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가지>, 난쟁이 동상들이 함께하는 형형색색의 광장
3주 차의 금요일. 첫 여행지라는 긴장과 기대감이 공존한 채, 투리는 처음으로 바르샤바를 떠났다. 사실 폴란드를 떠나기 전에는, 막연히 여러 국가를 돌아다닐 생각만 했지, 여행에 대한 구체적인 계획은 없었다. 그렇지만 이럴 수가. 직접 와 보고 공부를 해보니, 폴란드 자체만으로도 이미 재미를 느껴버리고 말았다. 한반도보다도 1.5배 이상 큰 영토. 한국과 비슷한 역사 레퍼토리, 그리고 그에 준한 관광지와 유적들. 이 나라 안만 하더라도, 많은 이야기들이 숨겨져 있던 것이었다.
당연히 알고리즘상 한국인들에게 더 익숙한 나라들의 기행을 하는 것이 유리하다는 걸 모를 없는 투리. 하지만 어쩌겠는가. 투리의 덕후 본능은 이미 폴란드 기행을 적어나가고 있었다. 어떤 의미로는 이 나라에 대한 도리를 다하는 것이기도 하다. 아니었으면 투리는 유럽에 들어올 생각을 영영 하지도 못했을 테니까. 그래서 투리는 그 도리를 다하기 위해 교환학생 기간 제 1 목표를 세운다.
폴란드의 관광 추천 도시들은 다 돌아보고 오기.
마치 한 지방을 여기저기 탐험하는 포켓몬 트레이너처럼, 흑투리는 고향을 떠나 '폴란드 지방(?)'을 향한 모험을 새롭게 시작한다! 이런 투리의 포부에, 인생에 몇 없을 교환학생을 폴란드 내부 투어로 마칠 학생은 그 누구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대부분의 여행은 부득이하게 혼자서 진행한다.
혼자 여행이라 외로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크게 슬프지 않다. 그 이유는 첫째, 친구들과 여행을 가다 보니 혼영(세간에는 혼자 여행의 줄임말이라고 한다)의 장점을 크게 깨달았기 때문이고, 둘째, 낭만 넘치기 때문이다. 포켓몬 게임에서 인간 주인공이 다른 인간과 항상 다니는 게임은 본 적 없지 않은가? 마찬가지다. 모험이란 결국 혼자서 개척하는 것. 지금 투리는 포켓몬, 아니 여행작가 트레이너이다. 각 도시의 체육관 배지를 따내는 트레이너마냥, 투리도 각 도시의 멋진 장소들을 이 두 눈으로 반드시 따낼 생각이다. 그리고 그것을 본인의 문체로 담아내어 여러분께 하나하나 진솔하게 전해주겠다.
자, 그럼 이제부터가 본론이다. 투리의 첫 번째 도시는 '브로츠와프'. 폴란드 여행 책자들을 보면 무조건 공통적으로 추천하는 도시들이 있는데, 브로츠와프가 딱 그들 중 하나다.
참고로 폴란드의 대중교통 티켓은 본인이 있는 도시 안에서만 적용이 된다. 그래서 타 도시를 가기 위해서는 아예 기차나 고속버스를 이용해야 한다. 투리는 'Flixbus'를 가장 많이 활용하는데, 보통은 미리 예약을 하고 위 사진의 바르샤바 버스 터미널역에서 버스를 기다린다.
그러면 저렇게 초록초록한 큰 버스가 해당 시간대에 지정된 플랫폼으로 나온다. 버스가 멈추면 역시 초록초록한 의상의 버스기사가 나와서 티켓을 검사하고 손님을 들여보낸다. 처음에는 그 색깔에 괴리감을 느꼈지만, 가격이나 접근성 면에서 가성비는 최고이다. 특히 이 'Flixbus'는 체코나 오스트리아 등 다른 국가로도 자유롭게 이동이 가능하다. 다만 서유럽 쪽 버스는 문제가 많은지, 그 쪽 교환학생 말로는 그다지 이용을 추천하지 않는다고. 이유는 모르겠으나 프랑스 등으로 교환학생을 가는 사람들이 있다면 자세히 확인해보길 바란다.
