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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샤바 기행] 쇼팽의 심장을 걍 지나친 건에 대하여

<노비 쉬비아트>, 폴란드의 '신세계' 그리고...

by 흑투리
우선 오늘의 글을 쓰기에 앞서, 미처 쇼팽의 심장을 못 알아본 저의 불찰에 쇼팽과 그의 팬 분들께 심심한 사과를 드립니다.



여러분은 폴란드 하면 떠오르는 사람이 있나? 마리 퀴리. 코페르니쿠스. 요한 바오로 2세. 찾아보면 의외로 많은 인물들이 있겠지만, 투리에게 가장 임팩트가 큰 인물은 역시 프레데리크 쇼팽이다. 그런데 나는 이 날 (비록 라이트한 수준이지만) 팬으로서 상당히 멍청한 실수를 하고 말았다. 그것이 바로 위에 적은 내용.




쇼팽의 심장? 저게 무슨 뜻이냐고? 말하자면 아이돌 성지순례를 모르고 지나간 느낌이랄까? 자세한 건 이 글을 끝까지 읽으면 이해가 갈 것이다. 또 다 읽어야 하냐고 답답해하시는 분들이 있을 수도 있다. 너무 푸념 마시길. 이 글을 다 읽으면 여러분은 두 가지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첫째, 당신의 교양 수준과 바르샤바 지식이 올라갈 것이다. 둘째, 추후 폴란드 여행을 갈 때 본인과 같은 실수를 예방할 수 있을 것이다.



구름이 많을 때의 폴란드 날씨



어차피 투리의 실수에 대해 얘기할 겸, 그 주변 관광지에 대한 배경설명까지 같이 꺼내겠다. 그 편이 전체적으로 본인의 설명에 대한 이해도가 높을 것 같다. 요즘에는 폴란드 날씨가 흐리지 않고 맑지만, 3월 초에는 좀 우중충하고 비가 내릴 때도 있었다. 그날도 딱 그런 날이었다.




수업이 끝나고 오후에 시간이 비어서, 그날은 바르샤바 어딘가를 돌아다니고 싶은 마음이 컸다. 생각보다 저녁 파티 때까지 시간이 많이 남아서, 혼자 천천히 어딘가를 돌아다니기에는 충분했다. 어딜 갈까 고민을 하다가, 어렴풋이 폴란드 여행책자에서 딱 추천했던 거리가 하나 생각났다. <노비 쉬비아트(Nowy Świat)>, 바르샤바의 번화가.





생각 없이 버스를 타고 거리에 도착하니, 딱 이런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산업 혁명 시기의 영국을 연상시키는 칙칙한 날씨와 어딘가 어울리는 분위기의 건물들. 그때는 날씨가 더 좋았으면 어땠을까 싶은데, 지금 생각해 보면 이것도 흔히 느낄 수 있는 분위기는 아니다.



구글 지도에서 검색한 <노비 쉬비아트> 거리



생각보다 화려한 느낌이 아니라서, 처음에는 '이게 뭐지?' 싶었다. 왜냐하면 <노비 쉬비아트> 거리란 말 그대로 '신세계', 화려한 번화가들로 둘러싸인 거리라고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여기서 살짝의 어원 풀이를 하자면, Nowy란 '새로운', Świat란 '세계, 세상'이라는 의미로, 왕궁과 구시가지 성벽 밖의 세속적인 외곽을 이어주는 그런 뜻을 가진다고 한다.




바르샤바의 구시가지는 전통적으로 도시의 중심이기도 했지만, 종교적 중심지이자 문화적 중심지이기도 했다. 그에 반해 해당 거리는 더욱 개방적인 느낌을 자아내어서 어떤 사람들에게는 종교적 분위기에서 벗어난 편한 공간이라고 한다.



노비 쉬비아트 거리 일부


이 도로는 17세기경에 형성이 되었는데, 이후 도시가 확장되고 귀족과 부유층들이 이주를 하면서 더욱 세련된 대로로 변했다. 그 결과 생긴 게 이 거리라는데, 투리가 날을 잘못 잡아서 그런가. 본인의 눈에 보이는 것들은 하얀 건물이었다. 하지만 조금 더 들어가 보니, 조금씩 책자에서 말하던 분위기가 느껴지기 시작했다.




