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수업 시스템
교환학생~ 교환학생~ 꿈이
드리운 멋진 폴란드
아기학생 여럿이 여기저기 노니는
최고의 중부 유럽국
과제들이 뚝뚝뚝뚝 떨어지는 날에는
잔뜩 찡그린 얼굴로
자료 찾아 음메~~카페에 짜져 음메~~
울상을 짓다가
이 글을 쓰는 현재 날짜는 4월 후순. "봄여름여름여름 가을겨울겨울겨울" 드립과 때에 안 맞는 눈사태가 난무한 요즘 찾아보기 힘들게 날씨가 딱 좋은 기간이다. 보통은 이럴 때 소풍이나 데이트를 가고 싶겠지만, 아뿔싸. 한국 학생들에게는 하필 이 시기가 시험 기간이다. 시험 준비에 참 안 어울리는 창 밖의 분위기가 기세등등하지만, 뭐 어쩌겠는가. 시험에 맞는 최소한의 성의는 보여야 하는 이 현실을. 눈물을 머금고, 조용히 도서관에 들어가서 벼락치기를 시작한다.
.....원래대로였다면 지금 그럴 기간이겠지만, 폴란드에서는 어떻냐고? ......허허허, 솔직히 지금 심정은 저 위의 개사한 노래 가사와 같다. 다만 한국에서처럼 시험 스트레스 때문에 미쳐버린 게 아니라, 기껏 여행일정 짰는데 계속 조금씩 조금씩 미니테스트 일정이 잡혀서 짜증 나는 느낌이다. 미리 하나 얘기하자면, 유럽은 한국과 달리 4월 중순이 시험기간이 아닌 부활절 연휴기간이다. 대신 투리의 경우는 선택한 과목들이 군데군데 미니테스트와 발표일정들이 엮여 있다. 그래서 수업이 있는 날짜를 제외한 나머지를 완전히 맘 놓고는 쉬지 못하는 것이다.
지금 본인의 말을 들은 순간, 이렇게 생각하는 독자들이 있을 것이다. 아니, 중간고사가 없는 것도 모자라 일주일이 통째로 연휴라고? 완전 개꿀빠는 거 아니야? 저래놓고 여행 못한다고 투덜대다니, 아주 배가 부르셨구먼. 혹시나 그렇게 따질 생각이라면, 그게 투리가 바랐던 것이다. 맞는 말이다!
연휴로 대체된 시험기간, 일주일에 나흘뿐인 수업 시간표. 그 나머지 기간을 폴란드 or 다른 유럽 국가 여행. 스트레스 넘치는 한 학기의 한국 학창시절을 맞바꿔 얻은 이 기회. 누군가는 누리고 싶었어도 누리지 못한 작금의 삶에, 투리는 감사해야 하는 게 천부당만부당한 얘기이다. 다만 그만큼 소중한 '이 기회'에, 발표 과제와 미니테스트가 은근슬쩍 끼어드는 게 성가시게 느껴지는 건 사실이다. 설상가상으로 기숙사의 나머지 두 동기는 일주일에 대면수업이 이틀밖에 없어서 더 느긋하게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 보니 비교감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지 않은가.
그런데 그거 아는가? 이 시간표도 사실은 원래 일주일에 사흘 있던 수업이 나흘로 줄어든 것이다. 그것도 5주 차가 지나서야 확정으로. 그 이유가 수강신청 시스템 때문인데, 그 과정이 한국과는 다른 이유로 답답했다. 학교 수업에 대한 정보가 많았더라면 좀 더 수강신청이 수월했겠지만, 어쨌든 결과적으로는 나쁘지 않게 마무리되어 만족은 한다. 유럽, 특히 폴란드의 모든 학교가 그런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혹시나 가까운 미래에 투리가 들른 학교에 가게 된다? 이 글이 아마 많은 도움이 될 것이라 확신한다. 참고로 투리가 머무른 학교는 <바르샤바생명과학대학교(약칭 SGGW)>이다.
자, 때는 폴란드로 가기 몇 달도 전인 11월 말. 한국 본교에서 교환학생 최종후보자로 선정이 되었다면 학교에서 메일을 보내는데, 위 사진이 그중에서 수강신청에 관한 공지만을 잘라서 올린 부분이다. 프롤로그에서 교환학생 이후의 준비과정을 말할 때 learning agreement를 제출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었는데, 그게 바로 수강신청을 말하는 것이다.
