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로츠와프 국립 박물관>, 파란만장한 땅 위의 유산들
그들이 이르되 네 이름을 다시는 '브레슬라우'라 부를 것이 아니요 '브로츠와프'라 부를 것이니 이는 폴란드가 나치와 겨루어 이겼음이니라
이름은 중요하다. 자신의 정체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배트맨은 '브루스 웨인'을 가짜 신분, '배트맨'을 본인의 진짜 모습이라고 생각한다. 아이언맨은 타노스와 승부를 내기 직전에 '나는 아이언맨이다'라고 말한다. 투리는 그 장면들을 매우 좋아한다. 그들 자신이 지은 이름에 대한 자부심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제목은 분명히 박물관 내지는 미술관(미술 작품이 많아서 사실 미술관이라고 말해도 무방할 정도)에 관한 내용인데, 왜 뜬금없이 이름 얘기를 하냐고? 그것이 이번에 투리가 다녀온 미술관과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브로츠와프 국립 박물관'. 사실 100년 전까지만 해도 브로츠와프(Wrocław)의 이름은 브레슬라우(Breslau)였다. 이 박물관이 생긴 건 19세기였지만, 도시의 이름과 함께 이 건물도 그 정체성이 개편된 것이다. 그렇다면 이 박물관에는 과연 어떤 사연이 있는 것일까? 그리고 그 안에는 어떤 작품들이 있는 것일까? 그것을 이번 기행글에서 풀어내도록 하겠다.
B&B 호텔의 상쾌한 아침으로 시작하는 브로츠와프의 2일 차. 미리 계획한 장소들을 다시 정리하며, 기분 좋게 늦은 아침을 끝마친다. 그 와중에 갑자기 눈물보를 터뜨리는 옆자리의 폴란드 남자. 위로해주고 싶었으나,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게 약이라고. 폴란드어에 문외한인 투리는 괜히 오해 사지 말고 조용히 나가기로 결론을 내린다.
목적지로 향하려면 중간에 있는 공원과 강을 지나쳐야 했는데, 감사하게도 날씨는 전날보다는 훨씬 좋았다. 화창한 날씨와 평온한 공원, 시작은 일단 상쾌하다.
그렇지만 순탄하게만 관광지를 들어간 건 아니다. 맨 처음 보려던 관광지가 한 군데 있었는데, 이상하게 영업시간이 되었는데도 문이 잠겨 있었다. 계속 시간 낭비를 할 수는 없는 노릇. 이것이 '브로츠와프 국립박물관'이 첫 방문지가 된 이유이다.
그렇게 시작된 투리의 첫 번째 유럽 전시회. 역시 '국립박물관'이란 말이 무색하지 않게, 지나가는 통로에도 위와 같이 볼거리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듣기로는 이 박물관 안에 소장된 작품들이 약 20만 점이란다.
이왕 미술관 소개를 한 김에, 약간의 배경설명을 더 해볼까? 이 박물관(Museum Narodowe we Wrocławiu)은 1948년에 공식적으로 개관한 국립박물관으로, 원래는 독일 제국 시절 네오 르네상스 양식으로 지어졌으나 브로츠와프가 폴란드 영토로 편입된 뒤 환골탈태한 곳이다. 무슨 말이냐, 원래 이 건물은 행정용 정부 건물이었다. 그러다가 세계 2차 대전 이후 독일이 물러나자 폴란드가 저항 의식의 상징용으로 건물 자체를 탈바꿈했다는 말이다.
이곳에 전시된 작품들은 주로 폴란드와 슬라브권 작가들의 회화, 조각, 공예품들이다. 특히 이 작품들 중 일부는 나치 독일에게 약탈당했다가 다시 가져온 작품들이다. 브로츠와프 입장에서는 예술의 복구 기지 역할도 하는 셈이다.
상설전시회 기준으로는 상당수가 폴란드나 중부 유럽 쪽에 거주하는 실레지아인(Silesian)들의 작품이고, 일부 그 외 유럽 작품들이 포함되어 있다. 특히 우크라이나의 리비우(Львів)에서 이전된 작품들도 전시관에 있는데, 이를 보면 문화 보존의 역할은 확실히 잘 수행하고 있는 것 같다.
투리가 가장 먼저 들어갔던 곳은 위 사진의 중세 시대 실레지아인 석조 전시관. 보시다시피 우리가 생각하는 캔버스 위의 작품들보다는 좀 더 오래된 느낌이 강한 작품들 투성이다.
위 전시관의 작품들을 보면 느껴지겠지만, 해당 전시관은 라피다리움(석조 조각 전시관)에 속한다. 설명에 의하면 이들은 로마네스크와 고딕 시대의 건축 조각들과 묘비 조각들이라고 한다. 이들 중에는 1400년경에 제작된 마리아가 죽은 예수를 무릎에 안고 있는 'Pieta'라는 작품도 있고, 세계 2차 전쟁으로부터의 피해를 막기 위해 다른 곳으로 잠시 피신한 성당의 석관들도 있다.
이곳에 있는 작품들은 브로츠와프의 한 구역인 올빈(Ołbin)에 있던 베네딕트 수도원에 있던 것들이라는데, 수도원은 중세 시대 때 종교적/정치적 이유 등으로 파괴되어 지금은 흔적도 거의 남지 않았다고 한다.
다음으로 방문한 전시관은 14세기에서 16세기까지의 실레지아인 작품 전시관. 이곳은 고딕 양식의 목조들과 예술 작품들을 전시한 곳이다.