사진으로는 담아낼 수 없었지만, 비가 오기 직전의 날씨에서도 분위기 있는 카페들과 상점들이 하나하나 빛을 발하고(?) 있었다. 거리 중앙으로 다가갈수록 그 매력은 뚜렷이 확인할 수 있었는데, 당시 유럽여행이 처음이었던 본인으로서는 그 모든 게 너무나도 신기하고 재미있었다.



코페르니쿠스 동상과 그 뒤의 폴란드 과학 아카데미 건물



이 거리는 단순히 눈으로 거리를 보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바르샤바 자체에도 큰 의미가 있는데, 코페르니쿠스 동상과 바르샤바대학 등 다양한 주요 건물들도 이 거리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 거리를 단순히 세속으로 가득 찬 상업과 유흥의 거리라고 취급할 수도 없는 노릇.




거리 중간에 들어간 서점



그러다 슬슬 점심시간. 중간에 길을 가는데, 어떤 아저씨가 필자에게 다가오면서 호객을 했다. 메뉴를 보면서 점심 한 번 먹지 않겠냐고 제안을 했는데, 딱 보니 폴란드식(처럼 보이는) 메뉴였다. 평소 아침을 먹지 않는지라 마침 배고팠던 지라, 조금 혹했다. 당시에는 유럽 음식 경험이 전무해서, 속는 셈 치고 가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투리가 들어간 식당 안



그렇게 생애 처음으로 들어간 현지 식당. 식당 안에는 폴란드스러운 민요가 흘러나오는 분위기와 함께 여종업원이 미소를 띠고 필자를 반겼다. 유럽 여행 초보자라 많이 긴장한 나마저, 직원들의 사근한 태도에 풀어질 정도였다. 메뉴판을 들고 보니, 이 식당은 정식 요리와 함께 레모네이드 음료도 같이 제공하는 것 같았다. 그래, 이왕 처음 온 현지 식당인데, 오늘은 한 번 과감하게 가 보자. 한 번 큰 마음먹고, 과감히 점원에게 손가락으로 본인이 고른 메뉴를 가리킨다.



투리가 고른 그 날의 음식


평소 식사의 2배가량 되는 60zt를 지불하면서까지 선택한 오늘의 식탁. 바로 위의 사진이다. 메뉴에 따르면 '굴라쉬' 소스가 들어간 감자 팬케이크. 찾아보니 '굴라쉬'는 폴란드가 아니라 헝가리 요리인데, 헝가리 부근의 다른 국가들도 이런 류의 음식을 즐기는 편이라고 한다. 뭐, 폴란드 음식이면 어떻고, 헝가리 음식이면 어떤가. 투리에게는 그것이 정통 유럽 음식이라면, 충분히 먹을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문득 눈에 띈 좌측의 뾰족한 성당


간만에 포만감 넘치는 식사를 마치고, 즐겁게 밖을 나온 투리. 자, 여기서부터 여행 초보 투리의 실책이 시작된다. 다시 거리를 따라 움직이다 보니, 저 멀리서 꽤나 커 보이는 성당이 보였다. 난생처음으로 유럽의 성당을 보니, 큰 호기심이 생긴 투리. 주저 없이 성당 안을 들어간다.



그 날 찍은 성당의 안. 이 성당이 투리가 폴란드에서 가장 처음으로 들어간 성당이다


안을 들어가니, 공기는 바깥과 다른 느낌으로 서늘했다. 그와 동시에 생애 처음으로 보는 성당의 내부에 투리의 간담도 서늘해졌다. 한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일반 동네 교회들과 달리, 성당은 형용할 수 없을 만큼 아름답고 장엄하게 꾸며져 있었다. 엄청나게 높은 크기의 성당 안과 구석구석까지 정교하게 꾸며진 장식들, 여기저기 놓여 있는 예수 그리스도와 성모 마리아의 그림과 조각상들.



다른 쪽의 성당 모습들



다른 성당들을 본 경험자 말에 의하면, 이 성당은 그나마 다른 곳들과 비교할 때 수수하고 소박한 편이라고 한다. 하지만 현재 여러 성당들을 보았음에도 첫 성당의 여파가 가시지 않아서인가. 투리는 여전히 이 성당이 웅장하고 아름답다고 생각한다. 사실 존재 자체가 성스러운 성당 자체를 비교하는 게 난센스인 감은 있다. 하지만 그만큼 미적으로 봤을 때 투리는 그렇게 느껴진다는 얘기다.