3시간가량 지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브로츠와프 안의 어떤 장소에 버스가 정차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예정된 정차 장소가 아니라서 당황했지만, 여기서 브로츠와프를 넘어가면 전혀 다른 저 멀리의 도시행. 자칫하다간 'Endgame'이 아니라 'Ending'이 될라. 허겁지겁 버스에서 내리고 위치를 확인했다. 본인이 서 있던 위치는 '브로츠와프 환경 생명 과학 대학교'의 건물 앞이었다.
당시에 날씨가 조금 흐렸는데도 여행을 강행했기에 괜히 갔나 싶었지만, 주변의 새로운 풍경을 보니 그 생각은 싹 가라앉았다. 그때는 유럽생활이 길지 않았어서 조금만 건물이 달라도 막 신기했을 때였다. 지금도 신기한 건 마찬가지지만.
'브로츠와프'는 어떤 도시인가? 폴란드를 좀 아시는 분들이라면, 이 도시하면 딱 생각나는 키워드가 있을 것이다. '난쟁이'. 브로츠와프에는 수백 개에 육박하는 각각 다른 모습의 난쟁이 동상들이 거리 위에 존재한다. 어떤 친구는 공원 앞에, 어떤 친구는 시가지 구석에, 또 어떤 친구는 광장 앞에. 그 동상이 어찌나 많은지, 아예 난쟁이 지도가 따로 있을 정도이다. 몇몇 블로그에서는 어린아이들이 난쟁이 동상들을 찾는 데 재미를 느꼈다는 후기도 있었다.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인데, 첫 난쟁이 동상이 세워진 건 2001년으로, 의외로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다. 이 난쟁이 동상들은 왜 세웠냐. 대답부터 하자면, 반공 의식을 드러내기 위해서이다. 1980년대경, 브로츠와프는 소련의 공산주의 정권으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있었다. 이때 브로츠와프는 유머와 패러디를 통해 공산당의 억압과 검열에 맞서 싸우기로 했다. 일명 'Orange Alternative'라고도 불리는 이 운동은, 벽화에 귀여운 난쟁이를 그림으로써 공산당에 대한 저항을 표현했다고 한다. 대놓고 공산당을 비판하는 것이 금기되었던 시대상을 떠올리면 나름 깜찍한 발상이라고 볼 수 있다.
처음 난쟁이들이 자리 잡은 곳은 공산주의 정권의 반사회주의적 문구와 구호가 덧칠된 벽 위였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조각가 'Tomasz Moczek'이 2005년 5개의 난쟁이 동상을 추가로 만들면서 난쟁이의 위치를 벽에서 3D로 적극적으로 옮기기 시작했다. 그 이후 동상 만들기 운동이 도시 전체로 확대된 것이다.
브로츠와프는 역사적으로 소련 말고도 여러 국가들을 거쳐간 전적이 있는 도시다. 10세기쯤에는 본디 폴란드의 영토였는데, 14세기부터 보헤미아 왕국(지금의 체코)의 통치를 받게 된다. 그 뒤로도 오스트리아 합스부르크 왕가, 프로이센을 거쳐가다가 세계 2차 대전 후 겨우 폴란드의 품으로 돌아온다. 이런 배경 덕에 브로츠와프는 체코, 독일, 폴란드의 특징이 모두 녹아 있는 독특한 도시라고 하지만.... 아쉽게도 둔감한 투리의 눈에는 모든 도시가 새롭다. 이렇게 둔감하니까 그나마 폴란드 국내(?) 여행만 해도 만족하고 있는 거 아닐까.
폴란드는 북부를 제외하면 완전한 내륙 국가이기에 물을 보기 어렵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남쪽에 큰 강이 흐르기 때문에 역시 물이 지나가는 도시들을 어렵지 않게 접할 수 있다. 브로츠와프도 마찬가지인데, 특히 브로츠와프는 오드라 강과 여러 개의 다른 강들이 같이 위치해 있다. 강의 사진을 보면 알겠지만, 브로츠와프의 일부 영토는 섬일 정도로 강이 정말로 큰 편이다. 오죽하면 이 도시가 '폴란드의 베네치아'라고 불리겠는가.
아무튼 숙소를 찾은 뒤, 투리는 본인의 근처 장소를 미리 파악해 보았다. 감사하게도 이 날 투리의 숙소는 구시가지와 상당히 가까운 거리에 있었다. 블로그의 추천을 보고 B&B 호텔로 예약을 했었는데, 브랜드 숙박지는 역시 실패가 없는 건가(광고비 안 받았습니다).
