키(Pączki)라는 빵으로, 일종의 폴란드식 도넛이다. 저 빵의 특징은 상당히 동글고 통통한 모양이고, 겉에 슈가파우더나 설탕 코팅이 발라진 형태이다. 설탕이 얼마나 덩어리째 발라져 있는지, 먹다 보면 주변이 흰 설탕이 여기저기 찐득하게 달라붙게 된다.



국제요리행사 직전 학교 학생회가 준비한 퐁츠키 박스 세트


퐁츠키 안의 속재료는 보통 장미잼인데, 이것도 또한 딸기잼이나 초콜릿 등 다양한 버전이 있다. 확실히 먹다 보면 빨간 잼이 빵 안에 많이 있는데, 맛이 꽤 상큼하다. 본인은 안성재 셰프가 아니라서 그 잼이 장미잼이라는 것까지 맞출 재주는 없었지만, 한국에서 먹었던 도넛과 비슷하면서도 친숙하다는 건 확실히 느껴진다. 이런 한국 음식들과 비스무리한 것들이 많아서 폴란드 음식이 입에 잘 맞다고 하는 사람들이 꽤 있는 걸까.



똑같은 루블린 식당에서 주문한 비고스(Bigos)


한 가지 음식만 더 소개를 하자면, 폴란드에는 비고스(Bigos)라는 요리도 있다. 저건 쉽게 비유하자면 폴란드식 곱창. 소시지 등 여러 가지 고기류를 사우어크라우트 등의 양배추와 섞어서 끓인 음식이다. 말이 곱창이긴 한데, 한국의 곱창에 매콤함이 빠지고 약간의 시큼함이 추가된 음식이라고 생각하면 이해가 빠를 것 같다.




이 음식도 마찬가지로 폴란드의 국민 음식으로 여겨지는데, 속뜻부터가 '사냥꾼의 스튜'인, 서민 갬성이 물씬 나는 요리이다. 물론 원어는 그런 의미가 아니고, 독일어로 'bi + gos'라는 '두 가지 + 맛'이라는 뜻이다. 이 두 가지 맛은 사우어크라우트와 양배추를 의미하는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저 음식이 사냥꾼의 음식이라는 별명을 가지게 된 이유는, 전통적으로 사냥꾼들이 사냥한 고기를 잡아서 함께 만들어 먹었던 음식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17, 18세기에는 여러 고급 재료들과 함께 귀족들이나 먹는 귀한 음식이었다고 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비싼 재료들은 빠지고 사우어크라우트가 들어가면서 지금의 비고스가 되었다고 한다.




물론 맛은 곱창과 차이가 있지만, 그래도 먹을 만하다는 게 내 정론이다. 역시 유럽인지라 음식 여기저기서 사우어크라우트가 들어가 있는데, 피자와 빵이 난무한 이 대륙 속에 저런 김치 포지션의 음식이 있다는 게 건강상 위안이기는 하다.



브로츠와프 B&B 호텔에서 먹은 조식 뷔페.



물론 투리가 소개한 음식들 외에도 골롱카, 폴란드 오이 수프 등 다양한 전통 요리들이 또 있다. 하지만 아직 그 음식들은 투리가 먹어볼 기회가 없어서 리뷰를 남기지 못했다. 어찌 됐든 이 글의 목적은 투리가 자주 먹었던 피에로기와 퐁츠키를 소개하는 것이다. 폴란드에 교환학생을 온다면, 적어도 바르샤바에 온다면 피에로기와 퐁츠키는 학교에서 간식으로 제공하는 등 어떤 식으로든지 접하게 된다. 비고스 이후부터는 본인의 취향에 따라먹을 수도 있고, 안 먹을 수도 있다. 다만 투리가 느꼈던 건, 해당 음식들이 투리에게 있어서 그렇게까지 이질적이지는 않았던 것이다.



투리 학교 식당의 메뉴판 소개. 오른쪽의 'Vegan'란에 집중하시길.


음식 얘기가 나온 김에, 외국(폴란드)에 와서 느낀 먹거리 관련 얘기를 두 가지만 더 하겠다. 첫 번째는 메뉴에 관한 말이다. 위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메뉴에는 'Vegan'용 음식이 따로 나열되어 있다. 이 식당만 이런 거 아닌가 생각할 수 있지만, 생각보다 꽤 많은 식당이 'Vegan' 메뉴를 기재하고 있다. 한국이나 일본에서 채식주의자들을 위한 메뉴가 따로 마련되어 있는 걸 본 적이 있는가? 투리는 거의 본 기억이 없다.




상당수의 서방 국가들과 인도, 대다수 중동 국가들은 이런 'Vegan' 메뉴를 다 표시한다고 한다. 투리는 채식주의자는 아니지만, 이런 메뉴가 따로 있다면 채식을 하고 싶을 때 상당히 유용하고 좋지 않을까 싶다. 그 외에도 여러 이유로 채식을 하는 사람들을 향한 배려도 담겨 있고 말이다.



투리가 주로 사는 물 브랜드. 해당 물은 생수이다.


두 번째로 투리가 느낀 것은 물이다. 편의점이나 다른 마트들을 가다 보면 물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아무 생각 없이 산 물이 탄산수라서 깜짝 놀란 적이 있다. 알고 보니 폴란드와 같은 많은 유럽 국가들은 탄산수와 생수를 동시에 판다고 한다. 한국도 탄산수가 있기는 하지만, 이렇게 생수 코너에서 다양한 종류로, 심지어 탄산 세기까지 천차만별은 아니었다. 이런 점이 처음에는 신선했다.




그러면 생수와 탄산수를 어떻게 구분하는가? 폴란드에서는 딱 두 가지 단어만 보면 되는데, "gazowana"는 탄산수, "niegazowana"는 일반 생수이다. 위 사진의 생수 상품명의 아래에 "niegazowana"라고 적혀 있는 게 보이는가? 그렇다면 저 물은 생수이다! 만일 상품명은 같은데 그 아래에 "gazowana"라고 적혀 있다면 그 물은 탄산수이다! 심지어 같은 브랜드의 탄산수라도 라벨의 색깔이나 단어(ex) lekko=가볍게, mocno=강하게)에 따라 탄산 함유량의 정도가 다르니, 이 점 역시 참고하면 좋을 것 같다.



본인이 가끔 공부하거나 브런치 글을 쓰는 도서관



이 글에서는 투리가 폴란드에서 초반에 느꼈던 폴란드 음식에 관한 솔직한 감상을 나누어보았다. 참 다른 문화권의 국가에서 살면서 느끼는 게, 이런 게 많이 다르구나 깨달으면서도 동시에 사람 사는 건 본질적으로 똑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어떻게 두 가지를 동시에 느끼냐고? 피에로기와 퐁츠키를 보면서 느낀다. 비슷하지 않으면서도, 비슷하다. 예전 글에서 언급했던 외국식(폴란드식?) '라이어 게임'과 '양세찬 게임', 기억하시는 분? 역시 비슷하지 않으면서도, 비슷하다. 오늘 하루도, 그렇게 초반의 생각을 더듬어가면서 차곡차곡 기록을 쌓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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