당시 성당 포스터


궁금했다. 저 포스터들이 하는 말은 무엇일까. 만약에 폴란드어가 가능했다? 미사가 진행되는 시간대를 보고 한 번쯤은 참여했을 것 같다. 투리는 성당에 다닌 적이 없어서 미사가 어떻게 진행되는지 궁금한지라.




약간은 경건해지면서 아쉬운 마음을 뒤로하고, 투리는 성당을 나갔다. 그날의 <노비 쉬비아트> 자유투어는 그렇게 이름 모를 큰 성당 방문을 끝으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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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일.

투리는 수업이 진행되는 평일은 바르샤바, 주말을 포함한 기간은 그 외 지역 위주로 여행 계획을 짜고 있다. 그래서 바르샤바 관광의 경우는 너무 급하게 특정 주간에 몰아가는 방식으로 가지 않고, 일주일에 한두 군데 정도로 여유롭게 일정을 짠다. 어느 정도 가 본 여행지들을 정리하고 있었는데, 어느 순간 본인이 쇼팽의 심장이 보관되어 있는 성당을 바르샤바 여행 리스트에서 잊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쇼팽이 관련되어 있는 바르샤바 관광지라면 무조건 포함시켜야 하는 법. 강렬한 의지를 가지고, 그 성당의 이름 <성 십자가 성당>을 구글맵에 검색해 위치를 찾는다. 그런데 그 위치를 본 순간,



... 잠깐, 나 여기 지나간 적 있지 않아?



노비 쉬비에트 거리 근처에 떴던 <성 십자가 성당>. 성당이란 성당은 가까이 있으면 무조건 뒤졌던 투리. 그곳 근처를 지나갔다면, 절대로 지나쳤을 리가 없다. 그런데 왜 본인은 기억이 나지 않는 거지? 순간, 그날 방문한 그 성당이 본인의 뇌리에 스쳐 지나갔다. 설마 하는 마음으로, 황급히 구글맵의 사진과 본인이 찍은 사진을 대조해 본다. 세상에 맙소사! 바로 그 성당이 <성 십자가 성당>이었다!




그 불편한 진실을 깨달은 순간, 투리는 자신의 머리를 탁 치며 그날의 어리석은 자신을 한탄했다. 그 자리, 그 눈앞의 자리에서, 프레데리크 쇼팽의 심장이 눈앞에 있는 것도 모르고 지나가 버리다니! 어찌나 그리도 시야가 짧았는지! 도저히 참을 수 없다. 다른 일정들을 뒤로하고, 투리는 수업이 끝나자마자 <노비 쉬비아트>로 다시 나섰다.



우야두조프 공원 사진. 여기서 좀만 위로 가면 <노비 쉬비에트> 거리가 나온다.


바르샤바 중앙으로 나오니, 이 날은 그날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화창했다. 날씨도 날씨지만, 이번의 투리는 배경공부까지 마치고 여행 짬밥도 쌓인 상태.





참고로 공부하면서 알아낸 사실이 하나 있다. <노비 쉬비아트> 거리는 각각 <성 알렉산드르 성당(Kościół św. Aleksandra)>과 <성 십자가 성당(Kościół Świętego Krzyża)>이 위아래에 있으며, 그 사이에는 성당이 없다. 이것이 우연의 일치인지, 아니면 거리의 특징을 극대화시키기 위해서인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세속적인 거리가 두 성당의 사이에 있는 것은 약간 아이러니였다. 잠깐의 쾌락을 찾으면서도, 폴란드인은 결국 생활 속의 신앙을 버릴 수 없었던 건가.



<성 알렉산드르 성당> 정문과 마주보는 석상 사진



이번에는 <노비 쉬비아트>의 배경을 되새김질하며, 거리의 시작을 알리는 <성 알렉산드르 성당> 방문부터 시작했다.