14세기 후반에 제작된 고딕 종교 작품의 특징이랄까. 해당 작품들은 브로츠와프의 사도상 마이스터(Master of Figures of Apostles)의 작업장에서 제작되었다고 한다. 이런 조각상들의 특징은 원래 성당 본당의 기둥에 놓여 있는 것을 목적으로 했기 때문에, 아래에서 올려다보는 느낌과 다소 과장된 비율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건조한 팩트를 말하자면 그런 내용이고, 투리 개인이 이곳을 방문했을 때는 어떤 느낌이었냐? 위 사실을 모르고 봤을 때는 '어, 예수님이 젓가락이네?' '마리아상이 길쭉길쭉?'이라는 느낌이 크게 들지는 않았다. 당시에는 처음으로 들렀던 종교 전시관이었기에, 그저 경건하고 아름답다는 느낌만 강하게 들었다. 조금 비율이 다르면 어떤가. 어쨌거나 이 모든 작품은 한때의 신성한 분으로 추앙받는 분들에 대한 마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이러한 상들을 보면 마음이 정화되는 기분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름이 없는 것 같다.
주변을 둘러보다가, 사람들이 중간에 전시된 한 흉상에 모여 있는 걸 보았다. 저 작품은 성 도로테아의 성 유물함(Herm of St. Dorothea)인데, 성인의 유해를 담고 있는 귀중한 작품이라고 한다. 15세기 초반에 만들어진 저 작품은 부분 도금한 은판으로 만들어졌고, 원래 브로츠와프 시청의 오래된 예배당에 성 도로테아의 두개골 등을 담은 채 보관되어 있었다. 해당 성유물함은 아랫부분이 수정과 에메랄드 등 귀중한 보석들로 장식되어 있었다.
그 외에도 여러 작품들의 설명이 있었고, 심지어는 이 전시관에서 가장 오래된 작품인 1350년 산 작품도 있었다. 하지만 투리의 눈에는 모든 작품들이 하나하나 다 아름다워 보였다. 무려 과거의 유산이었는데, 아무런 의미 없는 작품이 여기 어디에 있겠는가.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16세기에서 19세기까지의 실레지아인 작품 전시관! 드디어 해당 전시관부터는 회화라고 할 수 있을 만한 작품들이 눈에 띄기 시작했다.
여기서 말은 16~19세기라고 하지만, 그 사이의 흐름은 르네상스부터 바로크, 매너리즘, 신고전주의, 사실주의에 이르기까지 그 시대별로 차이가 뚜렷하다. 예를 들면, 바로 위 사진의 오른쪽 윗부분의 작품은 16세기의 르네상스 작품이다. 니콜라스 옌크비츠(Nicolaus Jenkwitz)가 만든 <Epitaph(번역: 묘비명)>라는 이름을 가진 저 작품은, 여전히 개신교적 경건성과 상징성을 띤 대표작이라고 알려져 있다. 작품 속에는 하늘 위에 지구본을 든 하나님이 있고, 그 아래에는 니콜라스와 세 자녀들이 무릎을 꿇고 구원을 사모하는 모습이 있다. 이처럼 당시의 작품은 종교를 통한 개인의 구원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나 있다. 그걸 몰랐으면 투리는 저 작품을 노인이 슈퍼맨이 되어 지구본을 들고 세계를 구하러 가는 장면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르네상스 다음에는 매너리즘, 바로크의 시대가 도래한다. 매너리즘은 이전보다는 인위적이고 감각적인 표현을 조금 더 중시하고, 바로크는 거기에 더해 극적이고 감성적인 조형미를 추구한다. 그러면서도 예술의 대상은 여전히 가톨릭 중심으로 이루어지는데, 위 사진을 보면 대부분이 예수님과 관련된 작품이라는 것을 알 것이다. 전체적으로 종교적 분위기에 극적인 장면들이 연출된 것을 보면 당시의 작품 경향을 유추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까지 방문했던 미술관들과 비교해 보면, 기독교적 색채가 이 전시관에서는 확실히 강한 편이었다. 위의 작품들을 보면 시대상은 약간씩 다르겠지만, 다수의 인물이 나와 있는 작품들은 모두 가톨릭적 내용이 반영되어 있다. 물론 전부 다 그런 것은 아니다. 지금 올린 사진들 중에는 초상화도 여럿 있다. 종교적인 내용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않았다 하더라도, 이때부터는 인간 중심의 미술도 차츰 보이는 걸 알 수 있었다.
저렇게 인물의 초상화들도 많이 있다. 이게 전체적인 전시회의 느낌이고, 당연히 못 찍은 사진들도 많다. 보니까 투리가 찍은 사진들 중에 사실주의 작품이 보이지는 않는데, 사실주의는 주로 일상과 감성적 안정을 추구하는 형태의 예술이라고 한다. 박물관의 정보에 따르면 이런 작품들은 보통 중산층의 가정을 나타낸 작품들이라 한다.
어쨌든 그렇게 실레지아인 코너를 마무리하고, 다음은 폴란드 작품(17세기~19세기) 코너로!....라고 말은 하지만, 아무래도 글이 더 이상 길어지면 독자들이 지루하겠지? 해서 나머지 남은 부분들은 다음 글에서 마저 연재하도록 하겠다.
정리하면, 브로츠와프 국립 박물관의 초반 글은 주로 근대 이전의 실레지아인 작품 위주로 소개를 했다. 전체적으로 기독교적 용도 혹은 메시지를 토대로 한 작품들이 많았는데, 다음 글은 회화를 위주로 한 작품들이 대부분이지 않을까 싶다. 이렇게 중부유럽의 예술을 보면서 시작한 첫 (말만 박물관인) 미술관 여행. 유럽 하면 미술 작품, 미술 작품 하면 유럽 아니겠는가? 지금부터가 투리의 글에서 유럽의 진면모가 드러나는 순간이다!