아무튼 본교에서 특별한 조건을 두지 않는 이상은 총합 20~35 ECTS 사이의 학점을 수강할 수 있다. 유럽은 한국과 다르게 'ECTS'라는 단위를 쓰는데, 본인이 볼 때 한국에서의 1학점을 약 1.5 ECTS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다. 투리는 파견 학교에서 몇몇 과목들을 전공선택 과목으로 인정받고 싶었다. 그래서 일부러 전공 냄새가 나는 과목들을 일부 섞어서 learning agreement를 제출했다.
다시 앞내용 살짝 언급! 본인의 독자들 중 투리가 해당 학교를 선정한 이유를 기억하시는 분 계신가? 가장 큰 이유들 중 하나가 '전공 관련 과목들이 가장 많은 학교'였기 때문인 것, 누군가는 떠올렸을 것이다(사실 몰라도 지금 알면 그만이라 상관없다). 아쉽게도, 이 세상에 장점만 있는 수강신청이란 없는 것인가. 수강신청을 하는 순간, 불안한 점들을 몇몇 개 발견했다. 수강과목란에 수업 요일과 시간표에 대한 정보가 일절 없다. 수업 목록에는 강의계획서만 있고 그걸로 끝. 그리고 수강신청 시간이 되자마자 빠르게 수강을 눌러야 하는 한국과 달리, 모든 과목을 기한 내라면 시간의 제약 없이 내 맘대로 수강신청할 수 있다.
"아, 설마 나중에 또 과목을 바꿔야 하는 건 아니겠지?"
이상하다. 이렇게 수강신청이란 개념이 일사천리로 될 리가 없는데. 석연치 않은 기분이었지만, 당시에는 다른 급한 일들이 많았다. 딱히 할 수 있는 것들도 없고 해서, 그때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 그렇게 시간이 흘러, 수업정정일.
폴란드 입국에 성공한 첫째 주! 드디어 학교 담당관이 위 사진과 같은 메일을 각 교환학생들에게 보냈다! 수업시간표가 여태껏 정해지지 않다가, 수업이 시작되고 나서야 겨우 가닥이 잡혔다는 얘기다. 떨리는 마음으로 조심스럽게 누르는 수업시간표. 두근두근. 과연 투리는 처음에 넣은 수업 그대로 갈 수 있을 것인가?
자, 처음 결과를 받아들였을 때, 투리는 무슨 생각을 했을까? 많은 사람들은 투리가 "아, 바꿔야 하네"라고 느꼈을 거라 생각할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말이다. 앞에서부터 계속 수업을 확정 짓지 못했다는 언급을 했으니까. 그러나 아쉽게도 오답. 차라리 그렇게라도 생각했으면 낫기라도 하다. 왜냐하면 바로바로 판단이라도 되니까. 투리는 본인의 시간표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판단이 서지 않았다.
왜 확신할 수 없었냐고? 각 과목의 시간표는 엑셀 형태로 저장이 되어 있었는데, 엑셀 안에는 아래와 같은 이유로 정보가 불충분했기 때문이다.
1. 시간표가 여전히 확정되지 않은 과목이 있었다(이 경우는 직접 메일로 문의하라고 나왔지만, 메일로 문의했는데도 답장이 없는 과목이 있었다).
2. 실험과목의 경우 lab 시간표가 두 개로 나뉘는데, 저 시간표들 중 하나를 본인이 직접 고를 수 있는지 알 수 없었다.
3. 각 주차마다 시간대가 일정하지 않은 과목도 있어서 시간표가 고정인 수업과 얼마나 겹치는지 가늠이 안 되었다.
저들 중에 한 가지 요소만 있었다면 판단이 쉬웠겠지만, 저 요소들이 다 있다고 생각해 보시길. 머리가 아플 것 같지 않은가? 저게 투리의 1주 차 현주소였다. 아무리 수업을 바꾸어봐도 도무지 이상적인 시간표 형성이 그려지지 않았던 상황. 투리 본인의 시간표뿐만 아니라 다른 학생들도 골머리 앓는 건 마찬가지였다. 상당수 학생들이 말하길, 자기가 선택한 과목들 중에 인원수가 안 차서 폐강된 과목이 있었다고 한다. 어떤 학생들은 수강한 과목들끼리 시간대가 겹쳐서 그들 중 일부를 희생해야 했다. 그런 얘기들을 들으면 어차피 다들 시간표 정정할 거, 대체 뭐 하러 작년부터 수강신청을 요구했나 싶기도 하다.