<성 알렉산드르 성당>의 모습


성당 안은 다른 성당들과 달리 천장이 둥그런 원형 느낌으로 되어 있었다. 다소 특이한 모습의 성당에 발을 디디자, 미사 시간이었는지 사람들이 신부님의 말씀에 따라 봉독을 하거나 무릎을 꿇고 있었다. 다행히도 미사는 오래가지 않았고, 해당 사진들은 다 끝났다 판단될 즈음 찍은 사진들이다.



성당 문과 예배당 사이 작은 통로 벽에 볼 수 있었던 것들.


성당 미사와 가벼운 성당 탐사를 마치고, 본인은 여유롭게 거리로 향했다. 사실 투리는 기분 좋게 걷고는 있지만, 바르샤바 대부분의 장소가 그렇듯 여기도 씁쓸한 과거가 있다.



거리 주변의 모습



처음에 말했듯, 이 거리는 17세기에 형성된 이후 많은 발전이 있었다. 그러다가 1944년 이 거리는 바르샤바 봉기 도중 폭격에 휘말려 큰 손상을 입는다. 봉기 당시, 해당 거리는 거리 축에 따라 두 개의 폴란드군 저항 바리케이드로 나뉘었다는데, 봉기가 종료될 때까지 홀수 번호 건물이 위치한 거리 측면이 폴란드군 최후의 방어선이었다고 한다.



다시 찍은 거리의 모습. 확실히 세속적이라는 이름치고는 방탕한 느낌보다는 아담하고 활기찬 느낌에 더욱 가깝다.


이때 바르샤바가 입은 피해는 어마어마했는데, 제2차 세계 대전 때 무려 전체 건물의 85%가량이 손상을 입었다고 한다. 그중 가장 많은 손상을 입었던 때가 이 바르샤바 봉기 때라고 한다.




어쨌거나 투리, 이제는 알고 들어간다. <성 십자가 성당>. 오늘은 그대를 천천히 맛보고 뜯어보리라.




해당 성당은 15세기부터 지어지다가 여러 번의 파괴와 재건을 거쳐 18세기 중반 바로크 양식으로 지어진 성당이라고 한다. 이곳은 역사적으로도 폴란드 왕국의 왕들이 왕관을 받거나 중요한 의식이 거행되는 등 많은 의미가 있는 장소이지만, 역시 <노비 쉬비아트> 거리와 마찬가지로 전쟁 때 큰 손상을 입게 된다.



위의 사진은 특별히 열어놓은 것 같은 기도실. 아래의 사진은 성당 앞의 측면 모습.


그런데 이런 교회에 쇼팽의 심장이 어쩌다가 여기에 안치된 걸까? 쇼팽은 원래 죽어서 폴란드에 묻히기를 바랐다. 그렇지만 당시의 폴란드(1849년경)는 자신들을 지배한 러시아 제국으로부터의 독립을 위하여 싸웠던 민감한 시기에 있었다. 이때 시신 자체를 수송하기는 어려웠기 때문에, 쇼팽의 누이는 쇼팽의 심장만을 따로 빼서 유언에 따라 폴란드로 옮겨왔다고 한다.




그리고 그 심장의 위치가, 바로 위의 사진의 가운데 부분에 보관되어 있다. 참고로 쇼팽의 시신은 프랑스의 <페르라셰즈 공동묘지(Père Lachaise Cemetery)>에 잠들어 있다고 한다. 제2차 세계대전 때 성당이 크게 파괴되면서 나치 독일이 쇼팽의 심장을 꺼낸 적이 있다고 하던데, 부디 이제는 심장이 어디 옮겨지지 않고 푹 쉬었으면 좋겠다.



가까이서 본 쇼팽의 심장이 보관된 곳


이번에는 이 교회가 어디인지 알고 보니, 뭔가 더욱 마음이 가는 듯했다. 쇼팽의 심장 위치를 발견하고 나서도, 투리는 다음 일정으로 움직여야 할 때까지 그곳 근처 의자에 앉아 있었다.



기숙소로 돌아가는 도중 찍은 <노비 쉬비아트>의 밤거리



비록 첫눈에 알아보지는 못했지만, 오히려 이 성당이 내가 유럽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성당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기분이 좋기도 하다. 뭐든지 첫경험이 좋으면 그게 기억에 오래 남는다고 하지 않나. 이렇게 여러 관광지들을 볼수록, 투리의 폴란드에 대한 관심도 더욱 커지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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