위의 사진은 상가 쪽으로 가기 전 교차로에서 찍은 기념물이다. 처음에는 웬 쓰레기가 저기 방치되어 있나 싶었는데, 알고 보니 1989년 천안문 사건으로 인해 희생된 중국 청년들을 기리는 기념물이란다. 저런 길가의 망가진 물건까지 반공 사상이 담겨 있다니, 이 도시에는 공산주의 저항 의식이 뼛속까지 뿌리 깊게 남아 있는 것 같았다.
그때 찍은 사진들을 보면, 당시 여행이 첫 폴란드 여행이었던지라 촬영이 미숙한 것도 있고, 날씨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하지만 첫 여행이었기 때문일까, 아니면 그 날씨 특유의 감성이 있어서였을까. 브로츠와프에 오니 흐리다는 이유만으로 여행을 취소하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 느꼈다. 사진으로는 느낄 수 없지만, 브로츠와프는 흐린 날씨와도 어딘가 묘하게 어울린다. 늘 말하는 얘기이지만, 흐린 날씨의 런던처럼 그 흐림 자체의 감성이 있다고 해야 하나?
이 글을 쓰는 투리가 지금까지 폴란드의 여러 도시들을 둘러보았지만, 그중 브로츠와프의 구시가지의 스토리가 가장 다이내믹한 것 같다. 아무래도 도시의 주인이 여러 번 왔다 갔다 했으니, 그럴 만도 하다. 브로츠와프의 매력들 중 하나는 건물인데, 이 건물들의 부흥은 중세 시대의 독일 이주민들로부터 시작된다. 이들은 처음에는 몽골의 침입으로부터 망한 도시를 재건하겠다는 일념으로 여러 건물들을 정비했었다.
그 뒤, 이 도시는 북유럽과 중부유럽 상인들이 만든 무역 동맹인 한자 동맹의 주요 도시가 된다. 이들이 다시 건물들을 멋지게 지으면서, 브로츠와프는 중세 스타일의 도시 구조를 발전시켜 나간다. 이후 여러 나라들의 지배를 거치면서, 브로츠와프는 기존의 구시가지는 유지하되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등 다양한 양식의 건물들을 확립한다.
그렇지만 세계 2차 대전이 일어나게 되면서, 이 도시도 바르샤바와 마찬가지로 전체 건물의 대부분이 파괴되고 만다. 이 도시가 다시 복원될 수 있었던 것은 브로츠와프를 다시 돌려받은 폴란드인들 덕분이었다. 이들은 과거의 양식을 최대한 재현하면서 건물을 복원하려 노력했고, 그 결과물이 지금의 여러분이 보고 있는 사진 속의 건물들이다.
......뭐, 이론상은 그렇지만, 독자 여러분은 브로츠와프만의 독특한 건물 양식이 보이는가? 투리는 솔직히 모르겠다. 유튜브 '셜록현준' 채널의 유현준 교수님이라면 단번에 아시겠지만, 유감스럽게도 투리는 건축과는 거리가 먼 인물이라. 하지만 뭐가 되었든 본인이 만족한다면 그걸로 그만 아닐까? 여행은 머리보다는 느낌이 우선이니까!
본격적으로 구시가지 안으로 들어가니, 큰 광장이 등장했다. 유럽의 갬성과 젊음의 활력을 음미하면서 주변을 돌아다니는데, 마침 난쟁이 차림을 한 황금의 남성이 하트 풍선을 들고 계셨다. 그분은 시민들에게 웃음을 보이며 이따금씩 사진도 같이 찍어주시기도 했다. 저 멀리서 투리 본인도 엉거주춤 사진을 찍어보는데, 역시나 변장하시는 분들은 눈치 백 단. 바로 본인의 카메라를 응시하며 위 사진과 같이 방긋 웃어주신다. 투리도 마음이 따뜻해졌다. 폴란드 사람들은 대체로 국민성이 순박하다고 하는데,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어느 정도 공감이 가는 건 기분 탓일까.
변장하신 분은 난쟁이만 있는 게 아니었다. 귀여운 흰 곰도 있었다. 한 분이 재밌어서 동전을 넣었는데, 그 곰이 그 시민 분에게 감격한 듯 갑자기 쿵쿵거리며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보니 순간 투리도 동전을 넣을까 고민했다.