그나마 다행인 점. 수강 정정 마지막 기회가 3월 25일까지이다. 물론 위 사진의 메일에서 말하듯, 최소 수업 출석일은 채워야 하기 때문에 시간표는 빨리 확정할수록 좋다. 그 과정에서 lab 시간표는 본인이 메일로 원하는 시간대를 희망할 수 있다는 사실이 확정. 또한 시간표 정보가 없는 과목들의 시간대 파악도 마칠 수 있었다. 결국 고심 끝에 투리도 2주 차째 접어들어 수강정정을 하기로 결심한다.
시간대가 불안정한 과목을 쳐내고 확정적으로 안 겹치는 과목들 위주로 선택한 투리. 이것이 바로 초기의 일주일에 4일 수업 형태였다. 그런데 왜 또 시간표를 바꾸었는가? 첫째, 막상 수업을 들으니 대부분이 아침 일찍 시작이라 피로가 너무 컸다. 둘째, 여행 날짜를 늘리고 싶었다. 사실 3주 정도까지 버텨보려 했지만, 역시나 오전 8시~9시 연속 수업은 쉽지 않았다. 이 생활을 15주 내내 해야 한다고? 이 고충을 4주 차가 되어서 한 한국인 동기에게 털어내니, 그녀가 이렇게 대답했다.
그러면 수업을 정정하세요. 아직 25일 안 되었으니까 수업을 바꿀 수 있잖아요?
'....어, 하지만 이미 한 번 정정해서 학교에 보냈는데...또 한 번 정정해도 괜찮은가?'
당시가 4주 차를 향하던 때였기에, 막상 정정을 하려 하니 조심스러웠다. 진도 따라잡기는 둘째 치고, 이미 최소 결석수(과목에 따라 다르지만 보통 2~3번이다)를 넘겨버리는 과목이 있을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카자흐스탄 동기에게 한 과목에 대한 추천을 받았는데, 이상하게 10 ECTS씩이나 되는 비중 있는 과목이었다. 신기하게도 그 수업은 학점에 비해 수업시간도 그렇게 많은 편도 아니란다. 확인해 보니, 해당 수업은 4주 차였는데도 수업은 딱 2번만 진행된 상태였다(참고로 수업들마다 개강 날짜도 가지각색이다. 이 수업의 경우는 조금 늦게 개강한 편이라 수업 횟수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과목도 부담스럽지 않으면서 학점도 크고, 무엇보다 수업시간표도 정오로 여유로운 편! 이 마지막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던 투리는, 아침 수업 1개와 오후 수업 1개를 맞바꿔 '일주일 3일'이라는 기적의 시간표를 만드는데 성공! 이런 연유로 막바지에 가서야 투리는 겨우 시간표가 확정될 수 있었던 것이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좀 더 과목을 뺄까 하는 아쉬움이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이렇게 여유롭게 수업 듣는 게 어딘가 싶다. 감사해야지.
여담으로 또 하나 이 학교의 귀찮은 수강프로그램을 하나 더 소개하자면, 바로 '안전교육 및 학교수칙' 영상 수료과정이다. 내용을 보면 아주 2000년대 초반에 만들어진 영상 같은데, 그 영상을 진득이 시청하고 문제를 일정 개수 이상 맞추어 인증을 받아야 한다. 어떤 영상은 다 보는데 25분가량이 소요되는데, 빨리감기나 넘기는 게 아예 불가능하다. 심지어 어떤 경우는 다 보고 문제까지 합격점 이상으로 맞혔는데도 저장이 안 돼서 같은 과정을 다시 반복해야 한다. 덕분에 투리 본인은 저 모든 프로그램을 시청/인증하기 위해 이틀씩이나 소비해야 했다. 지금은 기억도 안 나는 저 영상을 왜 투리는 강제로 시청해야만 했을까.
아무튼 이상의 내용이 투리가 비효율적인(?) 학교 시스템을 뚫고 힘겹게 수업시간표를 확정하는 과정이었다. 초반에는 다소 답답하고 불안한 점이 많았는데, 혹시라도 본인의 학교로 오는 후배가 생긴다면 본인보다는 수강신청이 덜 고달프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해당 글을 올린다. 다만 투리의 지극히 뇌피셜적인 경험에 의하면, 세상에 완벽한 수강신청은 없다. 국내에서 공부하든 해외에서 공부하든, 수강신청의 도전은 계속된다는 점을 잊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