그 외에도 특이한 악기를 연주하는 분, 사진을 찍는 분 등 다양한 분들이 각자의 라이브 공연을 하고 있었다. 역시 젊음의 거리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한국과는 분명히 다른 뭔가가 있다.
그리고 바로 위 사진에 보이는 광장. 이른바 리넥(Rynek) 광장이라 불리는 저 큰 공간은 이런저런 다양한 물건들을 팔고 있었다. 색색깔의 옛 건물들 사이에 둘러싸인 저 소박하면서도 이쁜 광장. 흐린 날씨마저도 그 매력은 감출 수 없었다. 아니면 본인만 지금 색안경을 낀 것인가...?
위와 같이 독보적인 성당들, 그리고 이 글의 프로필 사진 되시는 시청사처럼 큰 건물들 역시 이 구시가지를 보는 묘미다. 이쯤 되면, 브로츠와프의 핵심은 바로 이 구시가지가 아닐까 싶을 정도이다. 가성비 있는 물가. 그러면서도 누군가가 보기에는 영화의 한 장면처럼 느껴질 정도의 감성. 이래서 폴란드 지방(?)만 집중적으로 돌아보아도 실패는 아니라고 얘기하는 거다. 투리의 폴란드 기행글을 위한 콘텐츠 때문이라는 것도 한몫하지만.
그렇게 구시가지만 돌아다니기를 반복하다가 벌써 저녁. 오늘의 식사는 빵 안에 들어간 고기 수프이다. 가격은 평균 이상이었지만, 저 음식은 투리가 폴란드에서 기억에 가장 남는 음식들 중 하나일 정도로 맛있었다. 수프가 고기와 달걀, 감자 등의 조합인데, 이게 어떻게 맛없을 수가 있겠는가?
구시가지의 사진은 실패가 없지만, 뭐니 뭐니 해도 가장 멋진 것은 야경의 사진이다. 구시가지 쪽에서 오데르 강 쪽으로 넘어가려면 브로츠와프 대학의 큰 건물을 지나가야 하는데, 위의 사진이 바로 그 대학의 건물이다. 당시 유럽 여행 자체가 처음이었던 투리로서는(바르샤바 제외), 저 건물이 처음으로 유럽의 매력을 설득시킨 건물이었다.
초박에 투리가 오데르 강이 꽤 크다고 말했던 것, 기억하시는 분? 위의 사진들이 그 강 근처에서 찍은 사진들이다. 아마 투리가 여행한 폴란드 도시들 중에서는 가장 규모가 큰 도시가 아닐까 싶다.
이렇게 야경 거리의 사진들까지 찍으면서, 투리는 이 날의 브로츠와프 관광을 마쳤다. 브로츠와프는 2박 3일 동안 여행을 했는데, 첫날은 거의 브로츠와프의 구시가지 관광에 전부를 썼던 것 같다. 애초에 짧게 짧게 돌아다니는 사람의 입장에서 봐도, 이 구시가지는 필수 관광 코스이기는 하다. 그만큼 브로츠와프의 첫 이미지를 좌우하는 곳이 바로 구시가지란 말이다.
참고로 투리가 브로츠와프에 대해 이런저런 글을 보면서 많이 본 내용이 있다. 브로츠와프는 가장 추천하는 방문 시기가 크리스마스라고 한다. 밤의 야경을 보면, 그 말의 의미가 이해는 된다. 지금 올린 사진들에 크리스마스 장식들만 어느 정도 얹으면 뚝딱 완성할 것 같지 않은가?
재미있게도, 브로츠와프는 한국과도 나름 인연이 있는 도시이다. 현재 브로츠와프에는 LG나 포스코 등의 한국 기업들이 적지 않은 투자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브로츠와프에서도 한국을 보는 시선이 사뭇 다르다는 얘기도 있다고 한다. 투리는 동선상 시간이 없어서 못 가봤지만, 실제 블로그를 보면 브로츠와프에 있는 LG 기업 인증사진들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공산주의 배격, 오랜 수난의 역사, 서울처럼 도시 사이를 흐르는 강의 존재. 이상의 브로츠와프와 구시가지에 대한 간략한 소개이다. 다들, 조금은 이 도시에 대한 친밀도가 높아졌으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